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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신의가 국격을 높인다.
국가의 신의가 국격을 높인다.
  • 교회협동신문
  • 승인 2023.03.23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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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영 목사
윤대영 목사

1930년대에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의 젊은이들은 엘리트들이었다. 일본의 유명회사의 직원으로 입사하는 것이었기에 적어도 100대 1의 경쟁력을 뚫고 합격한 사람들만 갈 수가 있었다. 이러한 조선 청년은 조선의 경제 상황에서 볼 때, 상상할 수 없는 노동의 대가를 받았다. 그러나 1944년 2차대전 말경에는 일본 회사들의 경영이 어려워졌다. 회사에 근무하는 일본 젊은이들이 모두 전쟁에 차출 되어갔고, 일본 정부의 경제도 어려워졌다. 전쟁 말기에는 한국 청년들을 강제로 끌어갔고, 결국 그들의 인건비를 4-5개월 지급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하여 그 당시 일본의 기업은 미지급한 인건비를 자세히 기록하고 있었고, 미지급된 인건비를 박정희 군사 정부 시절 한일 청구권 협정시 고(故) 김종필은 징용보상을 일본은 개인에게 전달하려는 것을 국가에 주기를 바랐다. 결국 3억원의 보상과 2억 차관으로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에는 일절 전쟁 보상 문제를 거론하지 않도록 조약을 맺었다. 결국 오늘의 징용에 의한 인건비 미지급 분이나 전상 피해 보상은 한국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 일본의 역사에는 1862년 9월 14일 나마무기 사건이 있었다. 사건의 개요는 무사시 국 다치바나 군 나마무기 촌 근처에서 사쓰마 국부 시마즈 히사미쓰 행렬에 난입했던 말 탄 영국인들을 사쓰마 번 사무라이들이 무례하다고 보아 살해한 사건이다. 이 사건의 배상금으로 거액을 일본은 영국에게 배상하였다. 영국은 이로 인하여 일본이 조약을 철저히 지키는 신의 있는 나라라고 인정을 하고, 유럽 전 국가들도 일본은 신의가 있는 나라라고 인정을 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영국 무역선에 청나라 스파이가 숨어 있다는 정보를 얻는 일본 해군은 영국 배를 침몰시켰지만 영국은 항의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일본을 믿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국제 사회로부터 신임을 얻었다.

한일회담은 1951년부터 1965년 6월 22일까지 한일기본조약이 타결되기까지 총 7차례 있었다. 한일기본조약은 대한민국과 일본이 서로간에 국교관계를 규정하기 위해 1965년 6월 22일 조인한 조약이다. 4개 협정과 25개 문서로 되어 있다. 대한민국과 일본과의 기본 관계에 관광조약이 정식명칭으로서 양국간에 외교 및 영사관계를 수립하고, 1910년 8월 22일 또는 그 이전에 대한민국과 일본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과 협정은 무효로 하여 대한민국 정부가 유엔총회 결의, 제195조 3호에 명시된 바와 같이 한반도에 있어서의 유일한 합법 정부임을 확인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로 되어 있고, 이 기존 조약 외에 법적 지위 문제와 청구권 문제 해결 및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이 체결되었다. 청구권 안에 민간 및 국가적 배상이 모두 체결되었다. 한 나라와 다른 나라와 행정이나 조약을 한 것은 항구적으로 지켜야 할 상호의무가 있다. 조약이나 협정 이외에 어떤 다른 문제가 국민감정을 자극하거나 손해가 되더라도 조약과 협정을 성실히 지킬 때 국제사회에서 신의를 얻을 수가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수출 없이는 살 수는 없다. 수출은 세계 모든 나라가 수출을 위해서 치열한 외교 경쟁을 하고 있다. 외교관계에 있어서의 근간은 제반 조약이나 협정을 성실히 지키는 것이다. 민간 기업들은 그 틀 안에서 서로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대한민국은 국가와 국가 간의 조약과 협정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고(故) 김일성 북한 주석에게 일본은 남한 정부에게 배상한 만큼 북한 인민조선 공화국에게도 배상해줄 수 있다고 제안을 했다. 북한 고(故) 김일성은 거절했다. 그리고 대신 일본에 있는 조총련이 건립한 학교를 정식학교로 인가해달라고 요청을 했다. 이 당시만 하더라도 북한의 모란봉호가 일본에 정박하고 수시 내왕을 했을 정도이다. 일본에 있는 조총련들이 북한으로 이주하고 싶은 사람들을 북한으로 이민으로 보내기도 했다. 1959년에서 1984년까지 9만 3천명을 북송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이후 고(故) 김일성은 갓끈 논리를 펼쳤다. 갓끈은 두 줄이다. 한 줄만 벗기면 갓은 벗겨진다고 했다. 대한민국은 주한 미군과 일본과의 한일 협정으로서 안보를 유지하고 있다고 보았다. 일본과의 관계만 이간시키면 조선인민공화국이 지향하는 남조선 해방은 이루어진다고 보았던 것이다. 북한은 지금도 이 전략은 변함이 없다. 현 시절에도 북한이 대남공작의 지령은 한일 이간이다. 지금 한일관계 개선을 두고 누가 가장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는가? 야당은 거리거리마다 윤석열 대통령을 과거 조선시대 이완용으로 빗대고 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세계 수출 10위의 나라이며 국방력으로는 6위권이다. 지금 세계의 K 방산무기가 속속 수출되고 있으며, 미국 역시 한국에 무기 판매 등급을 우등등급으로 격상하고 있다. 또한 군사 정보 소통이 최첨단으로 발전하고 있다. 일본은 공식, 비공식적으로 39번의 사과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외교상이나 국격상 결례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미래지향적인 국가나 개인은 발전하고 성장한다. 과거지향적인 국가나 개인은 결국은 멸실되고 만다. 특히 큰 틀에서 과거는 청산하고 미래의 희망을 위해서 생산적이며, 발전적인 지평으로 나가는 것은 국가 부흥의 필수적인 외교이다. 과거가 오늘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늘이 미래를 만든다. 오늘에서 미래를 만들지 않으면 세계 평화와 부흥에 이바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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