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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적 신앙 욥3:1-26
사춘기적 신앙 욥3:1-26
  • 교회협동신문
  • 승인 2019.05.29 12: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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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수 목사
창일교회 담임/ 교회협동신문 대표
김한수목사
김한수목사

 

들어가면서

욥기서는 족장시대 기록이며 하나님이 주인이라는 주제를 지혜문학형식의 성문서입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창조세계를 보여주면서 너는 저 창조물과 다르고 너는 내 자녀라는 것입니다. 그 자녀를 만드는 과정을 기록한 것입니다. 어려움과 고난과 재난(먹을거리 걱정, 사회적

지위 확보하는 것)과정은 종교적인 하나님에서 성경적인 하나님으로 인도하는 과정 속에 필연입니다. 하나님의 지금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1장, 하나님과 사탄사이에 욥을 놓고 신앙에 대한 내기가 벌어지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하나님은 사탄을 꾸짖기 위하여 욥을 증거로 세웠고 사탄은 하나님의 울타리(어떤 특혜들)를 거두면 욥도 자기와 같이 불만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욥은 이유 없이 억울하게 벌을 받게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범죄 하지 않았고 하나님 앞에 신앙을 지켰습니다.(창조물과 다르다. 특별한 대접)

2장, 사탄은 욥의 몸을 건드리고 끝이 납니다. 그리고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는 내용, 불만 친구들이 지적 등, 인간은 죽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녀이기 때문에 아버지로서 그 과정을 전개하는 것입니다. (창조사역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깊다.)

 

1. 3장은 드디어 욥의 한탄이 나옵니다.

욥은 ‘날’을 비명으로 절규로 저주합니다. 마치 하나님의 창조 가운데 한 날 사역을 마치시고‘심히 보시기에 좋았더라.’에 반대되는 것으로 하나님에게 불만을 터트리는 것입니다.(하나님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1, 2장과 연결이 안 됩니다. 왜냐하면 1:10절, 하나님이 울타리로 두르심과 그 울타리를 깨자 즉 하나님의 허락 속에 빼앗았지만 욥은 하나님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2:4절, 몸체공격 요구하고 하나님은 허락합니다.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온갖 상처투성입니다. 부인 반발하지만 욥은 입술로 죄를 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세 친구 위로하면서 끝나게 됩니다.

그런데 갑자기 3장부터 욥은 드디어 화를 내기 시작합니다. 울타리를 욥은 부둥켜안고 있다는 것입니다. 욥은 인과응보의 원리. 욥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 하나님은 그 울타리를 허물고 욥은 그 울타리를 부둥켜안고 있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을 알지 못하니까 하나님에 대하여, 인생에 대하여 다른 길을 알지 못하니까? 한탄과 화를 내는 것입니다.

자신의 아는 하나님의 지식, 보응의 원리를 붙잡고 있지만 현실은 그 지식의 따른 결과로 나오지 않으니까 자신의 이해 범주를 깨자, 하나님이 그 틀을 깨자, 하나님께 욕을 할 수는 없고 부인은 죽자고 악악거리지만 욥은 생일을 저주 하니라. 즉, 자신의 알고 있는 신앙의 원칙은 깨지니까 하나님은 차마 원망할 수 없으니까 ‘날’을 저주하는 것입니다.

성도 역시 하나님이 요구하는 거룩을 소원하고 기대하지만 현실의 결과는 안 되는 것을 만납니다. 기도도 해보고, 성경도 보고, 열심히 교회도 나오고 기도원도 가고 했지만 하나님은 현실에서 자신의 소원하는 그 결과로 안 오니까 그래서 그 틀을 놓기 시작합니다. 그래 죽어서 천국이나 가자 그 하나를 잡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현실 가운데 자신의 원하는 결과로 나오지 않는 그 이유는 히 12장에서 설명합니다. 11장, 믿음 장을 전제하고 예수님께서 가신 길은 십자가를 참으신 길이며 부끄럼을 개의치 않으신 길입니다. 그 길은 하나님의 요구하시는 길이며 목적하신 길입니다. 그 길을 간 11장의 믿음의 선진, 예수를 근거로 자신의 기대하는 그 결과가 나오지 않은 너희 현실을 이해하라는 것입니다.

현실을 감수하라고 요구하면서 그 현실은 4절 이하, ‘아버지가 자식 만들기를 하는 과정’ 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사람으로서 인격과 정신으로 장성해야 하니까 징계가 필요하듯 밖으로부터 요구받고 훈련하여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2. 사춘기적 신앙

욥의 신앙은, 아는 지식은 사춘기적 신앙이라고 합니다. 사춘기는 인생이 동화와 소설과는 같지 않다는 것을 아는 시기입니다,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고 분별을 해야 하는 것을 아는 시기입니다. 자신의 진심과 열정만 있으면 모든 것이 은혜가 된다가 깨지는 시기입니다. 순진하고 자신의 정성을 쏟으면 완성이라고 생각한 것이 깨지는 시기입니다.

순수한 헌신으로만 최고의 신앙이 되는 법은 없습니다. 흙 뭍은 사람은 사람을 이해하고 아량이 있게 됩니다. 진정한 신앙의 완성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중고등부 학생 때 전도도 열심히 하고 공부도 잘하고 모범생이면 너무 이븝니다. 그리고 한심합니다. 그 때는 이기적이며 속으로 곱고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들은 사고치고 들키면 세상으로 나갔다고 회개하고 다른 교회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욥기 3장은 사춘기 시기 연장선상에 인생은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욥은 그 시점에 온 것입니다. 하나님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죄 안 짖고 하나님 공경했고, 순진이 전부라고 생각하였는데, 결과가 꽝인 이 현실 어쩌란 말입니까? 이 틀이 깨지면 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이 틀을 몰랐다면 세상이라면 번뇌는 없을 것인데 그러나 믿음이 법칙이 깨지자 당황합니다. 그 당황은 사실 본인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 믿음의 법칙은 자신이 만든 것입니다.

고전3:18-고린도교회는 분파가 있었습니다. 그 밑에 들어가지 말라, 만물은 너를 위해서 존재한다. 즉, 바울(생명, 세상, 사람)도 너를 위해서 세웠다. 그리스도 것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욕심이 상대방을 힘들게 합니다. 그 사람의 욕심 아래 있는 것은 지적을 하는 것이며 그 불편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도가 제일 크고 그리스도에게만 예속하라는 것입니다.

사춘기 적 기대는 간단한 것을 하나님께 제공하고 그 결과를 행복으로 끝났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생각 없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마치 사춘기 때는 별 것 아닌 것으로 고민하다가 그 고민 때문에 죽습니다. 하나님은 너는 그 고민보다 크며 그 고민 같은 작은 것에 목숨을 걸지 말라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아무도 상상치(이해하지도, 꿈도 꾸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복음을 전할 때 늘 떤다. 고 하며 그의 품에 안기기 전에 설명하기가 곤란하다. 롬4:17~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창조의 하나님입니다. 보응의 원리를 훨씬 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성실 은혜 기쁘심으로 허락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식 없을 때 믿음의 조상으로 부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몇 가지 신학으로 현실을 제한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가 다 아는 것처럼, 십자가의 비밀을 가장 간단한 것에 걸어 놓고 큰소리 죽는 소리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기도로 하나님을 제한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식들만 잘 되게 해 달라’너 하나님을 도대체 뭐로 알고 있냐? 질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현실의 그 것보다 큰데 불만이 있는 것은 고통 때문입니다. 신앙의 위대함은 도전하는 현실가운데서 산 같은 모습들이 안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작은 액세서리 하나 붙들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간절함은 있는데 내용이 너무 적고 허황된 것입니다. 인격과 영혼의 깊은 것으로 인도하는 현실입니다.

욥은 사춘기적 신앙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 욥을 하나님이 채우시는 것입니다. 이 고비를 넘어야 합니다. 깊고 넓고 채움으로 가야합니다. 영광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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