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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말씀잔치를 시작하면서 21-22장
요한계시록말씀잔치를 시작하면서 21-22장
  • 교회협동신문
  • 승인 2023.11.25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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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것이다.
강영철목사
강영철목사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것이다. 계17:1~19:10 바벨론의 멸망을 묘사 계21:9~22:5 신부로 표현된 새 예루살렘의 축복 삽입구절 19:11~21:8 예수님의 재림, 아마겟돈전쟁, 마지막 심판, 새 하늘과 새 땅, 악한 세력 철저한 심판과 하나님의 계획하신대로 자녀들과 구원의 완성의 복됨 즉 우리와의 동거하심 사이에 교량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본문인 것이다. 초점은 구체적인 예루살렘으로 상징된 영광을 표현하기 전에 모든 것이 새롭게 된다는 것이다. 신천지는 이 세상에 것들이 발전 교정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즉 불연속으로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다. 죄악을 뿌리로 가지고 있는 것들이 완전히 제거되는 곳이 신천지인 것이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주로 악한 것들의 출현 죄악의 끊임없는 노도 계13:1,18:10~ 세상의 우상 숭배적 상업 활동의 무대로 바다가, 20:13~ 처음 하늘과 땅의 본질상 없어지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나오는 것이다. 2절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새로운 세상은 처음 세상과 다르며 새 예루살렘으로 상징되는 곳이다. 새 예루살렘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곧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영광과 복으로서 하나님의 완정한 통치로서 요소로서 새 예루살렘인 것이다. 환경적으로 신천지뿐만 아니라 자녀들의 복되고 완성의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구약 적 배경으로 내내 묘사 되었던 것이다. 사2:2~3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하나님의 통치의 완성을 이야기 하고 있다. 사18:7 ‘예루살렘 성, 시온 성, 하나님의 통치의 완성과 승리로 계속적으로 예언을 하고 있다. 사24:21-24, 겔36:33~36 “사람이 이르기를 이 땅이 황무하더니 이제는 에덴동산 같이 되었고 황량하고 적막하고 무너진 성읍들에 성벽과 거민이 있다 하리니”겔37:26~28“ 내 성소를 그 가운데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 내 처소가 그들의 가운데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슥14:8(계22:13에 의해서 성취된다) 요한의 계시록에서 예언의 완성과 성취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현실적인 의미 종말이라는 것은 세상이 하나님 앞에서 재주를 부리고 우연과 변수에 의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대로 가는 것이다. 세상의 참으로 길고 역사가 길다고 생각이 되지만 또한 인생의 예측 없는 정도로 느껴지지만 하나님의 열심과 간섭의 인생이라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확인차원에서 예언하시고 그 결국을 보여주는 것이다. 구약 적 배경으로 ‘요셉’을 들 수가 있다. 우리 못난 것으로 망하지 않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확인하는 것이다. 요셉보다 풍성한 세상의 역사의 끝을 보여주는 그리고 오늘 무엇을 준비하여야하는가를 가르치는 것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가진 신약의 성도로서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짧은 인생을 제대로 살라는 것이다.

계21:9-27 새 예루살렘을 묘사 전체적으로 두 주인공 성 삼위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초점으로 하고 있으며 11-14 외부적 아름다움16-17 외적구조 22-23 새 예루살렘의 핵심적인 요소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특징으로는 12숫자의 반복이다(12절~) 새로운 공동체라는 의미이며 신. 구약 성도를 대표하는 것이다 일만이천(12×1.000), 일백사십사(12×12) 둘째로 보석들을 꾸미고 있다(18절~)바벨론의 거짓된 것(계17:4; 18:16)과 영광되고 영원한 것과의 대조가 되는 표현이다. 헬라어 단어로도 이 보석들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도 있다고 한다. ‘내가 본 천국’세상에 있는 것들로 연상과 상상을 하는 것이지 천국의 실물과는 다른 것이다. 물론 신앙을 독려하고 열심히 하려는 차원에서 이해는 하지만 그것이 실재라고 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가지는 종교의 첫 번째 근거는 초월이기 때문인 것이다. 만약 ‘길이 보석이면 전부 관절염 환자’가 되는 것이다. 셋째로 성전이 없다는 것이다(22절~) 성 전체가 성전이 되는 것이며 지성소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 어린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성전은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하는 곳이며 죄 가운데 있기 때문에 지금 현실에서 구별하였다. 즉 부패와 모자람에 대한 구별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새 예루살렘은 그 나라 전체가 제한, 구별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과 어린양이 만나고 교제하고 예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 예루살렘성은 장소적 개념 보다는 공동체를 의미하고 성도와 하나님 두 주인공으로 이미지와 정체성이며 백성들과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를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이다. 어린양과 동거하는 개념인 것이다.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내 백성이 되리라’‘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완성과 성취의 자리이다. 요17:20~24 대제사장의 기도의 핵심은 ‘하나 되게 하옵소서’이며 곧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무엇인가를 드러내신 기도인 것이다. 그것이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되는 것이다. 일관성으로 보고 있다. 또한 고전 13:8~13 사랑 章에 은사는 자기를 증명하는 것으로 가지 말고 봉사적 개념으로 가지라는 것이며 현실에서 사랑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구원의 완성을 이루는 차원에서 가져야 하며 지금이라는 상황에서 ‘믿음’. ‘소망’ 있는 것이고 그러나 완성이 되어 현실이 되면 즉 하나님과 성도가 하나 되는 자리에서 사랑은 남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완성을 연습하고 훈련하라는 차원에서 본질은 결국 사랑이라는 것이다.

계22:1-7 1.새 예루살렘의 중심이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  하나님과 어린양의 것이며 생명수의 원천이며 다시는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의 통치가 은혜가 복됨이 부족함 없이 모두가 누리는 곳이다. 2.생명나무의 존재를 부각시킴 만국을 소성하고 에덴동산의 복된 것들이 완전한 회복이며 다시 말하면 충만하며 풍성한 것을 시행하고 결실하였다. 하나님과 어린양을 온전히 섬기며(3절) 예배, 감사, 왕같은 제사장으로서 형상을 만드신 인간의 참다움을 회복한다. 그러므로 새 예루살렘은 어린양의 신부로 보물로 부정적인 것이 없는 곳이며 하나님의 통치와 복주심이 온전히 시행되는 곳이다. 3. 계시록으로 교훈하는 것 가. 새 예루살렘은 이 세상 나라와 다르다는 것이다. 이 나라는 죄의 성질이 있고 각자 자신의 왕이 되려고 남을 헤치는 죄가 왕 노릇하는 곳이다. 그래서 진리와 거룩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유혹하는 곳이다. 물질, 쾌락, 자기중심이며 하나님을 외면하고 분리된 삶을 사는 곳이다. 이제 성도는 우리이 목적지가 어디며 그 목적지를 준비하는 자로서 이 땅에서 오늘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교훈하고 있다. 세상의 조건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있든지 없든지 하나님은 사용하시는 분이시며 가장 경계하여야 할 것은 세상에서 힘쓰는 것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는 것으로 되는 이상한 신앙을 버려야 하는 것이다. 주를 위한 열심과 진심이 어느 사이에 시험을 받아 변절되는 것이다. 이제 사도처럼 ‘약할 때 강함 되심이라’말씀처럼 하나님의 어떻게 일하시는가를 알아야 할 것이다. 나. 진정한 예배의 회복의 중요성을 교훈하고 있다. 엡2:20~21 천국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완벽한 자리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가장 근접하게 시행되는 곳이다. 최후의 예루살렘교회를 맛보면서 우리의 현실은 대단히 개인적으로는 훌륭하지만 둘의 하나가 되는 것은 대단히 취약한 것이다. 서로 받아주고 기다리며 오래 참아주는 부분에서는 연약한 부분인 것이다. 성경에서 언제나 요구하는 것은 관계성인 것이다. 다. 교회는 신앙훈련의 모임이다. 신앙인으로 살기 위하여 모여진 것이다. 그래서 “이기는 자는” 롬12:1-2 신앙고백에서 한국교회는 목숨을 바치는 것으로 대표된 것처럼 결사적인 것이다. 그러나 평상시에는 주를 닮아 가야하며 이런 측면에서 사역이라는 ‘일’ 차원에서 많은 진전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사람으로 연습과 훈련을 하는데 너무 약한 것이 현실이다. 서로를 존중하지 않으며 노력하여야 하고 용서해주어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을 위하여 하나님은 이미 십자가 사건으로 확정된 결국을 성도에게 보여 주는 것이다.

8절이후는 사도요한이 계시록을 기록한 후기를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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