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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말씀잔치를 시작하면서 17장
요한계시록말씀잔치를 시작하면서 17장
  • 교회협동신문
  • 승인 2023.11.25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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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적인 초점 악의 세력은 커 보이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 허락 속에 정복당하고 만다는 것이다.
강영철목사
강영철목사

계17:1-5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자만의 가득 차 있다) “참람된 이름”(하나님을 훼방 거부 외면 스스로 하나님의 되려는 자만심 정절 절제 지키지 않는 사치의 모습)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특별한 존재이라기보다 세상의 죄악 된 풍조와 세력으로 묘사 함)

궁극적인 초점 악의 세력은 커 보이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 허락 속에 정복당하고 만다는 것이다. 구약은 예수님의 오시고 시작되는 것이다. 초림과 재림 사이의 기간이 얼마나 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예수님의 오시면서 종말이 시작된다. 기간적이지 않고 초림다음 순서로 재림 인 것이다. 예를 들면 에녹의 아들 므무셀라 죽으면 심판이 임한다. 그러면 므두셀라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괜찮다는 의미가 된다. 신약 전체를 종말적 시각으로 본다면 세 국면을 십자가 부활로 승리하고 모든 나라에서 그 백성을 부르는 것이며 둘째의 국면은 악의 세력과 영적으로 싸우며 핍박과 환난을 견디어 그리스도와 함께 승리하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와 왕 노릇 하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현실적으로 피해를 보며 우리의 신앙을 지키는 행위가 죽은 영혼을 불러내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이며 자녀의 자리를 지켜 하나님의 왕권을 선포하는 것이다. 계시록에서 일곱 인, 나팔 재앙이 포함되며 다시 말하면 경고적인 심판과 재앙을 내리는데 저들은 회개치 않으며 훼방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나라가 확장 된다. 세 번째 국면은 어린양의 승리와 그를 따르는 백성들이 승리를 다루고 있다. 계시록은 주로 두 번째와 세 번째 국면을 주로 다루며 개인으로 따지면 모든 개인들에게 초대교회이거나 앞으로 후대에 살거나 상관없이 경험되어지거나 이해되어져야 한다.

오늘은 전체적인 국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17~19:10 바벨론의 패망을 예언하고 있다. 또한 16:17-21 일곱 대접의 재앙의 상세한 진술이다. 17장은 왜 바벨론은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시겠는가?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 앞에 정절을 지키지 못하는 불신앙으로 음녀, 음행이 등장한다. 나님을 외면하는 모든 불신앙을 죄목으로 지적 하고 있다. 18장은 바벨론의 멸망의 가지는 결국 다시 말하면 세상의 반응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9절 이하 ~ 애가인데 패망을 소원으로 자랑으로 삼고 욕심내는 추정한 자들이 애통이며 비탄이며 절규인 것이다. 무섭고 놀라운 심판 인 것이다. 19장은 성도의 승리와 감사가 된다.1~10 바벨론의 멸망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승리를 의미하고 있다. 궁극적인 승리와 감사와 찬송을 그려내고 있다. 성도의 신앙적인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며 대적들 속에서 그 신앙을 실천하여야 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구원의 허락된 성도와 대적하는 자들의 싸움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종말론의 관점이 되는 것이다. 계2:10 서머나 교회 편지에서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 주리라” 대 환난을 면제하는 휴거는 종말은 없으며 고난과 환난의 현장에서 견디고 오래 참는 성도의 싸움을 종말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요21:18~21 제일 많이 하는 질문 나만 당합니까? 아니면 상대방만 당합니까? 너나 잘해 맘 하고 비교 할 것 없다는 주님의 대답에서 공통된 결국은 믿음을 지키는 싸움인 것이다. 죽도록 충성하라는 것이다. 상대와 비교하거나 핑계거리를 거두고 책임 있는 신앙 인생으로 살라가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참고적으로 자식 걱정과 자식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보다 자식을 더 사랑하는 것 개념보다 부모 된 마음을 적절하게 표현하지 못한 것이다. 그럴 때마다 우리 부모 보다 하나님의 우리 자식을 더 깊이우리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계17:1-6 계시록 사건의 일어날 순서로 역사적 해석 반복해서 개괄적 해석 - 일곱대접 환상의 내용이며 바벨론과 파괴의 근본적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종교적인 배교 또는 정조를 잃어버린 자를 음녀로 표현한다. 1절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위에 앉은(15절 열국 방언-세상 모든 나라 관용어구 세상 전역에 걸친 모든 백성과 광범위한 영역을 표현한다. 동시에  5절 바벨론-인본주의 불신의 원형으로 상징하는 의미로도 나타낸다. 렘51:13 바벨론 설명한다.많은 물가에 거한다~ 유브라데를 옆에 낀 수로의 망상을 가진 상업적 군사적인 지정학적 위치를 차용)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2~3절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바벨론의 모습에 보듯이 경제적 번영을 추구하며 유혹하는 대표자라는 것이다. 계14:8 동일한 표현이다.)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여자를 자세히 볼 수있는 곳으로 환상의 분명한 초점으로 의도 된것이다.)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계12:1용이 붉은 빛을 입고 등장하는 것과 동일한 표현한다. 공포의 색으로힘, 두려움을 느끼게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또한 하나님을 떠난 죄악된 모습 자기 만족, 죄에 취해있는 모습 사1 너희 죄가 주홍빛과 같을지라도~ 반면에 성도는 흰 옷으로 대조 된다. 음녀와 짐승과 동맹관계로 보이며 공통된 사역은 죄인을 유혹하고 속이는 일을하는 것이다. 계13:6.11~ 성도와 하나님을 훼방하는 것이다.) 4절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사치와 호화 물질적인 복으로 유혹하는 자, 음행의 잔을 마시게 하는 자이다.(2절) 취하게 한다(4절)음녀이 그런 식의 표현은 취하게 함으로, 분별함 틈을 주지 않는 유혹하는 본질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5절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음녀이 그런 식의 표현은 예를 들면 돈은 가지면 가질수록 모자라는 것이다. 돈이 없으면 정신이 들고 즉 정당한 생각이 되고(예를 들면 찾아 뵐 사람 생각이 남) 돈이 있으면 그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술도 도박도 그렇다. 다시 말하면 세상의 부가 그렇다는 것이다. 결국은 사망으로 끝나는 것이다. 취했고 소경이 되었고 감각이 없게 된다. 

딤후4:17~ 허망하게, 무지, 분별이 없다, 감각이 없다 파멸로 끝나는 것이다. (문둥병) 이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며 영적분별하고 성도와 차이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렘51:7~ 미친자이며 남도 미치게하고 취한자이며 남도 취하게 한다. 결론은 마 6:19~관건은 무엇이 진정한 생명이며 파멸인가를 분별인것이다. 21절의 관건이 시금석이 되는 것이다. 시간과 마음을 어디에다 두는가 ? 공부 못하는 학생도 공부를 해야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안 하는 것처럼 내 삶의 어느만큼 공부하는지 그 비율 을 점검하는 것입니다. 눈은 좌우는 전 생애와 운명을 망친다는 의미가 된다. 분별이 있어야 하며 그것에 맞는 행동을 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참고적으로 초월을 과시하기위해서 '당신 집안에 큰 재난이 있데' 미혹이 되는 것이고 성경은 근본적이고 원리적인 것을 가리친다. 언제 부를지모르니까 오늘을 성실과 충성과 인내인것으로 성경은 가르치고 잇다.

계17:5-7 5절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MYSTERY '신비' 의미가 있다. 천국 비유 등장하는 단어와 동일하다.)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 비밀이라는 것에 나머지 이름들이 종속되었다는 뜻이다. 즉 비밀의 내용과 이해로 ‘바벨론’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가 되는 것이다. 구체적인 인명을 가르치는 것 보다는 7절을 근거로 해석이 필요한 것이다. 마치 유대인들이 하나님 나라가 들어 왔는데 모르는 것과 같은 것이며 즉 보이는데 모르는 것이다. "당시 로마의 열 황제로 " "옛날 바벨론이다" 이런 식의 해석은 곤란하며 죄악 된 속성의 확대 악의 근원이며 세력이고 대표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비밀의 큰 바벨론이라 해서 이해를 돕고 있고 가증한 것들의 어미로도 우리의 이해를 돕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전 인류역사 속에 등장하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형인 것이다. 그 것은 구체적으로 소돔, 바벨론, 로마 ~ 공산주의, 그리고 물질의 최우선 되는 자본주의 원리와 내용상인 것이며 바벨론이 되는 것이다. 음녀라 한 것은 하나님을 반대하고 자신과 하나님 없는 것으로 욕심을 추구하는 자 곧 우상숭배자 인 것이다. 

하나님께만 우리 필요를 추구해야 하는데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는 것을 마치 부부관계로 비유하여 음행이라 표현하고 있다. 고전6:9~10 죄악상들을 묶어서 묘사하는 것을 보면 결국은 우상숭배로 모으고 있는 것이다. 즉 다른 죄들을 나열 하는 것은 윤리 도덕적 차원에서 죄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 죄라는 것이다.(엡5:5) 무슨 죄든 우상숭배인 것이다. 탐한다는 것은 1차적으로 소원한다는 뜻이며 우리가 기준이 되어 소원하거나 목적하는 것은 다 죄이고 곧 우상숭배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1차적으로 죄라고 하면 우리가 속해 있는 나라의 정서, 윤리, 도덕 정서로 이해 하지만 하나님께 구하여 할 것을 다른 것에 구하는 것이다. 만족하라는 것이다. 우리의 게으름이나 무지함이 고쳐야 할 것이지만 주신 것 외에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전부 우상 숭배가 되는 것이다. 죄가 무엇인가를 깊이 알아야 한다. 나의 주인 되심과 통치함과 의로우심의 신앙상의 문제가 되는 식이다. 하나님께 속하여 있는 것이 거룩이고 속하여 있지 않으면 죄가 되는 것이다. 롬6:23 보다 사실은 많은 내용을 가진 결론이다. 

롬6:12~14 구원 받았으니까 순종과 실천하여야 하겠다. 롬6:15~22 오히려 너희는 구원을 받았으니까 이렇게 살아라. 하는 순서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선택의 여지없이 죄 밖에 없었다. 하나님 없이는 윤리 도덕 문제가 아닌 연합되지 않는 자는 아무리 실천해도 의가 없고 생명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하나님 사람으로 생명을 공급 받아 사는 성도라는 것을 놓치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을 못하면 결실하지 않으면 음녀가 우리를 유혹하는 것이다. 맞아 틀려 이런 식으로 가면 틀린 것이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어떤 분 인신가를 놓치지 않는다. 성도는 은혜와 자비를 강조해서 게을러지고 나태해지며 또한 공의와 열심히 너무 나간 것도 결국 자기 기준이 되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멸망의 자리까지 나두지 않지만 그래도 늘 깨어 있어야하는 것이다. 음녀의 술수는 ‘예수 믿고 잘 된 게 뭐 있느냐’ 그래서 우리는 세상 앞에 완전함을 위하여 조급함으로 가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함의 신비함에 대하여는 다 알 수 없지만 우리는 늘 깨어 있어야 하며 근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주 주를 위한다며, 또는 자신의 욕심에 의해서도 넘어진다는 것이다.

6절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기이히 여기고 크게 기이히 여기니 7절 천사가 가로되 왜 기이히 여기느냐 내가 여자와 그의 탄바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 

계17:6-8 6절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기이히 여기고 크게 기이히 여기니 " 악의 세력의 원형들이 심판의 원인을 설명하고 있다. 극단적인 핍박과 역사상 하나님을 대적 하는 것으로 죄악 된 세력이 성도들을 핍박과 박해가 저들이 행동과 내용을 삼고 있다. 4절은“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 하더라 성도들의 피와 증인들의 피의 내용인 것이다.

음녀의 정체와 그 속성의 궁극적이며 본질적인 것으로는 결국 종교적인 것이며 정치, 사회, 문화는 나타나는 현상인 것이다. 음녀는 결국 하나님 나라 확장을 반대하며 하나님의 뜻을 방해 하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또한 세상의 가치로 성도를 미혹하며 신앙의 전진을 방해하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성도는 대표적으로 순교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성도의 소개는 계14:4~5 신앙적인 정절,~ 19:7~8 언제나 흰옷을 입은 자로 묘사되고 있다. 음녀의 자주 빛(세상의 향락)과 성도의 흰옷(하나님 앞에 신앙을 지킨 순종을 의미)으로 대조하고 있다. 예를 들면 종말은 역사 끝에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고 우리 주님 초림과 재림사이 전 기간에 걸쳐 되어지는 일인 것이다. 구원을 허락하사 실제로 성도를 모으며 우리 주님과 왕 노릇을 하든지 아니면 반대로 자주 빛 옷을 입고 사는 선택이 결국 종말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매일 종말론 적 선택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 된다.

엡 6:10~17 “전신갑주”는 지금 입어야 하며 성도는 대적 앞에서 서야 되며 전쟁 중이며 하나님의 통치와 획득과 책임을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는 싸울 수밖에 없는 그런 시대로 살고 있으며 성도의 궁극적인 약속을 늘 확인하여 그 책임을 지키는 것이 매일의 삶에서 나타내는 것이 종말적 삶인 것이다. 내용상 언제나 신약시대는 종말시대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 사람으로 언제나 싸움을 하여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삶이 어떤 정황도 신앙적인 일이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이다. 모든 문제에서 세상의 정신을 따르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결국 두 상태만 존재하는 것을 종말이라고 하는 것이다. 매일 싸움에서 세상 적으로 사는 것이 우리의 본래 모습이며 우리의 습관적인 것이다. 반면에 신앙적인 것이 우리의 습관으로 나타내는 것이 신앙이 자라나는 것이다. 큰 것에는 별 문제가 없지만 사소한 것에 우리는 늘 지고 만다는 것이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많이 하나님 통치아래 있어야 하며 그것이 하나님의 통치범위를 확장하는 것이다. 마 6:31~ 세상 적으로 먹고 사는 것이 우선이다. “그의 의를 구하라” 그의 나라(통치)에 순종하는 것이다. 말씀대로 사는 삶인 것이다.

결론은 34절이다. 신앙은 하루만큼 싸우고 또한 시험을 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사단의 작전 중에서 성도는 핍박, 유혹에서는 승리하지만 '내일부터 하자'는 성도가 거의 넘어져서 결국 사단에게 지고 만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이야기 하면 역사의 끝이 아니고 지금을 요구받고 있으며 선택과 책임을 알고 이 싸움을 하여야 한다. 그래서 계시록은 결국 이길 것이니까 오늘을 이기자는 것으로 위로와 격려와 확신이라는 것으로 기록 되어 있다. 

7절 천사가 가로되 왜 기이히 여기느냐 내가 여자와 그의 탄바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  8절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

계17:6-11 음녀를 요한은 기이히 여겼다 왜 기이히 여겼을까 ? 하나님을 대적하여 이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패망한 사단의 세력 아직도 힘을 쓰고 있다는 것이 기이히 여긴 이유가 된다. 7절 이하 기이히 여긴 설명이다. 일곱 머리, 일곱 왕의 기이히 여기는 것을 푸는 열쇠로 제시하고 있다. '네로 환생 설' (뉴 톰슨 성경)주해로 달아놓고 있다. “네로 환생 설”을 소개하면 10절 ‘일곱 왕’을 사도 요한시대 로마 황제로 이해 역사적 사실로서 보고 있는 것이다. 시이저 황제 이후 5번째 황제가 네로이며 6번째 황제 베스파니아누스(계시록기록의 시점) 7번째 황제 티투스 황제 8번째 도미티아누스(네로의 환생이라 불릴 만큼 핍박과 악행을 일삼은 황제) "죽었다가 살아 난 일" 최고의 내용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 역사에 걸친 하나님 나라의 완성과 대적의 적대행위와 몰락을 다루고 있다. 7절 "열 뿔과 일곱 머리"는 권세의 큰 것 등이라는 해석이며 짐승의 성격과 활동에 관한 설명이고 "일곱 산" 로마는 일곱 언덕위에 도시 "음녀가 많은 물 위에 앉아" 로마의 티베르강이 흐르고 있어서 지형학적인 해석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그 지형에 합당한 것은 로마 보다는 바벨론인 것이다. 사41:14~15 '산 들은' 하나님 나라의 대적들을 의미한다. 9절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하나님의 대적하는 세력 완전 한 수(7) 이해한다면 역사 내내 어느 시대, 장소 배후에 세력으로 음녀와 짐승인 것이다. '또 일곱 왕이라 ' 적대적인 세력이 끊임없는 출현으로 표현하고 있다. 역사는 음녀가 주도하여 혼돈하여 왔으며 심지어 중세시대에도 완벽한 하나님 나라다고 주장하여도 이루지 못했고 결국 지상천국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신자로서 살게 되면 현실적 형편으로 고난이며 하나님을 외면해서 성도가 고난을 당하는 것은 아니다. 적대 세력 밑에 두어서 완성하기로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신적 지혜가 되는 것이다. 애급 노예시 이스라엘 왕국이 성립한 것처럼 마지막 왕국도 적대 세력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들로 구성 된 나라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물질-자본주의, 정치-공산주의 결국 신앙은 물질과 정치에 관한 싸움이 아니고 영적인 싸움인 것이다. 신앙생활이 핍박기가 더 쉽지 안했나 생각이 든다. 기를 쓰고 다시 보면 서해안까지 밀려가는 것이 우리의 형편이다. 신앙생활 안하든 무슨 말 하는 사람이 없고 하든 무슨 확인이 없는 세대에 살고 있다. 10절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 십자가 사건으로 사단은 현저하게 그의 세력을 잃어 버렸다. 하나는 있고~ 우는 사자와 같이 공갈치는 놈이 현실 가운데 있다. 하나는~ 최종적인 총체적인 적그리스도가 등장할 것이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8절에 반복이며 다르게 설명하고 있다.

"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 현실 가운데 성도의 이해는 계 2:8절 이하에 나온 바와 같이 현실에서 “사단의 회”가 있으며 우리 중에 얼마만큼 핍박으로 큰 염려도 하게 되나 죽도록 충성하라는 것이다. 인내와 충성이 있어야 하며 그의 계획에 따라 만들어 가는 것에 성도의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러나 그것은 십자가 사건도 동일한 것이며 십자가는 망하는 것 같지만 놀라운 구원을 보았던 것처럼 같은 원리 인 것이다. 한 알이 밀알이 떨어져 썩는 것 같은 부활의 진정한 완성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영광을 위하여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다운 충성을 약속하여야 한다.

계17:8-11 일곱 머리와 열 뿔의 신비의 내용과 사도요한은 음녀와 그 탄 짐승을 기이히 여기고 있는데 그 설명의 부분으로 8-11절은 짐승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짐승의 누구냐 '무저갱으로부터- 진노의 장소이며 하나님을 대항하는 적대 세력의 그의 정체인 것을 설명-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다시 말하면 패배할 운명의 존재라는 것이다. 8절이나 10절은 같은 설명이며 즉 일곱 머리(산, 왕)는 그 시대마다 하나의 세력으로 자리 잡고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이다. 본문에 나타나는 짐승 전체를 살펴보면 1. 십자가 사건으로 결정타로 패배(히2:14-16 -없이 하며 영어 표현으로는 '파괴하다'는 뜻이 아니라 자격정지 같은 의미다.) 2. 그러나 세력이 약함(죽게 되었는데 나으며 온 세상이 이상히 여겨 그 짐승을 따름) 3."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 왕이니" 8째 의미는 짐승의 활동이 과거 현재 종말의 반역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며 순서로서 8이 아닌 것이다. 그 '일곱 머리와 열 뿔'로 이것은 하나님을 반대하는 정도의 과도함 (충만함을 넘어선 표현) 악의 세력의 특성과 목적과 운명으로 설명된 패역 되고 과도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8째 인 것이다. 유대인의 문학양식으로 예를 들면 창조도 7일로 끝나는데 그 이상을 넘어선 것이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8절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8째 왕으로 극심하고 과도한 반항을 할 것이지만)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다시 말하면 적대 행위에 대하여 무서움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예를들면 마28:16-19 우선적으로 하늘과 땅의 권세를 우리 주님께서 쥐고 있다. 즉 십자가로 인한 승리를 쥐셨기 때문에 우리 보고 “가라”는 것이며 “모든 족속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부르는 내용은 마12:22-30에 예를 들면 귀신 쫓아낸 후 시비의 내용이며 만약 심령을 붙잡고 있는 그 힘보다 더 큰 힘이기 때문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냐? 복음을 전하여 흑암에 붙잡혀 있는 자들이 돌아오는 것을 현재 우리가 보는 것은 사단의 그의 힘을 빼앗긴 것이며 또한 성도는 늘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신앙생활이란 붙잡혔던 죄를 버리고 거룩을 쫓으라는 것이다.(골3:5-10) 범죄로 인한 고민들 등 이 모든 것들이 지금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십자가로 승리한 탓이요 그 고민은 승리한 자로서 가지는 자신의 연약함인 것이며 자신과 시대나, 이웃 앞에서 백성으로 살며 결단과 순종으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모든 소원을 방해 할 수 있으나 운명을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 승리를 시작하셨고 결과로 만들 것을 아는 자로 있는 것이다. 

계17:12-14  17장에서 음녀(짐승)멸망의 원인을 소개받고 설명하였다. 일곱 머리, 열 뿔 역사 전반에 걸쳐 하나님을 반대하는 세력 집단이며 10절 일곱(완전수로서 전체 역사) 5는 지나갔고 지금은(6) 마지막시대(7) 사단의 대행자로서 그 일들을 수행하는 것으로 등장하고 있다. 열 뿔은 일곱 머리를 돕는 정치적인 세력으로 등장하며 그 세력들을 돕는 동맹들이다. 열(10)은 많다는 의미와 다양하다는 것이다 또한 여러 세대 등장하는 수다한 동맹인 것이다. “임금처럼 권세를 일시 동안 받으리라” 마지막 일곱 머리에 해당하는 왕으로 설명하는 아마겟돈전쟁에서 악한 세력이 출현과 그 짐승들과 협조하는 그 때를 "일시"라 한다. 다른 시각과 각도에서 이미 나왔고 종합해서 확인하면 13장 짐승의 등장 1절, 바다에 올라온 짐승은 4절에 용이라는 사단 즉 악한행동의 대행세력이 짐승인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된다. 적그리스도는 최후의 발악하는 자, 또한 모든 세대에 하나님을 반대하는 것도 적그리스도라는 이중적의미로 사용한다. 13장 10절 땅의 올라온 짐승(거짓 선지자 노릇을 한다) 15절에 땅의 짐승은 적그리스도를 우상화하며 사람을 미혹하게 한다. 하나님을 반대하고 성도를 미혹과 박해를 한다. 그 내용을 다시 16장으로 몰고 간다. 16장 12절 이하 일곱 대접 재앙인데 여섯 대접이 쏟아져서 동방에서 온 왕 즉 아마겟돈 전쟁 때문에 오는 것이다. 그것이 열 뿔인 것이다. 사단의 그 배후에 있고 그 대행자로서 돕는 열 왕이 되는 것이다 미혹하는 일을 하며 17장 13절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맨 마지막 전투를 위하여 패하여 종말을 고한다.

성도는 인류역사를 이해한다. 성도의 기도와 뜻을 모으면 세상의 낙원이 되는 것은 성경이 약속이 아니다. 세상은 개선되지 않는다. 끝없이 악으로 갈 것이며 결국 패망할 때까지는 세상은 약화 되거나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신적 작정을 지혜를 실행해 나가고 있으며 성도들을 그의 나라로 불러들이며 성도가 무슨 죄를 범하여서 당하는 것으로 형벌을 받는 것으로 쉽게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 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엡6:10- 신앙은 전투라는 것이다, 파티를 안식을 누릴 수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화목 되었다 화목, 행복이란 것은 우리의 운명인 것으로서 의미이며 현실적인 행복과 평화로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언제나 힘써서 어제 일을 잘 했다고 오늘의 보장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마 6:33 한날 괴로움은 매일 반복되며 면제된 것이 아니고 매일의 신앙의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일에 무시로 한 순간도 예외 없이 바울조차도 나를 위해서도 기도 해 달라는 것이다. 죄수로 바울 감옥에 옥중에 있다. 그러나 담대해졌다는 것이다. 죽을 각오로 하였다는 것이며 죽음 앞에 인생은 단순하여 진다. 고통을 이겨 달라는 기도가 아니고 은혜와 내용이 들어가는 것이고 우리를 포기하는 것만으로 전부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셔야 한다는 것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어려운 영적 전투에서 자기를 부인 십자가를 지는 싸움을 당연시 하고 목숨을 바치는 충성을 해야 한다. 그러면 신적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계17:15-18 음녀의 대한 천사의 해석, 음녀의 파멸을 그리고 있다. (바벨론이라) 함락은 18장에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19장 짐승과 열 뿔의 멸망 20장 사단의 멸망을 기록하고 있다. 15절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바 음녀의 앉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모든 나라 즉 만국 백성들이 음녀의 동맹에 가담 하고 있으며 그들은 결국 복종하고 휘둘리고 있다. 사 8:7 유브라데강 범람은‘세상풍조 등이 음녀의 동맹에 끌려간다.’ 해석하며 17장에 음녀의 묘사는 1.3,7,9 등이며 사단의  대행자로서 손과 발로 활동뿐만 아니라 인류 전 역사에 걸쳐 활동이 연결되고 지속되는 신분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또한 사치와 향락으로 만국을 취하에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것이다. 16절 "네가 본바 이 열 뿔과 짐승이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뜻밖에도 음녀와 짐승과 열 왕 만민으로 된 동맹들이 내분으로 망하게 되는 것이다. 17절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저희에게 주사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저희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심이니라" 18절 "또 네가 본바 여자는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하더라" 음녀의 자기 욕심, 불 신앙적인 고집 그 일이 뜻밖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협조 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계18:9~11 ‘열 뿔들이 바벨론을 위하여 애통하는 장면’이 나오는 대하여 여기 본문이 패망은 내분으로 인한 파멸인데 바벨론을 위하여 애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짐승이 족 수로 쓰이는 것이 음녀이며 자기의 왕국을 위한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기초를 바벨론이 제공하고 있다. 내분으로 인하여 동료를 쳐서 멸절시킨다. 그런데 자기 발등을 찍은 것을 깨달은 것이 18장에 나오는 열 뿔들이 바벨론을 위하여 애통하는 장면이다. 내분이 일어난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지 않은데 전체 성경으로 보면 죄란 죄를 가진 자의 모든 것을 파괴하는 원흉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죄악이란 선과 같은 대등한 지위와 권위를 가진 것이 아니라 빗나간 것 못 미친 것 다시 말하면 선에 못 미친 것이다. 그러므로 영원할 수 없는 것이다. 죄를 사용하는 자가 남을 파멸하기 전에 스스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생명과 거룩과 의 진리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는 영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정직, 성실, 겸손, 온유 그것만이 가치가 있기 때문에 복이요 그것이 아니면 결국은 파멸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저주가 되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께만 거룩, 가치, 진리가 있기 때문에 윤리 도덕 차원이 아니라 선의 근거와 내용과 목적으로 하나님으로 속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믿음이란 정의를 하고 있다 롬14:23 (b)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 하나님의 통치와 순종한 나라이기 때문에 영원한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비록 제한 된 조건 속에 살고 있다고 할지라도 믿음과 약속 속에서 영원한 나라에 속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일을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싸움을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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