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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도 연말과 성탄절
2023년도 연말과 성탄절
  • 교회협동신문
  • 승인 2023.12.14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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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월을 정리하는것도 중요하지만 다가오는 세월을 관리하는 것 또한 중요해, 성탄축하의 문화적의미’
이인수목사(전)온누리수련원장국가유공자 6.25참전무공수훈
이인수목사(전)온누리수련원장국가유공자 6.25참전무공수훈

12월이 되면 이 한해의 끝부분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아니 벌써?’ 하며 놀라게된다. 이처럼 세월의 흐름은 멈추는 법이 없기에 우물쭈물 하다보니 이제 나이만 늘었다.

누군가가 말하기를 세월은 나이에 비해서 빠르게만 간다했다. 50세때에는 50km로 가고 70세때에는 70km로 가고 80세대엔 80km로 달려간다는 그말이 참 실감이 난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이들의 시간이나 중년 노년의 시간이나 일정함이 같은것이지만 사람의 마음가짐이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빠르게만 지나가는 것 같이 느껴진다는 말이다. 그래서 혹자는, 세월이 빠르다고 하고 세월이 더디다고도 하지만, 그러나 세월은 생각과 같이 빠른것도 더딘것도 아니고 확실히 셈을 해서 흘러갈 뿐이며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고 쏜살같이 지나간다했다.

성경에 우리의 연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슬픔뿐이요 신속히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90:10)라했으니 세월을 아껴야한다.

옛말에 먹는 나이는 거절할 수 없고 흐르는 시간은 누가 정지 시킬수있으며 억류시킬수가 있을까만은 지금 이시간에도 지구는 돌고 있으며 속절없이 흐르고만 있기에 안타깝다.

미국 헌팅턴프레스 신문사 입구에는 3개의 동상이 나란히 서있는데 하나는 사람이 지구본을 껴안고 미소를 짖고 있고 또하나는 사람이 지구본 위에서 거만한 표정으로 서있고, 또하나는 사람이 지구본 밑에 깔려 고통스러운 표정을 짖고 있다. 이 동상 밑에는 그에대한 설명이 쓰여있는데 1. 지구본을 껴안고 있는 모습은 시간을 아끼고 살아가는 사람을 표현하는 것이고 2. 지구본 위에서 거만하게 서있는 모습은 시간의 귀중함을 비웃는 것이고 3. 지구본밑에 깔려있는 모습은, 시간을 무시하다가 실패의 나락에 떨어져 고통을 당하는 사람의 모습이다했다.

인간이 시간속에서 생애를 장식하며 살아가고 있다. 매일 매일 주어진 시간에 자신을 만들어가고 있고 또, 자신을 보여주고 있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은 사악하기에 누구던지 아까워하는 세월을 빼앗으려하고 달려든다. 사람들 중에는 세월을 빼앗기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세월을 아끼며 유수와 같이 흘러보내는 사람도 있다.

세월을 빼앗기는 사람이란, 세상을 헛되게 잘못산 사람이고 세월을 아끼며 흘러보낸 사람이란, 의롭고 부지런하게 열심히 산 사람을 말한다.

지난 세월을 정리하는것도 중요하지만, 다가오는 세월을 관리하는것도 또한 중요하다.

오늘이 없는 내일은 없으니 내일은 오늘부터 시작한다. 속담에 시작이 절반이라는 말이 있다.

시작이 귀중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마치는 것은 시작보다 좀더 중요하다. 일의 끝이 시작보다는 낫다는 말이다.(전7:8)

마라톤선수가 출발을 잘하는것도 중요하지만, 끝까지 완주하는 마지막이 더 중요하다.

시경에 미불유초선극유종(靡不有初鮮克有終)이란 말이 있다. 즉, 시작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은 별로 없으나, 끝까지 잘하는 사람은 흔치가 않다. 라는 뜻으로 유종의 미(有終-美)) 말이 여기에서 나온것이라고 한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연의 법칙에서 일년이란 시간은 동일하다. 그런데 사람마다. 그 일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서 시간이 빠르게도 느리게도 느껴지게된다.

하루종일 바쁘고 재미있게 지내는 사람은 시간이 빠르게만 느껴지지만 반면에 하루종일 집안에서 할 일없이 놀고만 있으면 하루해가 지루하게만 느껴지게된다.

성경에 ‘ 게으른자여~ 네가 어느때까지 눕겠느냐 어느때까지 잠에서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눕자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궁핍이 군사같이 일으리라’(잠6:9~11)이라했다.

2. 성탄절에 산타클로스의 유래

지금으로부터 약 1720년쯤 아시아의 서쪽 끝에 러키아 라는 나라에 파티라스라는 도시가 있었다. 그곳에 세이트리콜라스 라는 마음씨 착한 주교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남몰래 많은 선행을 베푸는 분이었다. 그가 가난한 이웃들의 집에 몰래 금화를 놓아주거나 양식을 놓아주는 이름모를 그사람을 하나님이 보낸 천사라고들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가 바로 세이트리콜라스 주교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에대한 이야기가 널리 퍼져나갔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이주했던 네덜란드인들이 세이트리콜라스 그에 이름을 신태콜라스로 불렀는데 이 발음이 영어로 바꾸어서 싼타클로스로 정착되었다한다. 그래서 그후, 크리스마스가 전세계에 알려져 착한 어린이들에게 몰래 선물을 놓고가는 할아버지를 싼타클로스라고 부르는 것이 유래가 되었다한다. 또한, 싼타클로스의 붉은 복장은 1931년 미국의 해던선볼름이 코카콜라스에서 그린 그림에서 유래한 것이라며 그 모습은 흰수염을 가지고 두건이 달린 붉은옷을 입은 노인으로 상징된 것이라한다.

성경에 너희 빛을 사람앞에 비치게하여 저희로 너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하라.(마5:15:16) 아멘 메리크리스마스.

성탄절 축하의 문화적의미

12월25이 예수님의 생일인가, 아니면 싼타클로스의 생일인가, 교회가 주도해 만들어가는 기독문화가 아니라 대중문화가 주도하는 세속적 성탄절이 되어가고 있다.

성탄의 기쁨과 송구영신의 축하분위기가 휘황찬란한 밤거리에 패션으로 온통 들떠 돌아다니는 청춘들에게는 아마도 성탄절이 발레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를 합친날 정도로 보이나보다. 모든 술집과 유흥업소가 교회보다 훨씬 먼저 성탄절을 노래하는 케롤을 올리며 이땅에 구주 오셨음을 알렸지만, 정작 그들이 하는 모양이란 소통과 무리를 방불케하는 성적타락의 절정을 이루는 날이었다. 이미 그들은 더 이상 교회의 크리스마스에는 관심없고 명절화된 그들의 세속적 성탄절을 즐길 뿐이다. 그들에겐 성탄은 구주의 나심이 아니라, 낭만과 우정으로 포장된 쾌락과 방종의 탄생일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애써 이를 외면한다. 아니, 세속의 성탄을 공인하려는 모양이다. 어디에도 이토록 모욕적인 성탄절의 분위기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없다. 이러한 교회의 무능한 대응은 아무리 교회가 성탄축하 하며 하늘에는 영광 땅에서는 평화를 외치며 구주의 나심을 새벽부터 증거해도 주(酒)를 높이들고 그들의 쾌락을 찬양하는 세속적 성탄절 숭배자들의 일탈을 막을 수 없다.

이처럼 크리스마스 축제는 현대인들에게 이미 문화가 되었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런 크리스마스는 교회가 주도하며 만들어가는 기독문화가 아니라, 대중문화가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네티즌 들에게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크리스마스하면 제일먼저 생각하는 것이 트리와 산타 루돌프(31.8%)였고 다음으로 예수님, 교회(15.5%)였고 나머지 연인,이벤트,공연,선물,카드순으로 나타났다한다. 이것이 기독 네티즌 들을 상대로한 설문이였기에 결과는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이미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세속주의와 상업주의가 만들어낸 합작품인 싼타크로스가 성탄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막기위한 반산타클로쓰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성탄절의 주인공은 싼타가 아니라 예수님이시다. 수년전 미국 보스턴의 가까운 어느도시에서 성탄을 축하하기위해 시청앞에다가 예수탄생 장면을 모형으로 만들어 놓았다가 뜻하지않은 곤욕을 치룬일이 있었다한다. 어떤 장난꾼이 아기예수를 훔쳐간 것이다.

예수님 아버지 어머니 동방박사 세사람다 그 자리에 있었고 그리고 아기 예수를 쌋던 포대기와 마구유도 그대로 있었다. 그런데 예수만이 없어진 것이다. 모든 것이 다 있다해도 있어야할 아기 예수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당황한 시당국은 라디오를 통해서 매일같이 아기예수를 가져오라고 호소했다한다. 그러면 우리들의 상태는 어떠한가, 아기예수가 우리마음에 있는것일까? 아니면, 노는데 열중하다가 예수를 도둑맞지나 않았는가? 화려한 파티나 훌륭한 음악회도 값비싼 선물도 요란한 장식도 모두가 다 예수없는 크리스마스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다. 복음서에는 예수님과 함께 그 족보와 탄생 장소들은 명시되어 있으나 탄생 연도나 날짜나 요일에 관해서는 기록이 전혀 없다. 12월25일 예수탄생일고 정한 제일 오래된 고대의 기록이라는 안디옥교주의 패오필드로스의 기록(751-783)의 학자들에는 위장이라고 단정되었다.

그러기 때문에 누구도 예수님이 태어나신날이 언제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물론, 초대 교회의 문헌에서도 찿아볼수가 없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만찬을 하시면서 ‘나를 기념하라’고 하시므로써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고 하셨지(눅22:19) 자신의 태어난날을 기념하라는 것에 관해서는 어떤 언급도 한적이 없다. 사도바울도 너희가 이떡을 먹으며 이잔을 마실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때까지 전하라는 것이다. 라고 말함으로써, 주의 죽으심을 전하라고 명령했다. 12월25일이 예수님의 탄생하신날이라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며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탄생일보다 예수님의 죽음과 재림에 관심으르 집중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이 4세기에 이르러 구원자 예수님의 탄생기념하는 관습이 이미 서방교회에서 보편화 되어 있었다. 필러칼스루스러의 A.D 354년 복사본은 12월25일 성탄절을 교회의 명절로 인정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최초의 기록이다.

그 이후 서방교회 즉, 로마 카톨릭의 교회는 성탄절을 당시의 오래된 로마인들의 국가 축제일인 태양신(太陽神)의 태양기념일로 동지 제일인 12월25일에 지킬 것을 명령했다.

콘스탄터루스황제에 의해 A.D 313년 기독교는 공인된 종교가 되었고 A.D 380년 퇴어도시우스 황제에 의해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었다. 따라서 무적인 태양의 탄신일을 구원자 예수님의 생일로 바꿨다는 것은 서방교회가 로마의 문화, 기독교의 문화로 변화시켯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서방교회와 다르게 동방교회는 1월6일 주님의 육체적인 생일과 영적인 생일로 성수하는 것이 4세기초의 379년부터 공식화된 것으로 보인다. 혹자는, 그리스도와 미사의 합성된 크리스마스라는 단어가 성경에 나오지 않고 12월25일이 원래 로마의 태양신의 탄생을 축하하는 축제일이기 때문에 이교적인 크리스마스를 지키지 말아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탄절의 본고장인 이스라엘의 베들레헴에서는 교회에 따라서 12월25일 이외에도 1월6일과 1월19일등 연중 3번씩이나 성탄축하가 열린다고 한다. 아멘. 메리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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