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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말씀잔치를 시작하면서 20장
요한계시록말씀잔치를 시작하면서 20장
  • 교회협동신문
  • 승인 2023.11.25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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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년왕국 환상을 기록하고 있다. 그것을 시간 순서로 보면 계19:11 그리스도의 재림을 표현하고 있으며 천년왕국기록이 되어 있고 계 20:7이하에 최후 심판의 기록 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 지상에서 천년왕국 온다는 것을 전 천년이며 후 천년은 재림 전에 천년왕국이며 교회 세대 전체를 의미하는 것을 무(현)천년이다. 시간적 순서가 아니며 어떤 주제를 가지고 시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다른 각도에서 계시록의 기록인 것이다. 예를 들면 바벨론, 두 짐승 멸망은 같은 내용 즉 죄를 초점을 가지고 설명하는 것이다.
강영철목사
강영철목사

계20:1-3 천년왕국 환상을 기록하고 있다. 그것을 시간 순서로 보면 계19:11 그리스도의 재림을 표현하고 있으며 천년왕국기록이 되어 있고 계 20:7이하에 최후 심판의 기록 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 지상에서 천년왕국 온다는 것을 전 천년이며 후 천년은 재림 전에 천년왕국이며 교회 세대 전체를 의미하는 것을 무(현)천년이다. 시간적 순서가 아니며 어떤 주제를 가지고 시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다른 각도에서 계시록의 기록인 것이다. 예를 들면 바벨론, 두 짐승 멸망은 같은 내용 즉 죄를 초점을 가지고 설명하는 것이다.

계 20:1-3 사단의 마지막 운명(패배)을 묘사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일천 년 동안 ‘결박’과 3절을 7절 이하에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즉 사단의 최종적인 멸망을 표현하고 있다. 사단에게 어떤 제한이 있으며 궁극적인 그의 운명을 암시하고 있다. 사단이 처지를 이야기 하고 있다. 계12:7-12 사단이 하늘로부터 내어 쫓겼다. 강제적인 방출이 아니라 역할이 없어 쫓겨났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참소하는 자 고소하는 자가 더 이상 고소할 자가 없어서 쫓겨났다는 것이다. 예수 십자가 사건 말미암아 피고들을 가지고 못하고 있다 

13장과 17~18장에 나오는 두 짐승과 바벨론과 큰 음녀는 용 즉 사단 없이 대행자로서 저들이 활약을 나타내고 있으며 ‘천년 동안 결박’이 동일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계 12장 “장차 철창으로~” 묘사부분과 살후 2:5-7, 히 2:14 언급하고 있다. 계 20:4-6 내용은 성도들이 왕 노릇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성도들의 왕 노릇 하는 것입니까? 먼저 예수 그리스도가 통치한다는 근거에서 둘째로 예수그리스도와 연합 하여 하늘 보좌에 않아있기 때문에 인정하는 것이다 골3:1-4 성도의 운명 현실이다 우리의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러나 성도만의 죄를 거부할 수 있고 거룩을 유지할 수 있다. 신앙 행위가 영원한 것으로 누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종말론은 세상의 유혹이 있으나 지금, 오늘 성도는 왕 노릇을 하는 것이다. 단지 신앙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다가 하나님께서 성공 하는 것으로 드라마 틱 한 것처럼 여기는 것은 잘못이다. 우리의 종말론은 예수 안에서 허락된 구원의 기쁨을 빼앗을 수 없다. 예수왕국의 왕 노릇을 확인하는 것이다 요 12:31 요 15:32-33 완성 된 신천지는 완전히 허락 받지는 앉아지만 이 세상의 임금이 이미 바뀐 상태이며 하나님의 통치 안에서 천상적인 것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계20:4-6 1-3절 사단의 결박이 심판의 전조이며 심판과 구원의 완성 이라는 양면성으로 기록되고 있다. 4절“~천년동안 왕 노릇 하리” 해석이 나뉜다. 먼저 전 천년에서 ‘재림-성도의 부활(’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지상 천년 왕국( 왕 노릇, 통치) 둘째로 무 천년 초림(‘그리스도의 부활’)-재림 시까지(왕 노릇, 통치) 본문의 ‘보좌들이 계시’3절 최종 심판이 선언되고 그 내용이 언급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계시록에서 심판의 진행 상황을 설명하지 않고 그 때 성도는 어떻게 되는가? 그렇게 기록되고 있다. 동일한 방식으로 계11:15-18 셋째 화 장면을 소개 하고 그 내용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에게는 어떤 일이 있는가를 관심을 돌리고 있다. 결론적으로 계시록의 기록은 성도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계20:3절 선언과 그 내용을 7절로 연결되어야 하는데 성도의 형편을 먼저 설명하고 있다. 계20:4절 “내가 보좌들을 보니~” 단 7:15-22 구약 적 배경으로 승리하며 권세의 자리에 앉은 하나님의 모든 백성인 성도인 것이다. 동일한 내용이 계3:21 나온다. 계20:6절“~예수의 제사장이 되어~왕 노릇 하니라”동일한 내용이며 이 내용을 첫째 부활인 것이다.(이 의미는 아직 완성까지 가지 않았다는 의미다 계6:9-11 “아직 기다려라”먼저 죽은 성도 몸의 부활을 둘째로 죽은 성도는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하늘나라에 있다는 것이다. 계20:6절 “첫째 부활~없고” 성도가 첫째 부활로부터 계속 되는 영생으로 사는 것을 의미하고 있으며 주님의 말씀에서 요11:26 이다. 육체적인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예수를 믿는 즉시 영생을 의미 하며 비록 부활을 기다리고 있지만 하늘 보좌에 앉아있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하고 있다. 계20:5절 “그 나머지 ~살지 못한다.” 부활하지 못하며 죽으면 끝난다는 의미이다. 계20:11절 이하에 나오는 영원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며 곧 둘째 사망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둘째 사망과 상관없는 것이다 계20:4절 영혼(죽은 자)들은“예수의 증거~ 받지도 아니한 자들” 순교와 순교적 차원에서 신앙을 지킨 자들이며, 그 승리와 천년왕국 권세를 누리는 것이다. 그러나 순교를 각오하고 받은 보상이 아니라 신앙을 지켜서 현상을 비치고 있지만 이미 왕 노릇하는 것이 예수 믿는 지상에서 왕권을 누리다가 죽어서도 왕권을 누린다는 것이다. 신앙을 지키고 있다가 나중에 보상으로 연결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많은데 물론 그런 의미가 있지만 옛 뱀 잡힌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때문이다. 계7:13-14 성도들의 가지는 지위 권세는 그가 믿음을 지키고 순교한 것 때문이 아니라 그 이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이 보상이 되는 것이다 즉 구속사역이 은혜의 선물이다 계12:11 하나님의 백성들이 적대 세력 이김은 어린양의 피다. 어린양의 피로 인한 자리요 그 신앙을 가지고 지키는 것이다

세상에 공격, 핍박을 받고 수동적 소극적으로 신앙을 보지 말고 하나님 나라 확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사단의 왕국 밀리며 작아지는 것에 대한 발악이라는 적극적 신앙의 모습이 필요한 것이다 엡2:5-7 “함께 일으키시고~ 앉으시니” 그 원인을 5절에서 설명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믿는 즉시 보좌에 앉아 있고 왕 노릇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승자이고, 공격자이고 , 사단의 수세이고 발악하는 것이 현실이다

세상의 더 큰 세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거짓된 세력이며 영원한 말씀인 진리를 성도는 가지고 있다. 하늘의 모습으로 성도를 인도하여 보여주는 이유는 약속의 불변성과 그 곳에서 누리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신자 된 크기를 성도는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천국 열쇠 권을 가진 귀한 존재라는 사실 더 높고 넓은 눈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가야하는 것이다. “왕 노릇하는데 제사장이 되어” ‘좋은 일 하기도 짧은 인생’이라는 것을 확인 하시고 나누고 서로가 서로에게 복을 빌어 주는 복된 성도가 되길 바란다.

계20:7-10 사단의 멸망 짐승, 거짓선지자, 사단이 동일한 심판이며 한 사건이다 “천년이 차매” 문자 그대로 천년이 아니고 상징적인 숫자지만 하나님이 정하신 기간이라는 의미이다. 사단이 홀로 탈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때가 되어 잠깐 놓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경 전체 사상으로 보게 되면 복음이 만방이 소개 될 때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사단이 왜 잠깐 놓인 이유는? 심판을 받고 처벌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전투 준비하며 크게 성도들을 반대할 것이고 성도에게 환난이 있을 것이다. 계12:7-12 어린양의 피로 성도들이 승리 참소하던. 자의 자리를 잃어 버렸기 때문에 사단의 멸망이 시작이 되며 처벌받는 국면으로 들어 간 것이다. 성도에게 환난과 핍박이 허락된 이유는 환난이 우리의 소망을 이룬다. (롬5:1-5)다시 말하면 성도에게 영적유익 (성경과 교회사의 증거로 확인) 있기 때문이며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인 것이다 예를 들면 못난 인생들이 가지는 보편적 성향이 죄 성이기 때문이다.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인명 지명을 문자 그대로 대입하는 것은 무리한 해석이다. 겔 38:18~39:6 구약 적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곡 가지고 있다 ‘곡’은 ‘마곡’이라는 나라의 임금이며 상징적으로 이스라엘을 반대하는 세력인 것이다.“땅의 사방 백성” 사단에 의해서 불려 모아진 적대 세력들이다. 지명과 인명을 보편화 하는 예를 계16:12~14(여섯 대접재앙) 동방과=온 천하 임금으로 이해하며 계16:16(아마겟돈),계19:17~21아마겟돈으로 모으더라. =대적(짐승. 땅의 임금. 군대)들이 여기=20:7~10(사단의 중심)동일한 아마겟돈 전쟁이 되는 것이다. 즉 3 번씩 동일한 내용을 다른 시각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아마겟돈은 정해진 장소가 아니고 하나님을 대적하여 싸우는 우주적인 전쟁인 것이다 (계20:9절 “지면에 멀리 퍼져”) 그 정신과 내용을 늘 있었고 사단이 마지막 항거를 하는 전쟁인 것이다.

물리적 전투는 없으며 영적 전투인 것이다. 저들과 싸우는 전쟁은 없고 하나님께 속하여 있는 것으로 이기는 것이다. “성도의 진” “사랑 하시는 성”은 완성된 하나님 나라가 이미 실현된 하나님의 관심과 보호를 시사하고 있고 구약광야 교회에 배경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경륜 속에 허락된 전투이지 역사와 개인운명을 바꾸는 것은 없는 것이다. 10절 사단. 짐승 . 거짓 선지자가 마지막 심판을 받는다.

형통한 것이 좋은 것 같지만 하나님은 고난이 유익이라는 것이다 ‘죄의 본성의 뿌리를 뽑아야 승리 하는 것이다’ 이것 때문에 환난을 걷게 하시는 것이다. 롬11:30-32 “순종치 아니 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 율법으로 순종할 실력, 경향으로 본성이 악하다는 것을 인정, 확인하였다.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가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실패는 이방인에게도 실패가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실패에도 불구하고 이방인에게 성공하였다. 이방인에게 성공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도 성공한다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깊은 경륜인 것이다. 그저 고통을 기준한 비명을 지르지만 성도의 자랑과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이 역사와 인생에 간섭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지혜, 자비, 은혜, 사랑의 손길입니다 신앙의 현실에서 승리로 연결되기 바랍니다.

계20:11-15 마지막 심판의 광경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 ~책들이 펴 있고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다른 각도에서 이미 설명되었다 계14;14~20(추수의 모습) 계19:11~16 즉 바벨론, 짐승, 사단의 심판을 추적하면서 여러 가지 것들을 총체적으로 정리 하는 것이다. 최후의 심판을 왜 사도 요한에게 연속성인 시각을 가지고 보여 주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계4:1(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이 무엇인가) 2~11(하나님의 영광, 권세를 보여준다.) 계5:1~5(하나님께서 백성들이 없어서 구원을 완성 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말은 하나님께 瑕疵가 있는 것이 아니고 어린양의 나와서 인을 떼었기 때문에 구원 완성이 가능한 것이다.) 완성하시는 나라는 어린양으로 인하여 구원의 완성을 향하여 나가는 역사이요 반대하는 자는 멸망하는 역사인 것이다. 반복해서 인, 나팔에서 경고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떠나서 생명이 없다는 것이다.

십자가로 인하여 승리를 맛 볼 수 있게 하시고 반대하는 세력들은 세상을 의지하여 살면서 자신들의 의지가 거짓된 것이라는 것을 확인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모든 재앙, 세상은 결국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심판의 절대적인 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땅과 하늘의 두려워서 도망간다는 문학적 표현을 볼 수 있다.’ 단2:31~35 세상나라가 간 곳이 없는 것이다. 세상의 가치, 구조, 권세로는 하나님의 심판을 막을 수 없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만족할 만 수준에 없는 것은 다 소멸한다.

그러나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만족이 되는 것이다. 계6:12~14 즉 성도는 세상에 의존하고 기대어 살면 안 되는 것이다. ‘쓰나미’재앙들은 인류 역사상 계속되는 일이다. 결국 그 재앙의 성도에게 질문은‘너희가 무엇을 의지하고 살고 있느냐 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비적인 심판에도 우리는 감당하지 못하는데 종국적인 심판을 어떻게 감당하겠느냐? 따라서 우리 자신의 힘으로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안에만 우리의 보상이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20장 계시록 개괄 1-3 절 초림과 재림사이 사단의 결박이며, 교회시대이다 즉 첫째부활, 왕 노릇하고 있다. 중간시대-몸의 부활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4-6 절 천년동안 왕 노릇, 첫째 부활의 기간이다. 7-10 절 사단이 아마겟돈전쟁에서 불 못 심판을 당하며 11-15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의 심판으로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20:4b~5) 신앙의 완성은 하나님의 충만 하심으로 되는 것이다. 환난과 고통이 재앙들(일곱인, 나팔, 대접)이 되는 것이며 성도에게는 환난과 고통으로 신앙의 완성이고 세상 사람들에게 종국적인 심판의 모형이 되며 그들에게 회개의 기회가 된다. 

계20:11-15 마지막 심판의 광경 중에 악인의 심판기준 마지막 심판의 광경 중에 악인의 심판기준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성도와 구별되어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계2:23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성도와 구별되어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공의로운 심판이며 핑계와 반박할 근거가 없음을 보인다.’반면에 성도의 구원은 행위와 성도의 결단과는 관계없는 것이다 계21:27 다시 말하면 행위와 성도의 믿음을 대조하는 것이다. 자신을 근거로 하여 산자와 예수 그리스도를 근거하여 산 자를 구별하였다 얼마나 악 했냐 덜 악 했느냐 2차적인 것이다. 마7:16~ 악인들의 받는 심판은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한 심판 나누된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예를 들면 포도나무에서 포도열매를 맺는 것이다. 그 열매가 나온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행위가 나빠서 벌 받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가 나올 수밖에 없는 그 존재와 근거를 이야기 하고 있다. 요15:4~ 우리의 구원은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우리의 구원은 공로가 아니라 생명책에 있기 때문에 그 가지가 말라질 수 없는 존재임을 말하는 것이다. 좀 더 쉬운 표현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이다. 착한 일을 했다 악한 일을 했다가 아니라 우리가 어디에 소속 하였는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더 많은 실패와 회개가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성경은 요일1:7~ 성도는 회개, 용서가 반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계14:13~ “주 안에서 죽는 자는 복이 있도다. 수고를 그치고 쉰다는 것이다.” 적대 행위를 받고 있고 속으로 탄식하며 완성을 향하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사죄와 눈물을 구하는 것이 현실이며 수고가 되는 것이다. 타협하지 않는 것, 또한 인생 가운데 울고 후회하는 것으로 일생이 끝나는 것이지만 거기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이다. 고전15:51~58 더 이상 갈등이 없는 것을 승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나온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였는데 ‘노동력이 남아 있으면 일터로 보내고 없으면 가스실로 가는 것이다.’어느 날 전쟁의 끝날 기미도 안 보이고 포기하면 히죽 웃는 것이다. 그러나 절망과 최악의 상황에서 악을 물고 견디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약속을 붙잡고 내 운명은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한 것이다. 울지언정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심령의 가나안 자는 복이 있다”복을 받은 자의 증상인 것이며 부름을 받고 영안을 보며 자신의 죄인이며 파산을 안다. 회개가 맨 처음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의 일반적인 성격은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마직막심판대 앞에 생명책에 있는 것이 이유가 되는 것이요 현실에서 적용하여야 하며 믿음 안에서 울며 부족함에 대하여 한탄을 하는 것이다. 한탄과 눈물과 후회함이 없는 날을 기다리며 무릎으로 기다리며 약속을 가지고 견디는 것이며 고통 절망하는 것 까지도 신앙 인줄로 확인하며 몸부림이 복된 증상으로 확인하고 믿음 안에서 승리 하시기를 바랍니다.

계20:11-15 생명책에 기록된 성도의 신앙의 요구 및 책임 13절 생명책에 기록된 자와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 자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평행어구로서 영원한 심판의 예비적 상황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인데 그리스도 품안에 있지 않는 것과 대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기가 근거인 삶과 그리스도가 근거의 삶과의 대조이며 결국 어디에 속했는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생명책은 살아 있는 자들을 암시하고 있으며 현실에서 죄를 범하지 않는 것 거룩을 유지하여 상 받는 것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마7:21; 12:33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이기 때문에‘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이다’요15:15 어디에 속했는가? 그것이 심판의 근거가 되는 것이며 얼마나 열매를 맺는 가 그것은 2차적인 문제가 되는 것이다. 영생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의 완성으로서 하나님의 백성, 만물 정황이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의로우심 아래 있는 것이며 방해나 저해조건이 없는 것이다. 여기서 방해나 저해 조건으로 사망과 음부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왜 나는 영생이고 저들은 영벌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종말이 궁극적인 완성이 모습이 영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궁극적 완성과 보상을 보여 주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도 된 것을 무성하고 풍성하며 충만 한 것으로 확인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성도의 자랑이요 원리요 감격이라는 것을 가지고 생활하라는 것이 계시록이 기록이 목적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상 받고 벌 받고 하는 것이 종말이 아니라 궁극적 완성과 보상으로 종말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12:32 세상에서부터 그리스도 앞에서 매진하라는 것이다. 성경을 기준으로 확인하고 자녀의 자리로 확인 하라는 것이다. 마25:31~ 지극히 작은 자(오해:가난한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로서 세상 질서 밖에 있는 자이고 저들에게 세상 적 보상이 없기 때문에 괄시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께서 모든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는 시각으로 세상을 사라 가는 것이다. 성도의 시각, 분별, 원리를 가지고 새사람으로 살아야 하며 공로나 짐으로 생가가하지 말고 당연한 권리요 복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생활로서 어떤 조건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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