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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말씀잔치를 시작하면서 14장
요한계시록말씀잔치를 시작하면서 14장
  • 교회협동신문
  • 승인 2023.11.25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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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3장, 사단과 대행자로 인한 핍박 14-15:4절, 핍박 성도의 최후의 상급과 짐승과 따르는 자의 최후의 심판
강영철목사
강영철목사

계14:1-5  12-13장 사단과 대행자로 인한 핍박 14-15:4절 핍박 성도의 최후의 상급과 짐승과 따르는 자의 최후의 심판 - 셰계사를 집약, 구원의 역사 압축시켜 놓음 시각과 주제를 달리 하면서 궁극적인 운명들을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다. "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 사만 사천이 섰는데 " 두 짐승의 궁극적으로 심판과 패배한다. 견디고 승리한 교회는 궁극적인 승리에 선 모습으로 역사와 우주의 통치자 하나님이며 보상이다.

시온산 의미는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언덕 여부스족속에게 빼앗은 다윗 성이라고 하며 여호와의 산성으로쓰여지고 있다 사 24 :23 하나님의 통치 자리를 의미하며 사 40:9-13 하나님의 통치와 보상하시는 장소로서의 의미로서 증거하는 내용이다. 대표적인 구절은 시2:6- 구원과 승리의 자리를 함축되고 있다. 계14:1절은 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대조되는 구절입니다. 현실은 용이 바다 모래 위에 섰는 것이다. 계 13:15 ~17 절로 이어지고 있는데 그들의 전부 영향력 아래 있는 것 같은데 144.400 명이 시온 산에 섰더라 전 전년주의 해석은 시온산에 거기에 실제로 신정왕국의 회복되는 것으로 해석한다. 중간상태로 의미를 이야기 하고 있다. 물론 새 예루살렘을 의미 하지 않는다(2절)마지막 때의 승리한 성도로서 천국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와 함께 핍박을 이겨낸 성도로서 교회를 상징하고 있다. 하나님의 통치가 흘러 나오는 곳이며 어린양의 보호와 함께 하심으로 핍박을 이겨 낸다는 것이다. 마28 :18-20 지상명령은"볼지어다~ 함께 하시리라" 교회의 머리로서 자신과 백성을 묶어 놓으신 것이다. 시온산에 언제나 서 있는 것이므로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엡1:15~23 베푸신 은혜의 기이함이 아니라 능력 즉 힘으로 표현하고 있다. 십자가. 교회. 지키시며 복주시며 영광에 자리등을 교회의 리가 성도를 힘있게 받치고 있다. 언제나 세상의 이기는 것 같은 현실이지만 마치 죽을것 같고 질 것 같은 그런 상황이지만 어느편에 가야 진정한 승리가 될 것인가? 이 질문을 오늘에 사는 성도로서 하여야 한다. 그것이 성도의 신앙의 성숙인 것이다.

계14:1 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대조되는 구절입니다. 신앙의승리로 표현하였다. 다음은 시내산과 시온산의 구분에 대해서 먼저 시내산은 두려움의 산이었고 시온산은 미4:6~10 통치의 좌소가 되는 것이다. 교회의 신앙의 백성된 자신의 책임과 임무를 지키는 자의 상징인 것이다. 

계14:2-3 구원을 받은 자들의 감격 확인 찬송인 것이다. 사도요한은 이 노래를 하늘에서 듣고 있는데 성도들의 집합체로 충성된 자로 저들이 부르는 노래를 하늘에서 들리는 것이다. 시온산에 어린양과 함께 선 천상에서 부를 노래를 약속받는 것으로 해석한다. 히12:18 ~ 먼저 시내산의 두려움을 묘사하고 둘째로 시온산의~ 하늘의 예루살렘의 있다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묶여 있는 것으로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천국에는 시온산은 없지만 죄와 핍박을 대항하여 교회와 시온산의 필요하지만 히브리서 받는 독자들에게 너희가 저자가 독자들에게 신분과 운명을 설명하고 있으며 즉 영원한 하늘의 도성 예루살렘과 연결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양과 함께 선~ " 계 13:17 절과 대조하고 있으며 하나님의"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 소유권을 의미 하고 있으며 그래서 누구에게 속한 것과 소유주의 보호 아래 있다. 엡1:11~14 인침은 백성으로 된 것이 성령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능력과 성실함 속에 묶여 있는 것이며 또한 그에 소유 다운 것을 의미한다. 신6:4~8 율법에 맞는 반응을 묘사하고 있으며 엡5:1~2 도장을 친 것인데 소유이며 그 소유주에 걸 맞는 합당해야 된다는 것이다.그리스도를 본받으라는 것이다. 인을 맞는 것이 초월적인 은사 확신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성도로서 그 내면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가령 에를 들면 "마흔 전까지는 부모가 책임을 지지만 그 이후에는 자신의 책임을 져야 한다." 엡5:3~ 하나님을 본받는 내용을 나타내고 있다. 예를 들면 후진국이라는 의미는 정신문화 차원에서이며 기능과 경쟁을 하려고 교육을 하지 인격으로 하지 않는다. 남의 말을 들어주지 못한다. 정답을 보류하는 것 기다려 주어야 한다. 음식점 강제로 호객하고 들어가면 자리도 없고 먹을것도 없는 모습이 교회의 모습이 되 버렸다., 종교적 영역에서는 어느 정도 되었는데 일반적인 영역에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을 보게 된다. 그 대표적인 놀이문화에서 나타나게 된다. 놀때는 놀이로서 확실하게 하는 것이다. 비아냥, 핀잔, 앞선 선진국과 차이가 나는 것은 '남의 말을 잘 듣고 당혹하게 나온 페션쇼에서 대담하다고 느꼈다.' 성도는 심판관이 아니고 하나님만이 심판관이며 그것은 결례가 되는 것이며 어린양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 인침 받은 것을 기억하시고 말을 조심하고 감정을 따라 온다. 18절 주고 받는것이 얼마나 선, 겸손인 인격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부자는 자족하는 자이다. 그래서 감사는 기본이 되는것이다. 마음은 짐승의 표이고 말로만 어린양의 표가 아닌 것을 삶의 전 정황에 나타나고 있는가를 점검해야 한다.

계14:4~5 시온 산에 어린양과 함께 선 144.400 묘사가 4~5절 나오는 데 먼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 둘째로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 셋째로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며 종합적으로 5절에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먼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로 이 의미는 영적인 차원에서 음란(바알을 섬기는 것 동일시)을 의미하고 있다. 계19:7 ~ 어린양과 혼인의 의미에서도 드러난다. 그러나 계17:4~ "음행의 더러운 것들 가득하더라.~"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다른 곳에 돌리는 자를 표현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마음, 뜻, 성품의 차원에서 확인하여야 한다. 예를 들면 성도가 '안식일을 기억하여 지켜라' 평일에 어떻게 지킵니까? 이런 질문에 답은 매일의 안식일처럼 성실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도외시 하고 어찌 기쁨과 만족이 있는가? 라는 차원에서 '정절'이라는 것이다.

둘째로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는 마16: 24~,자기십자가 , 자기 부인 빌2:5 ~ 그리스도는 자신의 뜻과 계획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이것이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요 비우는 것이다. 고전15:29~ 29절 죽은 자를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는 의미는 정확히 모르지만 때마다 위험을 무릅쓴다. 그 원리는 날마다 죽는다는 것이다. (31절) 그러나 그 죽음의 의미가 결사의 각오가 아니라 32절에는 위험과 핍박에 대하여 조급함과 자폭적인 것을 누르고 감수하기 위한 죽음으로 표현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자존심을 죽이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성도들의 핵심과 요점은 지극한 경지라는 의미도 물론 되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을 죽이는 것이라는 것이다. 즉 인간적인 생각들, 반응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죽은 시체는 불만이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결판을 내야 하겠다는 것을 먼저 우선순위에서 제하여 버려야 하며 언제나 지고 살라면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알아주실 것예요 ~" 이렇게 말하는 성도는 지고 있는 것이다. '고전 말씀처럼 맹수로 더불어 범인처럼 싸우는 자가 된다.' 하나님을 믿고 축복 받은 것을 세상 앞에 확인하려는 유혹이 우리 안에는 늘 있게 마련이다. 성도의 신앙 고백하는 것이 섬김과 자기 부인으로 나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여야 하며 우리는 성도의 표현은 성경적인데 내용은 성경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늘 주님과 동행하여야 하겠다.

셋째로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 의미는 '처음 익은 열매'에 대한 오해는 특별한 그룹이라고 주장하는 자가 있다. 예를 들면 성령 은사가 교회 가운데 문제가 되었을 때 구원은 다 같이 받지만 그 내용으로 격이 다르다는 것으로 오해된 해석이다. 이것은 선착순, 서열상 앞선 자가 아니라 렘2:3~ 처럼 즉 성물, 구별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출19:5~ 제사장나라, 거룩 같은 의미의 다른 표현이며 거룩은 윤리적 차원이 아니고 하나님께 속한다는 의미이며 자연과 구별이라는 뜻이다. 즉 보물이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자라는 것이다.

5절에 종합을 하면서 '거짓말이 없다'. 윤리 도덕적 차원이 아니라 계16:13 사단이고 사단의 대행자들의 하는 말을 의미한다. 우상숭배와 타협하지 않는 자로 거짓말하지 않는 자라는 것이다. 성도의 오해는 윤리와 세상적인 개념으로 예를 들면 6.25때 목사님의 숨겨준 군인 3명 피난시켜 주었다.그 군인과의 대화 속에서 거짓말이라는 의미를 세상적인 윤리로 이해했다. 성경에서도 거짓말들을 볼수가 있는데 히브리인들이 산파, 라합의 거짓말,그러므로 성경적으로 하나님 반대 편에 서는 것을 거짓말이라고 한다. 마치 아버님 건강문제 의사가 숨기는 것을 거짓말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둘째로 '흠이없다.''처음 익은 열매'와 마찬가지로 오해 된 구절이며 특별한 영웅들로 오해 된 경우가 있다. 교회가 가지는 장차 승리의 복된 결과로서 환상인 것이며 그 내용인 것이다. 성도들의 시각 속에 세상의 반대속에 극복하고 서는 자리가 성도의 고난, 갈등, 연약함으로는 도저히 안 되지만 하나님은 그 계획을 반드시 실패함이 없다는 확신으로 보여주는 환상인 것이다. 계시록의 수신자들의 처한 상황은 로마의 환난, 유대교로부터 매국노라는 현실적 핍박과 환난이 극심했던 시대였으며 예를 들면 안이숙 성도가 쓴 "죽으면 죽으리라" 1차 투옥자들이 전부 석방되어 질문의 내용이 고문을 당할 때 하나님의 천군 천사가 보호 해주셨는가 질문이었다. 성도의 현실이다. 우리가 아는 것은 배반하기 전에 죽은 사람은 순교하였고 목숨의 긴 사람들은 다 배반하였다. 그러므로 사도는 이 환상의 필요는 이런 격려를 받아야 할 이유를 알게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국 교회는 윤리 도덕주의도 문제지만 완전주의로 나가는 것도 문제가 된다. 서로 혼자 책임을 지기가 힘드니까 "우리 교회는 사랑이 없어" 라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들이다. 그것은 성도의 현실적인 이해가 부족한데서 비롯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김을 주신 하나님을 놓치 말아야 한다. 엡5:22~ 십자가로 인한 구원은 어린 아이가 태어난 것과 같으며 머리로서 지체로서 그리스도의 인도와 교훈하심으로 점도 흠도 없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시행착오라는 것인데 그 비유를 부부관계에서 차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어머니가 자식을 못고치는데 며느리가 고치고 그 며느리는 손자가 고친다는 것이다.' 자신의 소원과 현실에서 좌절을 느끼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극복하고 승리의 약속을 보는것이다. 어린양과 함께 선 성도들의 그 근거가 여기 있으며 그것을 그려낸 것은 바로 본문인 것이다.롬8:31~ 기억하시고 자신과 남을 용서하여 결국 승리가 보장 되었기 때문에 기다리며 참을 수 있는 것이다.

계14:6-11 공중 날아가는 세 천사등장 첫째, 영원한 복음의 내용으로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다" 둘째, 큰 성 바벨론의 무너짐을 선포 셋째, 짐승과 그의 우상 경배와 표를 받으면 하나님의 큰 진노의 심판을 받는다. 이런 시각에서 즉 14:1절 내용의 다른 국면으로 보아야한다. 메시야, 그의 백성을 좌절하게 하는 사단과 대행자의 내용으로 12~13장이고 역사와 어느 장소에서 일어날 죄악된 분위기와 성격이다. 살기 어려운 시기로 끝으로 가고 있다. 그래서 14장에서는 걱정하지 말라는 위로의 내용으로 하나님의 구원과 백성의 승리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세 천사를 이해하라는 것이다. 교회 승리 편 들어서 환상인 것이다. 백성들을 위로하는 측면에서 천사이다.

첫째, 모든 사람에게 온 우주와 역사의 운명과 목적을 선포하는 것이다. 십자가 사건, 구속, 부활 승리, 7절의 내용으로 복음을 다루고 있다. 이 복음의 심판과 연결되는 이유는 통치와 완성이 필연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 앞에 엎드리라는 것이다. 즉 회개를 촉구하는 차원이 아니고 고난 받고 있는 성도들에게 완성으로의 복음인 것이다. 눈물과 사망을 끝내는 시각에서 복음인 것이다. 같은 내용을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둘째 천사는 과거시제로 이야기 하고 있다. 바벨론나라는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대표적인 세상적인 세력의 집합 된 권세 바벨론 무너짐을 성도에게 말씀하고 있다.. 망한 세력에게 뭘 겁을 내겠느냐 그런 의미가 되는 것이다..

셋째 천사도 성도들에게도 지지 말라는 부정적인 경고가 된다. 짐승의 편에서면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게 된다.(기쁨과,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붉은 과즙의 심판의 상징) 

9절 “만일 누구든지~ 하나님 편에 있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경고가 되는 것이며 부정적이고 두려운 경고 반대편에 서는 자들의 심판의 내용을 잘 묘사하고  다. 믿음과 소망의 결국을 성도는 잘 알고 있지만 신앙을 지켜 나가는 것에 힘들다는 것이다. 자신만 힘든 것이 아니라 전 성도가 다 힘들다는 것이다. 넉넉히 이기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먼저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안다고 떠들고 망신을 사는 것처럼’ 마치 '바둑에서 잘 해서 이기는 것을 명국이라고 하고 대 부분은 상대방의 져서 이기는 것이다.'  요셉의 인내는 결국 자폭하기 전날 건져준 것 같다. 성도는 끝까지 견디면 나중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 히12:1~4 1.영웅을 언급하고 있지만 실제로 인간으로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왜 감당 했느냐 그렇게 묻는 것이다. 그 답으로 목적지와 보상을 알고 있기 때문이며 그 대표적인 내용으로 2.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라는 것이다. 반대에 부딪치는 것은 악의 세력의 마지막 발악이며 그것을 해치고 나가야 한다. 믿음을 방향과 목적으로 가지고 있어야지 고통을 면하는 것으로 가지고 있지 않다, 현실에서 책임과 내용을 가지는 자가 되어야 한다. 

계 14:12-13 짐승, 우상숭배, 표를 주어 불신앙 동조하지않는 자 핍박에서 성도들의 인내를 촉구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신앙 전반적인 차원 예수님께 대한 믿음 충성,신실함의 의미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을 따름 기독교 신앙 그 정신과 위배 적대적 세력과 대적의 개념에서 소개 되고 있다. 여러 모습으로 시험과 핍박으로 온다. 무력, 환경의 싸움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포괄하는 원리적인 싸움이 있다. 주된 흐름을 거스려 가야 하는 외로움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엡4:17~ 세상을 사는 법을기록하고 있다. 함께 망가지는 것이 친한 표현이다. 공범과 타락한 행위가있어야 의리가 있는 자가 되고 저는 그렇게 갈수 없다는 것은 참 어렵다는 것이다. 20절 이하~ 성도들의 사는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되는 것이다. 더러움에서 벗어난 우리의 답이요 신앙과 성도 됨을 나타내는 것이다. 우리끼리 있으면 거스름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련회 때 자주 변화산이 등장하는것이다. 골1:9~11인내의 싸움의 내용을 보면 실상은 이것이다. 하나님의 뜻으로 채워지는싸움을하여야 한다. 살아가는성실함과 책임을 지는것은 삶의질을 높이는 것 자녀교육을 흉 보는 것이 아니라 최선과 열심을 부리는 것들은 당연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뜻으로 자녀로서 부합 된 것이지 몇 가지만 하나님의 뜻에 있고 나머지는 정신 없이 사는 것이다. 궁극적인 판단 기준 성도의 기업을 얻은 하나님께 감사인 것이다. 현실과 인생과 존재에서 가장 중요한 관심을 모아야 한다. 신앙인격과 지혜와 안목과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광으로 전진이요 채워나가는 것이다. 보란 듯한 형태로서 증명되는 것이 삶의 전 인격으로 증명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소한 데서부터 신앙의 강한 모습이 나타 나야 한다. 체중 감량을 잘 해야 된다. 무 조건 빼면 기운이 없다. 그래서 힘을 남기고 체중을 감량하게 된다. 권투시합은 링 밖에서 결정이 되는 것이다. 링 안에서 결정의 드러나는 것이고 뜻밖에 13절~ 성도는 다르다는 것이다. 세상이 사단과 탐욕과 대비 되며 거룩과 생명 영원한 것을 특징으로 가지고 있는 것을 아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은 어느 날이 아니고 오늘 하루 동안 믿음을 지키라는 것이다. 세상에서 신앙생활 잘하면 병신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에 대한 설명을자주 하는것은 예수님만 주실 수 있는 만물의 그로 말미암아 되었다는 것이다. 충만의 근원, 창고라는 것이다. 그것이 내용이요 소망이요 거룩에 속한 것이라는 것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자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신 이가 주실 수있는 것이다.

13절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주 안에서 죽는 자(순교라는 의미다.실제로 무력에 의해서만 아니라 사도의 고백은 나는매일 죽노라 로 가지 않으면 신앙생활은 불가능이다. 마16:24~ 죄성의 요구하는 본성의 동조하려는 것을 매일 매 순간 마다 차단하여야 한다. 죽음을 각오 하시 않고는 결국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갈 6:14~ 우리의 죽음 세상적 가치의 죽음이며 영원한 악속 거룩함으로만 살아간다는 것이다. )들은 복(순교와 지킨 믿음에 대한 보상이라는 것이다)이 있도다 하시매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 결사적인 하나님의 마음을 유지 해야 하나님 앞에 칭찬을 받는다로 해석이 되며 흑암에 대하여 마음을 돌이켜 거룩으로 나가는 것이 결국의 보상이라는 것이다 신앙의 끝에 영광인 것이다 하나님의 하라는 것을 지키는것 그리고 얼마나 했느냐 그런 식이 아니고 그 자체가 영광이고 생명이고 복된 길인 것이다. 사실은 다 좋은 것이라고 한다. 학교생활 중에 노는 학생들도 공부가 좋다는것을 알고 있다. 계시록의 기록은 역사의 끝이있다는 것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인생전반에 걸쳐 맞닥 뜨리는 싸움인 것이다. 그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보상이요 상급인 것이다. 각자가 예수 안에서 지키는 것이 복된 것이며 나중은 영광이라는 것이며 그러나 우리의 죄된 본성이기 때문에 핍박과 어려움이 있는것이다.

계 14:14-20 논쟁은 구름 위에 인자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예수님을 상징) 그 손에는 이한 낫을 가졌더라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또한 이한 낫을 가졌더라 ~ 진노의 포도주 틀 심판의 수확을 하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모아 들이는 것이며 다른 천사는 포도송이를 거두고 심판의 모습으로 나누는 견해가 강하다. 14장의 환상의 주제를 이해하여 정확한 해석 사단,대행자(12-13장) 승리와 마침내 결국은 심판을 받는 것으로 이해 한다. 1절부터 어린양과 함께 시온산에 선 모습과 6절부터는 최후의 심판의 선포되는 것을 주제로 하고 있다. 영원한 복음, 바벨론의 멸망, 짐승에게 우상숭배 표를 받은 자가 당할 심판을 말하고 있으며 15절부터는 네째 천사가 등장하는 것이다. 최후의 심판을 언급 하고 있다. 구름 위에 앉아 있는 분은 성자 예수님이고 천사가 성부 하나님에게 명령을 받아 심판하고 있다 17절 심판권이 예수님이 있고 성부의 뜻이며 수행자이신 천사가 하는 것이다. 같은 내용으로 이해 하고 있다. 16절 예수님의 수확은 17절의 수확은 둘은 하나는 곡식이고 하나는 포도주로 달라보이지만 낫의 의미는 요엘 3;13 곡식과 포도주를 틀을 사용해서 같은 내용이 평행 어구가 되는 것이다. 즉 심판의 추수를 상징하고 있다.

낫을 사용한다는 것은 심판의 상징인 것이다. 슥5:1~"날아가는 두루마리" 70인역 헬라어 번역 판은 낫으로 번역 되어있다. 심판의 장면으로 또한 포도주의 틀 밟겠다 계19:15~ 피가 흐르는 모슴으로 진노와 심판의 모습으로 사용한다.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시온산 밖을 의미하며. 구원의 영역 밖에 없다. 사61:4 영원한 하나님의 도성, 그 완성 은혜와 복 주심의 밖이 되는 것이다. 사 62:10~ 귀환을 의미하는 것이며 성안인 것이며 사 63:1~ 그와 반대로 에돔의 심판이다 1절이 심판자로서의 하나님 이며 3절이하는 적대세력을 상징 포도주를 밟아서 ...시온산 어린양과 대적하는 무리들의 심판을 주제로 하고 있다. 심판권을 가지고 성부의 뜻을 따르며 그 일을 수행하는 천사들의 실재적인 심판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온 산에만 구원이 있다는 것이다.

즉 12-13장과 대비하고 있으며 우리의 현실은 12-13장이다. 예외 없이 모두 포도주 틀에 밟히리라. '일천 육백 스다디온'은 약 300km에 해당된다. 완전한 형벌의 의미가 되는 것이다. 오바댜15절~ 같은 의미다. 우리 주님께서 친히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이 세상과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싸움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순교하는 마음 없이 갈 수가 없다. 세상에 대해서 아픔과 죽음없이 되지 않는다. 궁극적인 운명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 원리와 내용을 놓칠 수 없다. 우리는 신앙 속에서 늘 승리 하지 못한다. 우선 알야야 되고 못하는 것에 우리 자신을 채찍 질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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