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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인 추수감사절
성경적인 추수감사절
  • 교회협동신문
  • 승인 2022.11.11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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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3대절기인 유월절과 오순절, 초막절에 감사’
이인수목사(전)온누리수련원장국가유공자 6.25참전무공수훈
이인수목사(전)온누리수련원장국가유공자 6.25참전무공수훈

성경에 하나님께서 선민으로 삼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년에 세 번을 반드시 지킬 것을 명하셨고(출23:14) 그리고, 15-17에서는 3대절기를 어떻게 지킬것인가를 말씀하고 있다.

첫째는,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탈출해 해방된 기념일이며 이때엔 누룩이없는 떡을 먹곤했기 때문에 유월절이라고 하기도 했다. 이것을 신약에서는 성찬예식으로 바뀐 것이다.

둘째는, 오순절은 예수님이 부활하시어 승천하신후 성령을 보내셨는데 50일째 성령이 강림하신다하여 그 기간을 오순절이라고 하며 이는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은일과 한해의 첫곡식인 보리추수를 감사하는 절기다. 이는 오늘날의 맥추감사절이다.

셋째는, 초막절인데 이절기는 가을에 거두어드린 오곡백과를 감사하는 절기이다. 이절기에 대해 성경에서 먼저 들에나가 종려나무가지와 버드나무 가지등으로 초막을 짓고 그 안에서 한주간을 머물며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구원과 광야 40년동안 아침마다 만나를 내려주사 먹여주신 일과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보호 하시며 인도해주신 지난날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하는것이였다. 우리는 이말씀에서 오늘의 감사절을 어떻게 지켜야 성경적인가를 생각해 보고저한다.

1. 초막생활에서 완벽한 집에 살게됨을 감사한다.

광야 40년동안 밤마다 초막에서 거하는 나그네 였는데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인도하사 완벽한 집에 살게됨을 감사하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지난날을 돌이켜보고 비교하면서 오늘의 복됨삶을 감사하라는 것이다.

광야같은 세상에서 영육간에 먹여주시고 입혀주시고 오늘에 이르도록 개인과 가정과 나라를 지켜주신 이은혜를 어찌다 감사치 않을수가 있겠는가? 사무엘의 고백처럼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삼상7:12)라고 우리입에서 나오지 않을수가 없다. 이러한 은혜를 생각하면 그저 다 감사할뿐이다.

2. 추수한 곡식을 바치면서 감사한다.

성경에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초막절인 추수감사절을 지낼 때 많은 예물을 주께 바치면서 감사했다 (민29:12-38과, 16:16-17)에서 빈손으로 나오지 않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찌니다하고 했다.

또 신명기 6:16-17에선 빈손으로 나오지 않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찌니다. (마 6:21)에서 보면 주께서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하셨다. 우리가 주께 감사하여 예물을 바치는 것은 주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님께 바치는 사람을 주님이 또한 사랑하시는 것이다. 고후9:7에서 하나님은 즐겨내는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했다. 우리는 다시금 내가 가진 물질이 내것이 아니고 주님의 은혜로 주신것임을 알고 마음껏 감사해야한다.

3. 부자농부의 어리석음

어느가정에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자 유산분배 문제로 형제간에 다툼이 벌어졌다. 성경에 보면 동생이 예수님을 찿아와서 선생님 우리 형에게 부탁좀해서 물려받은 유산을 제게도 좀 나누어 줄수있도록 해주십시오 이렇게 부탁을 하였다. 예수님이 이말을 듣자 누가 나를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누가 나를 물건나누는 사람으로 삼았느냐? 이렇게 되물으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가르치면서 이 어리석은 부자농부를 예를 들어 말씀 하셨다.(눅12:13_21)

필자는 이 비유를 생각하면서 부자농부의 어리석음이라는 제목을 붙여보았다. 먼저 비유를 설명하기전에 그 비유에서 돈을 벌지말라 또는 장래의 계획을 세우지 말라 또는 부자가 되지말라 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먼저 염두에 두기 바라면서 이 비유에서 가르쳐주는 말씀은 사람이 자기생을 살아가면서 꼭 기억해야할 것은 기억함에도 불구하고 망각하고 사는 문제를 지적하고 있고 그렇게 함으로 인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어리석은자로 책망을 받는 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이 비유를 생각하면서 몇가지 마음속에 자신의 삶을 적용시켜 보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며 또 내가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고 계시는가를 찿아볼수있어야 하겠다.

첫째로, 부자농부는 누구의 은혜로 풍성한 소출을 얻게 되었는가를 잊어버리고 살았다.

앞서, 성경에서 내가 라는 어휘가 무려 6번이나 나오고 있다. 농부가 많은 소출을 거두게 된 것은 내가 능력이 있고 내가 열심히 일을 했고 내가 지혜를 가졌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나를 앞세우고 있다.

이와같이 소출을 올리게 해주신 하나님께나 또 그동안 협력해주고 지원해준 그 누구에 대한 감사, 고마움의 은혜에 대한 표현이 단, 한마디도 나오고 있지 않았다 사실, 이 농부가 그토록 많은 소출을 올리게 된 것은 어디 그 한사람의 지혜나 능력뿐이겠는가? 하나님께서 대 자연의 농토를 마련해 주셨기때문이고 적당한 햇빛과 비를 내려주셨기 때문이고 그리고 그에게 건강을 주셨기 때문이고 많은 해충이 붙지않도록 돌봐주셨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연을 다스릴 수 있는 하나님의 은총을 망각하고 내가 이렇게 했기 때문에 이만한 소출을 올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우리도 종종 그럴때가 많다. 내가 오늘에 이르기 까지 내자신을 뒤돌아볼 때 누구에 은혜나 누구에 축복이나 그 누구에 협력이란 것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내가 이렇게 했기 때문에 되었다고 나를 앞세우는 경우가 많다.

믿음으로 성숙하면 성숙할수록 은헤를 깨닫고 고마움을 생각하고 그리고 거기에 보답하려는 자세를 가지게 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나에 나된 것은 내가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로 된것이니 라 하는 이와같은 삶의 자세를 가진 것이다.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진리중 하나가 망각한 사람은 망한다는 사실이다. 사무엘상 25장에서 은혜를 망각한 나발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사울의 미움을 받고 쫒겨다니던 다윗이 그에 부하들과 함께 큰 농장과 목축을 하고 있는 나발의 집에서 한때는 나발의 집안일을 돌보아 준적이 있었다.

경비업무 역할을 하면서 도적때를 못오도록 하며 사나운 짐승들이 오지 못하도록 했던적이 있었다. 그리고 얼마후의 세월이 지났다. 나발은 그후 큰 소출을 올려서 이제 온 집안이 잔치상을 베풀고 있을때에 사울에게 쫒기던 다윗이 먹을 양식이 부족했다. 그래서 나발에게 찿아가 우리에게 먹을 양식을 좀 주시오 옛날에 우리가 당신의 집안을 경비해주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구하니까, 나발이 말하기를 내가 어찌 내 양털깍던 자에게 먹을걸 주겠느냐면서 난 너희들을 알지 못하는자라면서 냉대하며 내쫒은 것이다. 다윗은 가만히 있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성경엔 다윗이 보복을 하기전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망각한 나발을 치심으로 열흘내에 죽고말았다. (삼상25:38)

왜 하나님께서 나발을 치셨을까, 은혜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고 보답할줄 모르는 망각한자를 치셨다고했다. 감사절을 앞두고 너무 내자신만을 내세우기 보다 내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를 돌보아주신 하나님 은혜와 그리고 내 가정과 가족들이 있었고 주변에 고마운 분들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야한다.

둘째로, 부자농부는 인간의 가치가 그가 소유한 물질과 비교할수없을 정도로 고귀하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살았다.

성경에서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아니하니라 (눅12:15)했다. 요즘 세상을 바라보면 어떤 사람의 인격이나 품위나 교양과 사람됨됨이의 그것보다도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느냐 얼마나 많은 물질을 관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느냐는 것을 보고 그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하고 그 사람이 사회적으로 어떤 직위를 차지하고 또, 어떤 모임에 있어서도 상석을 차지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사람의 값어치가 그 사람의 됨됨보다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소유에 의해서 결정되고 있는 현실을 우리가 많이 바라보게 된다.

셋째로, 부자농부는 참 행복이 어디서 오는가를 잊고 있었다.

자기가 새로 소출한 곡식단을 곡간에 넣어두고 말하기를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며 즐거워 하자 이렇게 말했다. 쉬고 놀고 즐기는 것 이것이 바로 행복인줄 알았던 것이다. 행복이 물질의 향유로부터 다 이루어지는 것으만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우리 인간은 물질없이는 살수가 없다. 그러나 물질은 우리의 생활의 조건이 될수는 있지만, 그러나, 행복의 중심이 될수는 없다.

독일의 한 재벌로서 켄트카우센(57세) 이란 사람은 그가 개인의 소유만해도 약 4억4천불을 가지고 있었고 그 외 기업이 소유한 재산은 엄청나다고 한다. 독일에만 해도 1만5천개의 아파트와 콘도미니엄을 소유하고 있다한다. 전세계에 주로 미국과 유럽에 53개의 빌딩을 소유한 부동산 재벌이라 한다. 그런데 그가 57세 나이로 스스로 목매어 자살하고 말았다. 그가 남긴 유서는 나는 불행했노라 하는 그 한마디 밖에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 많은 재산이 그에게 행복을 갔다 주지 못했다. 헤밍웨이도 그는 작가로서 얼마나 명성을 날렸던 사람이었지만 그러나, 명성이 절정에 올랐을 때 그는 사냥총으로 자살을 하고 말았다. 명성이 그를 행복하게 만들진 못했던 것이다.

세계에서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소위 물질의 풍요를 누리고 있는 나라들 미국이나 유럽 그리고 일본 등의 선진국일수록 그 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은 어떻하면 행복하게 살수있느냐 하는 행복의 비결 성공의 비결에대한 책들이라는 것이다. 물질의 풍요속에서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행복에 관한 책들이 많이 팔리고 읽히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사람에 행복이란 물질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생긴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는 그 극한의 상황속에서도 제자들에게 평안을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하셨다. 외형적인 고통이 없는 그것이 행복이 아니라 마음속에 샘솟는 어떤 삶의 의미 평안이 깃들 때 이것이 바로 행복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끝으로, 이 부자농부의 어리석음은 어디에 있었나?

이런건 다 없애고 단순히 물질을 먹고 마시고 즐기는 그것만이 행복할줄 알고 살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부자 농부를 향해 이 어리석은 자여 이렇게 불렀던 것이다. 이 부자농부는 자신의 장래에 대한 계획속에 하나님이 없었다. 오 주님 나를 나 되게하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이런 고백이 나올수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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