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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정의의 여신의 눈을 가릴 수 있을까?
언제 정의의 여신의 눈을 가릴 수 있을까?
  • 교회협동신문
  • 승인 2023.12.06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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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영 목사
윤대영 목사
윤대영 목사

유럽의 마을이나 도시를 방문하면 그곳 중심에 고풍스러운 건물이 우뚝 서 있다. 지금으로 치면 시청이다. 그리고 그 청사 건물 중앙에는 조각상 하나가 있다. 한 손에는 저울을, 다른 손에는 칼을 거머쥐고 있다. 바로 정의의 여신 유스티티아(Justitia)이다. 라틴어 Justitia는 영어의 Justice의 어원이다. 고대 그리스의 신화에서 정의의 여신 디케(Dike, die Gottin der Gerechtigkeit)는 손에 칼만 쥐고 있었다. 로마 시대에 들어와 정의의 여신상에 칼과 저울이 등장했고, 유럽 관공서 건축의 외장 조형물로 자리를 잡았다. 정의를 구현하는데 칼로서는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공정성과 공평성을 상징하는 저울을 여신에게 준 것이다. 감정에 휩싸이지 않고, 조금이라도 오해를 받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방으로 눈가리개(眼帶)도 15세기 말에 등장했다. 우리나라의 ‘법원의 여신상’은 대부분 눈가리개가 없는 눈을 가진 여신상이다. 대표적인 예가 대법원 건물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이다. 우리나라 고유 한복 차림에 강한 집행력을 상징하는 칼을 대신하여 법전을 들고 있으며, 눈가리개도 없이 눈을 멀쩡히 뜨고 있다. 조형물이 상징하듯 무전유죄, 유전무죄, 전관예우 같은 단어가 상식으로 통한다는 뜻인가? 공평성이라는 잣대는 인간이라면 눈을 뜨고 내리기는 힘겨운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우리나라의 판사나 검사가 피의자인 경우 사건의 기소는 아예 없다고 보면 좋다. 가재는 게편인 것이다. 집행자의 정의롭지 못한 인격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특히 한 정당 대표의 복귀를 놓고 국민들의 대다수는 ‘나 같으면 벌써 감옥에 갔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한다. 그가 혐의를 받고 있는 사건은 부지기수이다. 이제 새롭게 시작되는 ‘법인카드 불법 사용’의 문제를 보면, 집행 공무원의 양심선언으로 미루어 볼 때, 그 당대표의 인간 됨을 알 수가 있다. 수천번 국민의 세금으로 자기 돈처럼 사용해 왔다는 것이다. 소위 공사(公私)를 구분 못하는 사람이 어찌 공직(公職)을 맡을 수가 있었는가 의문이다. 그 자는 그런다고 치자. 왜 그 자를 그 무리(黨)들은 목숨을 걸고 지지하고, 옹호하고, 육탄 방어를 하고 있는가? 뇌가 있고 이성이 살아있으면 총선을 앞두고도 죽기 살기 자신들의 무리(黨)의 대표로 옹위하는 것을 보면서 의아한 느낌을 갖게 한다. 그 자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나는 한 푼도 가져간 것이 없다.’라고 했다. 맞다. 그 많은 부정한 돈을 자기명의의 통장에 오게 할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라는 말로도 해석할 수도 있다. 결국 현재 천문학적 액수의 돈은 어디엔가로 보냈다는 은어(隱語)일 수도 있다. 어디로 보냈을까? 쌍방울 그룹과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이화영이 관련된 대북 송금을 보면 오해할 만한 구석이 있다. 결국 북한으로 들어가지 않았는가? 억측할 수가 있다. 소설은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니다. 소설가가 쓰는 것이 소설이다. 그러나 이젠 우리나라 국민들은 누구나 소설가가 되었다. 혹시 북쪽으로 그 돈이 넘어갔다면 그 대가로 북쪽에서는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 그 무리들에게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 자를 대통령으로 만들라고 혹시 지시라도 한 것이 아닐까?’라는 소설의 한 대목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설을 쓸 수 있게 하는 단서가 있다. 북쪽의 김여정이라는 여성의 지시를 받고 북한으로 보내는 풍선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한 것이 그 무리들이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통하는 말이 있다. ‘당이 명령하면 인민은 무엇이든지 행동한다’라는 말과 같이 북쪽에서 지시하면 ‘무엇이든 우리 무리는 행동한다’로 바꾸어서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사회 정의가 사라지고 법관들까지 이념으로 재판하는 판단의 조직도 있다. 우리 법 연구회가 유사한 조직이다. 그렇다면 사법부를 믿고, 모든 부정이 정의롭게 밝혀지는 사회라면 국민들이 억측을 하고 남을 오해하는 죄를 범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지루하고 힘들어도 언젠가 사법부가 모든 사실을 밝혀내서 국민 앞에 소상히 알려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으면, 침묵하고, 기다린다. 이러한 여당마저 없으니 결국은 국민 각자가 정치 소설가가 되어 모이면 나름의 소설책을 큰 소리로 낭독하는 것이다.

한국경제가 세계적으로 10위권이라고 한다. 한국의 위상이 세계적으로 높아졌다고 한다. 한국을 발전과 번영의 모델로 닮으려고 하는 나라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공평한 정의의 실현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국민은 정의와 자유를 누리고 살 수가 없다.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나라 GDP와 행복 지수가 정비례하지 않는다. 행복은 마음이 누리는 것이다. 마음에 행복스러워지는 것은 정의로운 사람들과 함께 살 때이다. 이때, 행복한 국민이 되는 것이다. 언제까지 이념의 눈으로 보고 재판하고 자기 이익의 눈을 부라리며, 권력의 눈치를 보고 사법부가 판단할까? 이 모든 뜬 눈을 안대로 가린 공복(公僕)이 되어 국민을 공평하게 섬기는 나라가 될 때, 자기가 속한 나라에 애국심을 가지고 충성하는 국민들이 될 것이다. 이 대표를 정치적으로 보고 판단하는 사법부일 때, 국민 모두는 분노할 수밖에 없다. 언제 누가 한국 사법부의 외장 조형물인 정의의 여신상의 눈을 안대로 가리고, 천칭(天秤)을 들고 있는 상징을 바꿀 것인가? 그래도 그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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