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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인간성 붕괴를 시키고 있다
자본주의는 인간성 붕괴를 시키고 있다
  • 교회협동신문
  • 승인 2023.12.06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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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영 목사
윤대영목사
윤대영목사

지금 인류는 대전환의 현장에 고독하게 우두커니 서 있다. 4차 산업의 시대라고 하기도 하고, 4차원의 시대로 향하는 전초전이라고 하기도 한다. 기술 문명은 그 기술이 놀라울 정도로 생성, 변화되고 있고, 역사의 해석과 적용은 다원화되었으며, 정치는 공간과 체제와 이념이 혼돈스러워진 상태이다. 인간의 경험 세계 역시, 직접 경험보다 간접 경험에서 가상 세계 경험으로 진화 되어가고 있고, 이질적 문화의 공존과 변동, 그리고 새로운 생성이 눈부시다. 이것이 옳은가 그른가를 판단할 사이도 없이 새로운 문화 안에 벌써 들어서 있기도 한다. 변화의 내용과 그 속도와 지향점마저 모호한 시대에 사는 인류는 무엇이 인간이며, 어떻게 살아야 인간답게 사는 것인지도 모르는 채 버티어 서 있다.

인간이 무엇인가? 왜 사는가 하는 문제를 묻고, 답하고, 정립하고 나면 또 다른 세계가 덮쳐오는 변화무쌍으로 그래서 인간답게 살려는 노력이 버겁고, 힘든 시대이다. 자본주의가 그래도 인류가 살아온 이데올로기 중에 가장 나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미 군주 시대, 제국 시대, 그리고 공산주의 시대는 몰락했다. 다만 자신의 정치 철학으로 삼고, 대중을 통치하는 집권 방도로서의 막시즘은 지금도 이용되고 있다. 그런 나라도 소수일 뿐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어떠한가? 인간의 욕망을 바탕으로 한 이데올로기인 자본주의는 대기업화되고, 기업의 이윤을 위해서 무자비한 개발과 경쟁으로 적자생존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로 인한 인류의 세세 무궁토록 사용할 자연 자원을 송두리째 파괴되고 이윤을 얻는 상품으로 전락 되고 만다. 지나친 자연의 훼손은 인류 모두가 살아야 할 조그만 돌멩이 지구를 견디지 못하게 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지구라는 돌멩이가 열을 받고 있다. 바닷물의 수온은 올라가고 있고, 각 대륙마다 기후는 이상기후가 되고, 건강한 여성의 생리처럼 지구는 인간을 낳고, 기르고, 살아가게 하는 생명적 규칙을 가지고 있었다. 이젠 이 규칙마저 이그러지고 허약해지고 말았다. 여기다가 인간 본능에 뿌리를 둔 산업의 동기는 무한경쟁으로 치달아 가고 있다. 작은 안방에 앉아 인터넷만 이어지면 세계 어디에,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고, 또 생산품의 가격과 아울러 구매하고 소비할 수가 있다. 이러한 소비자들을 끌어드리기 위해 디지털망은 촘촘한 어망에 인간을 모두 가두어 두었다. 소위 지구 어디서, 무엇을, 얼마에 팔고 있는지 훤히 알고 있다. 운 좋게 많은 사람들이 기호에 맞으면 하루아침에 명품이 되고 만다. 자본주의는 글로벌 경쟁함으로써 자연스러운 시장경제를 무너뜨리고, 온라인 시장이란 새로운 장을 통해서 유통하고 있다. 이로 인한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할 것들이 모두 상품화되어 반출되고, 반드시 그 환경과 삶의 방식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절대 유용한 것도 인류 전체가 소비하므로 하루아침에 붕괴 되고 있다.
팬데믹을 보라. 어느 한 동네 사람들만 알고 말아야 할 질환을 세계인들이 다 앓았다. 글로벌화의 원인이다. 이러한 변화에 발맞추어 명분은 ‘생계형 공급’이라고 하며 저리로 세계적으로 돈을 풀었다. 사실은 돈 장사가 박리다매한 것이다. 이젠 끝났으니 고이율로 끌어들이고 있다. 팬데믹 때나 지금이나 경제적 여유로움은 가진 자에게는 상관이 없지만, 노동자 농민과 소상공인은 차라리 팬데믹 시대가 낫다고 하며, 고이율에 목매어 발버둥을 친다. 자본은 풀었다가 다시 거두어들이는 유통으로 천문학적 이윤을 착취한다.

자본주의의 무서운 독소 하나가 더 있다. 그것은 분배이다. 능력이 있으면 일하라. 그리고 능력이 없으면 일할 수 없다는 노동시장의 불평등(사람들은 모두 기본수익이 필요하다)에 노동 없는 무능자는 도태되고 있다. 반대로 개인의 탐욕을 절제할 수 없는 노동자와 사용자 관계가 대표적이다. 가면 갈수록 산업현장은 집단 설비와 무관하게 재택근무 내지는 네트워크를 통한 생산 산업이 많아지고 있다. 집단보다는 개별적으로 갈등을 조율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자기만족은 없다. 이로 인한 불만으로 네트워크를 불통(不通)케 하는 사건이 부지기수로 나타나 혼란스러운 전체 시스템이 될 수도 있다. 인간의 욕구도 절제하기 힘들다. 현시대는 감성시대인 만큼 인격 중에(지(知), 정(情), 의(意)) 의지 부분이 가장 약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적절한 분배는 폭거로 표출되기도 한다. 만족이 없는 인간은 이상을 끝없이 추구하고, 개인의 이상에 다다르지 않으면 부족인 것이다. 이로 인하여 상호관계 상관없이 돌출적 행동을 하는 범죄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자본주의가 분배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지 못하면 결국은 집단 투쟁으로 나갈 수밖에 없고, 국가까지도 존립할 수 없는 사회가 도래할 것이다. 자본주의에서의 공정한 분배의 대안은 창출된 모든 이윤을 공동의 탁상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자본주 자신이 경영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으로 인한 이익만 취하고, 경영은 경영전문가에게 맡겨져야 하며 총수익을 밝혀 획득된 이익을 원탁에 앉아 모두가 함께 공유하는 시대가 열려야 한다. 주총(株總)에서 이익분배를 할 것이 아니라 생산자와 경영자, 자본가가 함께 원탁에서 공정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 자본주의에서 공영시대로 옮겨가지 않으면 정치체제까지 위협을 받게 된다. 이미 한국의 정치인은 국민을 위한 사람들이 아니다. 자기가 정치인으로서 얻을 분배 영역을 챙기기 위한 자본주의적 직업인이다. 공정주의로 변화하지 않는 한 인간 이성은 급속도로 붕괴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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