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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라목사의 천년왕국설에 대한 비판적 평가
서사라목사의 천년왕국설에 대한 비판적 평가
  • 교회협동신문
  • 승인 2019.10.06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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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 8월 27-29일에 있었던 평서노회 연합집회에서 주강사였던 서사라목사의 천년왕국 이해에 대한 비판적 평가라는
필자의 논문(A4 43쪽분량)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 편집자주
서사라목사 주님의 사랑 세계센터 원장
서사라목사 주님의 사랑 세계센터 원장

필자는 서목사의 저서를 읽으면서 ‘서목사와 같은 경험을 한 내용에 신학자들은 어떻게 반응을 할까?’ 하는 질문을 던졌다. 아마 이런 체험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신학자들도 있을 것이다. 신학 작업은 주어진 자료를 분석하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에 영적인 체험은 학문적인 연구의 대상으로는 기피할 것이다. 반면에 수용하는 입장에 있는 신학자들은 이런 체험이 성경의 가르침과 어떤 조화를 이루는가가 관심의 대상이 될 것이다. 기독교 신학이란 사실상 성도들에게 최종적인 구원의 목표지점으로 가는 로드맵을 제공하는 것을 활동으로 볼 수 있다. 신학의 역사는 사실상 바른 로드맵을 제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서로 간에 비판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서사라 목사의 증언에 대한 학문적인 논의가 필요한 것은 이런 로드맵을 만든 일과 관계한다. 이제 서목사의 주장에 관심을 집중시킨다.

1. 서목사는 특별한 경험을 소유한 사람이다. 그녀는 의사로서 탁월한 과학자로서 과학계에 큰 업적으로 남긴 유명인사인데, 예수를 믿고 특별한 영적인 체험을 했으며 지금은 복음을 전도자로 부르심을 받고 활발히 사역하고 있다. 미국 브라운 대학교에서 쓴 박사학위 논문은 유명한 잡지에 살렸고 UCLA에서 쓴 박사후 과정에서 쓴 논문은 30년 내려오던 이론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이론을 주창했다. 이런 점에서 뉴톤 시대의 뉴톤에 방불한 과학자로서 천국과 지옥을 다녀와 “천국과 지옥”이라는 저서를 남긴 이마누엘 스웨덴보리나 미국 하바드 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뇌사상태에서 천국을 경험하고 그 체험기(나는 천국을 보았다)를 쓴 이븐 알렉산더 교수를 생각나게 한다. 서목사는 성경을 매우 정밀하게 분석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그가 의사와 과학자의 자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2. 서목사는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거기서 스스로 본 내용을 그림 그리듯이 묘사하고 또 거기서 성경 해석에 있어서 궁금했던 부분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주님과 믿음의 선진들과 나눈 대화를 크게 참조함을 보여준다. 일곱 권에 이르는 서목사의 저서는 천국과 지옥을 경험한 다른 모든 사람들과는 달리 그녀는 많은 질문을 던짐을 쉽게 볼 수 있다. 다른 대부분의 경험자들은 자기들이 천국과 지옥에서 본 것을 단순히 묘사하는 것으로 그친다.

3. 서사라 목사는 ‘현재 하늘 낙원’의 구조와 ‘천년왕국’의 구조 그리고 ‘영원천국’의 구조는 다음과 같이 동일하다고 증거한다. 1) 성(城)안, 2) 성(城)밖, 3) 지옥. 즉 천국은 영광스러운 곳인 성(城)안과 어둡고 고통의 장소인 성(城)밖 이 둘로 나누어진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그 동안 그 누구도 지적하지 못한 부분이다. 서목사는 특별한 체험으로 천국과 지옥을 둘러보고 증거하는 방식으로 이것을 말하며 이것을 뒷받침하는 성경적 근거를 어리석은 다섯 처녀나 한 달란트 받은 자가 “바깥 어두운 곳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간다”라는 것 같은 구절에서 암시되고 있다고 보고 천국의 성 밖 정보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말한다.

4. 서사라 목사는 천국을 두 단계 곧 성(城)안과 성(城)밖으로 나누기 때문에 기존 세대주의자들이 성 안에 영화로운 몸을 가진 자들과 죽을 수 있는 몸을 지닌 자들이 함께 거한다는 모순을 극복하게 한다. 즉 서목사는 천년왕국 성(城)바깥에 죽을 수 있는 몸으로 살면서 예수를 믿는 자들이 있고 천년왕국 바깥에서도 천년동안 예수를 믿는 자들이 생겨난다고 한다. 나아가 서목사는 천년왕국 바깥에서 아이를 낳고 죽고 하면서 천년왕국이 끝날 즈음에 일부는 낙원으로, 다른 부분은 음부로 들어간다고 말한다. 이 부분 역시 기존 신학에서는 매우 낯설어 하기 때문에 정밀한 성경해석적인 논의가 요구될 것이다.

5. 서목사에 의하면, 아마겟돈 전쟁 때 예루살렘을 치러온 자들 중에 살아남은 자들인데 천년왕국 성(城)밖에서 100년 정도 살고 죽고 또 태어나고 죽고 하면서 살아 있으면서 초막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자들이 있다(계 20:7-10). 이들이 나중에 성도들의 진(陳)을 형성하는데, 곡과 마곡은 이 진(陳)과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성(城)인 예루살렘을 둘러싼다고 한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성밖에 살면서 초막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온다는 이 내용도 세대주의자들이 묘사하는 것보다 더 구체성을 띤다. 이 내용도 기존의 다른 천년기설의 주장들에게 매우 낯설어서 면밀한 성경해석적 논의가 요구 될 것이다.

6. 서목사에 의하면, 하늘이 불에 타고 큰 소리로 떠나가고 모든 체질이 불에 녹고 현재 하늘과 땅이 없어진다. 이때 짐승, 거짓 선지자, 마귀와 함께 유황불에 던져져 영원토록 괴로움 당하고 있고(계 20:7-12), 천년왕국에 들어갔던 의인들은 하늘 낙원에 있는 새 예루살렘 성으로 옮겨진다고 한다. 사실 이 점은 서목사의 독특한 주장으로 다른 모든 천년기설자들이 답을 주지 못한 내용이다. 이 문제를 두고 신학적이고 성경해석적인 논의가 있을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무천년기설도 주께서 재림하실 때, 지각(地殼)에 대 변동이 있음을 말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그 기간에 성도들은 어디에 가 있는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필자는 무천년기설자에게서 이에 대한 답을 기대했으나 얻지 못했다.

7. 서목사는 네 가지 휴거를 말한다. 첫째는 대환난기 전에 온전한 성도들이 휴거 한다는 것, 둘째는 두 증인이 3년 반 동안 일하고 짐승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가 3일 만에 부활하여 휴거한다는 것, 셋째는 예수를 믿는 144,000 유대인들이 예비처에서 보호를 받다가 대환난기가 끝나면 휴거하며  마지막은 대환난 이후 알곡으로 추수되는 휴거사건(계 14:14-16)이 그것이다. 대환난기를 초림과 재림 사이로 보는 무천년기설이나 역사적 전천년기설은 강력한 반격을 가할 것이다. 문제는 어느 쪽이 성경을 자연스럽게 해석하느냐 하는 것이다.

8. 매우 주목할 만한 것은 서목사가  집회하는 동안 천사들이 나타나 성도들의 이마에 인을 치는 것을 보는 것이다.
필자는 이 집회에 참석한 한 지인으로부터 구체적인 설명을 들었다. 필자는 10여 년 전에 고 최의원 박사님을 통해 성도들의 이마에 십자가가 그려진다는 예기를 들었기 때문에 실제 이런 집회의 경험이 어떠한 것일까 하고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지인에 의하면 서목사가 영안(靈眼)으로 집회 가운데 나타난 천사(?)들이 진심으로 회개한 성도들의 이마에 십자가를 그리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에스겔서 9:4에 나오는 내용을 그대로 재현한다는 것이다. “겔 9:3 그룹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에 이르더니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 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4.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에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 하시고”
이 집회에서 서목사가 본 인(印)을 치는 사람들의 의복착용이 이 구절과 너무나 일치한다는 것이다. 이마에 무슨 표를 그렸는지 물으니 십자가라고 한다. 그것이 십자가라는 근거는 무엇인가? 우리말 번역에는 그냥 ‘표를 그리라’고 한다. 히브리 원문은 ‘타우를 그리라’고 한다. 그러면 이 타우는 무엇인가? 에스겔 시대의 히브리 문자에서는 타우가 X로 표기되었다. X는 십자가를 의미한다.
구약교수였던 고 최의원 박사는 그의 ‘새즈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순 우리말 구약성경에 곱셈표라고 번역했다. 최박사는 유대인들은 십자가를 싫어하기 때문에 그것을 감추었다고 한다. 우리는 서목사의 이런 사역에서 그녀가 영안으로 본 내용이 성경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어떤 신학이 자기 패러다임에 갇혀서 계속 그 틀로만 해석하려고 할 때는 성경에서 새로운 진리를 발굴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도 일종의 이념에 빠지는 오류를 범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4가지 전년기설 중에 어느 하나도 절대적인 것으로 말할 수 없다. 모두 다 한계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 그런 이론들의 약점이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16세기 개혁자들의 이론들이 21세기에 와서는 더러 무리한 것으로 판명되는 것처럼 말이다.

기존 개신교 신학은 성경이라는 문헌과 교회사가 생산한 것을 그 주된 자료로 취급한다. 개혁신학의 경우 서목사가 겪은 어떤 영적인 체험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일이 허용될 수 있을까? 아마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개혁신학은 우선 성경을 문법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해석하는 일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체험이 성경을 깊이 해석하는 문제와 맞물려 있고 충격을 준다면, 이런 체험은 교회와 신학 발전에 큰 자극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본다. 즉 특별한 영적인 체험이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은 성경진리를 발견하는 계기가 된다면 신학 논의의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필자가 역점을 두는 것은 바로 이
것이다. 

 

어떤 신학을 비판하고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성경전체가 요구하는 내용을 추구하는가 하는 것이다. 성경은 범죄하고 타락한 인간을 회복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이 오신 것이라고 가르친다. 서목사의 모든 사역이 죄인들을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는데 있다는 점은 높게 평가할 수 있다. 서목사가 천국과 지옥에 가서 놀라운 것을 보고 듣고 와서 전하는 내용 그 자체를 전하는 목적이 불신자들을 회개케 하는데 있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본다. 즉 서목사의 관심은 자기의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데 있다.
이런 점에서 그녀의 특별한 발언은 신중하게 평가해야 되고, 평가할 경우에는 기존 성경해석에 대한 성찰 있는 반추(反芻)가 있어야 될 줄로 여겨진다. 사실 하나의 신학이란 영원한 것은 아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한 반성이 요구되고 나아가 수정이 가해지는 것이다.
개혁신학의 생리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종교개혁신학은 성도들을 위한 로드맵을 제공하는 일을 위해 자기 신학을 무섭도록 반성하고 대안을 생산해 놓아야 한다. 이로 보건대 서목사의 증언과 발언에 대해 진지하고 건설적인 평가를 위한 학문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신학적인 반성 없이 자기 이념에 갇히어 공정한 평가를 하지 못하는 것은 개혁신학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필자 권오덕교수
필자 권오덕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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