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21:29 (일)
요한계시록말씀잔치를 시작하면서 15장
요한계시록말씀잔치를 시작하면서 15장
  • 교회협동신문
  • 승인 2023.11.25 13: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2. 13. 14장 사단과 대행자가 등장하여 그것은 마지막 때에 심판과 현실 속에서의 일어나는 재난들이 배경으로 등장하고 있다. 15장 마지막 재앙이 등장하고 있다
강영철목사
강영철목사

계15:5-8 5절 증거 장막의 성전이 증거장막과 성전의 동격이며 광야교회를 말하고 있다. 십계명의 두돌판 법궤 율법을 포괄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약속과 요구하시는 의로 나눈다. 에수의 증거와 같은 의미가 된다. 계12:17 하나님의 계명과 평행구절인 되며 계16:15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예수의 증거를 지키는 것이다. 계3;17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은 전부 그리스도예수 안에 있는 거룩 성결을 의미한다. 증거 장막 성전으로부터 하나님의 명을 받아 일곱 천사가 쏟을 것을 목적을 규명 의로우시고 온전하시는 약속의 성취 차원에서 일곱대접이 주어진다. 약속의 시행과 완성을 하신다.

6절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일종의 제사장을 상징하고 있다. 일곱천사 하나님의 명 약소과 율법을 완성하로 나오는 것을 대접재앙인 것이다. 8절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인하여 성전에 연기가(하나님의 임재, 영광의 충만을 상징 출애굽 사건 시 예수 승천시 구름과 동일하게 사용한다.) 차게 되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일곱 재앙을 친히 임재 거룩한 분노가 철저하게 시행 될 것이라는 뜻이다.) 7절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세세에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대접"

계5:7-8, 8:3-5 천사가 모든 성도의 기도 향단에 드리고 하나님의 심판은 기도의 응답차원면도 있다. 어떻게 보면 '잔'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계14:8 그 이유로 사51:17 "그 분노의 잔을 "대접의 원형을 보게 되며 22-23 하나님의 분노의 잔, 심판의 잔을 저들에게 마시게 한다는 것이다. 대접재앙에는 일관 된 이미지는 심판에는 진노, 벌의 측면이 우선하지만 그러나 심판은 자초한 것이다. 하나님을 외면하고 믿지 않는 것 그 자체가 벌인 것이다. 효심 없으면 그 자체가 벌인 것이다. 즉 계 14:8 모든 나라에게 죄의 내용을 가르친 자들로서 원형인 것이다.바벨론은 하나님없이 자기 힘을 의지하여 기고만장한 세력의 원형인 것이다.흉내내서 페르시아, 로마 역사적 일어난 것이며 흠모하는 나라가 로마인 것처럼 상징물이 독수리처럼 세계에서 제일 가는 것으로 만들려고 할 때 독수리문장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여주는 대접재앙이 가지는 의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없는 것 자체가 벌인 것이다.사51:17 분노의 잔을 예루살렘이 먹었다 그래서 깰지어다 저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을 섬기는 것 자신의 힘을 의지하는 것으로 해답과 소원을 구하는 것 자체가 벌을 받는 것이다.예를 들면 가수하시던 이용복씨 연예인 생활을 정의하면 하루도 수면제 없이 잠을 잘 수가 없다 변덕많은 인간들의 인끼를 먹고사는 것처럼 어려운것이 없다 믿을 수 없는 것을 근거로 삼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을 알고 있다. 기준.질서,소망을 세울 수 없는 것에 행복이 없다는 것이다. 세상사람들은 이미 이 재앙을 받고 있는데 모르고 잇다는 것이다. 이 내용은 말세 전 기간에 걸친 동일한 내용의 심판인 것이다. 구언과 복 주심을 외면하여 자초한 심판인 것이다. 역사상 나라와 인생들이 마셨던 것이다. 불신자, 나에게 해롭게 하는 사람에게 복수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며 저들이 어떤 벌을 받고 있는 것을 모르듯이 우리가 어떤 보상을 받고 있는 지 모르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의 문제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가는 것으로 복인 것이된다. 자신들의 고통과 허망함을 모면하기 위해 계속해서 진노의 잔을 마시는 것이다. 저들릐 술 주정이지 강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에 대하여 용서함을 가지라는 것이다.자존심을 만족하고 용서가 아니고 자신의 진지하게 마치 바울처럼 베스도에게 '결박외에 나와 같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인 들이 자존심을 가지고 용서하였기 때문에 사회에서 외면을 받는 것이다. 마치 옷을 하나 팔기 위해서라면 200번 이상 해서 파는 것인데 증인은 우리는 너무 위세를 떠는 것이다. 분풀이가 분노를 품고 하는 것이다. 가진자요 승리자요 천궁의 내용을 누리는 자다. 허망과 그 악순환을 반복하는 자라는 것을 알고 종말론적인 신앙을 가지시고 넉넉히 가지시고 일부로 가지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기본이라는 것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계15:1-4 일곱 대접 재앙 등장한다. 마지막 의미가 시간적, 순서적으로 마지막인가는 논쟁거리가 된다. 일곱인- 전 역사 하나님 뜻 가운데 마무리 될 것인가 설명, 일곱나팔- 경고 즉 회개를 촉구하는 측면의 여지가 있지만 대접- 담은 것을 쏟아 붓는 것 믿지 않고 외면하는 자의 심판 즉 회개의 기회가 없는 마지막이라는 것이다. 시간적 순서로 보기에는 너무 내용이 중복 반복 되어진다. 그러므로 연대기적 순서 이해보다는 전체적으로는 개괄식으로 해석이 본문과 가깝다. 만약 연대기적 시간적 순서로 보게 되면 계 14:14~20절과 그리고 다시 마지막 모습이 본문에 나오게 되면 충돌하게 된다. 일곱대접 재앙이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살펴보면 계8:13 일곱나팔 재앙속에 세화 예언등장 5째 나팔 재앙 1화(계9:1- 무저갱 나온 연기 황충 전갈의 권세 죄로인한 좌초 된 심판), 6나팔 재앙 2화(계9:12- 10장 11장 증인 재앙과 함께 교회의 증언 핍박과 순교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므로 7나팔 3화 교회증언을 거부, 회개하지 않는 (계11:14-2화를 10.11장에 포함하고 있으며 마지막 심판이며 그리스도의 나라 언급되는 것(15절) 성전의 열림, 언약궤가 보임(19절)

12. 13. 14장 사단과 대행자가 등장하여 그것은 마지막 때에 심판과 현실 속에서의 일어나는 재난들이 배경으로 등장하고 있다. 15장 마지막 재앙이 등장하고 있다 즉 7나팔속에 포함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일곱 인속에 정확한 표현 없이 일곱나팔이 등장하고 있으며 일곱나팔도 설명없이 일곱대접으로 넘어간다. 즉 사도 요한이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1화 -3화도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일하심은 구원과 심판으로 끝나는 것을 멸망시킬 것이지만 어떻게 세상의 끝난다 (인) 경고차원에서 회개를 촉구의 여지(나팔) 더 이상 기회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대접)인 것이 된다. 구원과 회개를 배푸시고 싶어 하는 하나님의 손길인 것이다. 재앙을 받았음에도 회개치 않은 자들(2화 계9:20-)에게 일곱대접이 되는 것이다. 3가지 개입을 역사 속에서 개인의 실존 속에서 만나는 것이며 계시록의 의도하는 것이다.

심판은 반대하는 자를 벌 주는 것이지만 그것 마저도 회개의 기회를 하나님의 사랑, 자비하심 이라는 것을 놓치지 아노아야 하며 하나님께서 심판을 선포하시기 전에 성도가 섣부른 정죄와 심판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너무나 쉽게 독끼 눈을 드면 안 되는 것이다. 스데반과, 주님처럼 저들을 불상히 여기소서 가야 하며 주어진 인생의 시간에 교회의 증언을 노쳐서는 안되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