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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사춘기 난 갱년기
넌 사춘기 난 갱년기
  • 교회협동신문
  • 승인 2019.10.06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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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형 소장
킹메이커교육연구소
조덕형 소장
조덕형 소장

 

 

너도 방황하니? 나도 겉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아픔을 동반한다.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아픔들이다. 해산의 고통. 하지만 이것보다 더 큰 것은 탄생의 기쁨이다. 한 번만 아프면 얼마나 좋을까? 살다보니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아픔들을 겪는다. 영유아기는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아 아파한다. 제2의 도약기인 사춘기 또한 마음대로 되지 않아 아파한다. 갱년기가 되니 또 아파한다. 공통점이 있다면 지나고 나면 한 단계 성숙하기도 하고, 별 것 아닌 듯 잊어버리기도 한다. 역시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가 보다.
  아픔들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서로 인정하기’다. 대부분의 아픔은 사람의 관계에서 찾아오는 경우가 다반사다. 부모가 아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은 이제 독립을 준비하는 단계에 있다. 점차적으로 부모로부터 멀어지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경계를 넘어서는 훈련을 하는 과정에 있다. 부모들이 자꾸 품 안에 자식으로 여기고 놓아주려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와 마찰이 생기는 것이다.

내 아이도 다르지 않아.
  늦은 밤 집에 돌아왔다. 먼저 아내가 나와서 마중을 한다. 그리고 딸이 나와서 인사를 하고 그런데 아들은 보이지 않는다. 먼저 자는 모양이다. 옷을 벗어 정리하고 아들이 잘 자나 하고 가보았다. 그런데 문 앞에 이렇게 써있는 것이 아닌가?
  ‘노크하고 들어오시오.’

  그리고 부제를 달아놓았다.
  ‘노크하고 들어오지 않으면 벌금 5,000원.’
  ‘불만이 있으면 작은 메모지에 써서 문에 붙여 놓으세요. 특히 누나.’
  ‘아하, 드디어 올 것이 왔구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이제 13살이 된 아들이 방문을 걸어 잠그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존중해주기로 했다. 노크를 하고 방 주인의 허락을 받고 들어가서 아들을 안아주었다. 이제는 독립된 존재로서의 삶을 살겠다는 일종의 신호다.
  아들이 방에 쫓아 들어오는 엄마를 향해 소리친다.
  “내 방에 들어오지 말란 말이야”
  “빨리 나가!”
  엄마의 한 마디.
  “내 집에 들어오지 말란 말이야”
  “내가 사준 속옷, 겉옷, 가방, 지갑 다 두고 나가!
  그 후로 사춘기 증상이 없어졌다는 웃지못할 비화가 있다. 부모가 없었다면 자신들도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자기들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생각해야 하는데 마치 아이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다.
  아들 성혁이와 딸 한나는 책을 많이 읽는다. 사람을 변화시키는데 있어서 책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하나다. 독서전문가 과정 이수가 내게 가져다 준 선물이기도 하다. 아이들에게 수준을 업그레이드 시켜가며 부지런히 책을 읽혔다. 인지적인 부분에서 남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과는 다를 줄 알았다. 하지만 피해갈 수 없는 사춘기를 보니 어쩔 수 없는 사춘기의 아이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때로는 천재성을 보여주기도 하고, 부모님을 위로하는 말도 할 줄 알아 의젓해 보일 때도 있다. 그러다가도 철부지 같은 말과 행동으로 사람을 화나게도 한다. 사춘기 아이들에게 보여지는 특징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각자의 길을 가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의 방문이 닫혀 있으면 참지 못한다.
  ‘저 안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이 자식이 반항하나?’, ‘야동보고 있는 것 아냐?’ 하며 별의별 생각들을 하기 마련이다. 그리고는 보란 듯이 문을 벌컥 열고 고함을 지르기도 한다.
  “야, 너 뭐하는 짓이야? 불만 있으면 말을 해!”
  중2 전쟁의 서곡이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부모의 감정과 아이의 감정이 스파크를 일으키며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아이가 그 다음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이제는 방문을 걸어 잠궈 버린다. 그러면 부모들은 더욱 화가 나서 고함을 지르거나 방문을 거세게 두들기고 마침내는 가정 내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아이와 점차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게 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서운한 감정을 갖게 된다. 한 집안에서 아이 따로, 부모 따로 생활하게 된다. 거기에 개인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더욱 따로 놀기 십상이다. 아이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아이대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스마트폰이라는 작은 창구를 통해 실현한다. 부모는 부모대로 TV나 스마트폰으로 자기의 관심사를 따라 온라인 세계를 뒤적인다. 그것도 한 이불속에서 아빠 따로, 엄마 따로.
  사춘기 아이를 둔 적지 않은 부모들이 감정 조절을 하려 들지 않는 모습들을 발견하게 된다. 겉으로 들어나는 양상은 ‘아이가 마음의 문을 닫고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제대로 된 접근을 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가 알고 있고 겪었던 일방적인 감정적 대화법을 사용한다.
  “아이와 이야기하면 미쳐버릴 것 같아요. 도대체 어디에 대고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듣고 있는 태도를 보면 맘 같아서는 한 대 쥐어박고 싶다니까요.”
  하지만 정작 중2 아이들이 하는 말은 다르다. ‘도대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물으면 그들은 거침없이 말한다.
  “내 얘기는 들으려 하지도 않아요. 아니 말할 기회를 안 주세요. 무슨 말만하면 왜 화부터 내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우리 부모님은 내가 창피한 모양이에요.”
  서로가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겉모양만 보고 자신의 생각을 표출한다. 먼저는 아이의 생각을 존중하고자 하는 베이스를 깔고 가야 한다. 왜냐하면 어린아이에서 성인으로 자라나고 있는 ‘중간기’이기에 많은 이해가 필요하다. 특히 아이 자신도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기에 아이만의 홀로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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