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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 추석과 차례와 제사, 그 의미와 유래
추석특집 - 추석과 차례와 제사, 그 의미와 유래
  • 강영철 기자
  • 승인 2022.09.14 14: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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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는 우상인가, 아닌가. 교인제사 반대도 아니고 하라는 것도 아니고, 교인 자율에 맡기는 것일 까?
이인수목사 (전)온누리수련원장 국가유공자 6‧25 참전,무공수훈

음력 8월 보름 추석이란, 한자(漢字)에서 나온 말이다. 중국에서 추석(秋夕)을 중추월석(仲秋月夕)이라하매 월석(月夕)은 달이 유난히 밝고 크다는 말이며 중추(仲秋)라는 말은 가을의 가운데를 뜻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추석을 한가위라고 한다.

즉, 추석은 가을의 한가운데날 저녁 달이 가장 크고 유난히 밝다는 뜻이다.

중국 예기에 조춘일 추석월을 줄여서 추석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추석 명절이 다가오면 가족들이 의례히 선친과 조상님의 묘소를 찾아들 간다. 올해도 어김없이 가족과 함께 선산에 올랐을 때 선친의 묘소 옆에 선친을 모신 노부가 있었다. 그런데 그 노부의 곁에는 다리를 절고 있는 중년 아들부부가 있었다. 그 노부에게는 세 명의 아들이 있다면서 하는 말이 공부를 많이 한 큰아들은 미국에서 가끔씩 오가고, 돈 잘 버는 막내는 바쁘다는 이유로 자주 오질 못하는데 다리를 절룩대는 둘째 아들부부는 노부와 함께 살면서 여지껏 선산을 지키면서 같이 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돌아서서 하는 말이 듣는 이의 가슴에 꽂혔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키는 법이여”. 우리 민가에서도 도는 말 중에, ‘훌륭한 아들은 나라의 아들이고 돈 잘 버는 아들은 장모의 아들이며 모자란 아들은 내 아들’이라는 말이 있다.

부모는 항상 내 곁에 계시는 것이 아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일생을 희생하고 세월이 지나면서 자식들이 독립하고 자립했을 때엔 부모는 거의 백발이 되고 얼굴엔 주름살이 깊어진다. 이처럼 노인이 되면 4가지 고통인 1. 병고(병이 많고) 2. 빈고(돈이 없고) 3. 고독하고 4. 역할상실(할 일이 없다)을 겪게 된다. 이처럼 노인이 되면 죽음이 실감나면서 가정적으로 쓸모 없이 되어진 노부모를 자식들은 제 살기에 바쁘다면서 늙고 힘없이 살아가는 부모를 쉽게 잊고 지내기가 일쑤이다.

부모공경이란, 히브리 단어에서 ‘카멜’이라는 어휘를 쓴다. 이 말은 3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존경한다’, 또 하나는 ‘기뻐한다’, 세 번째는 ‘순종한다’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이렇게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고 미리 이해할 줄 알며 기쁘시게 해드리므로 부모님을 공경할 수 있는 자녀가 되라는 뜻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어느 종교의 지도자도 효도를 강조하지 않은 경우가 없다. 효지행지본(孝之行之本)이라. 효도는 백가지 행실의 근본이라 했고 성경과 불경, 그리고 코란 기타 종교에서도 공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부모를 사모하는 마음이 늙어갈수록 더하다.

사람들은 부모가 돌아가시고 나서 나이가 점점 많아지면서 다시 한 번 부모를 모셔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이는 쉬지 않고 순환하는 신체의 맥박 속에서 하늘이 마련해주신 천륜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옛 성현들께서도 이를 절실하게 느꼈던 것이기에 예부터 전해오는 글에 이르기를, ‘나무가 고요해지자 해도, 바람도 그치질 아니하고,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고자 해도 기다려주질 아니한다’라고 했다. 하늘같이 높고 바다같이 깊은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에 자랄 때는 모르고 지냈지만 이제 나이가 들어가면서 효도하지 못했던 것을 뉘우치기 마련이다.

핵가족제도가 좋다고 부모를 멀리한 사람이 있다. 먼 후일에 이르러 후회하는 일이 있을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나의 행동이 내 집의 가풍이 되는 것이요, 나의 마음이 자녀교육의 지침이 되는 것이다. 멀지 않아 내 집 가풍 속에서 나의 교육을 받은 자녀들이 나의 품을 떠나 자기 생활을 하게 된다. 효도한 자는 효도하는 자식을 두어 효도를 받게 될 것이며, 불효자는 불효하는 자식을 두어 불효를 받게 된다는 옛 성현의 말씀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돌아가신 부모는 다시 모실 수 없기 때문에 생전에 다 갚지 못한 그 은혜를 사후에라도 갚아드리기 위한 뜻으로 모시게 된 제사를 보본지의(報本之義)라 하겠다.

추석에 차례(茶禮)를 지낸다면서 왜 제사를 지내나?

차례와 제사가 어떤 관계인가? 먼저 사전적인 의미의 뜻은 차례와 음료의 차다래와 같은 뜻의 말로, 명절이나 조상 생일 또는 음력 초하루와 팔월 보름의 낮에 간단히 지내는 차례로 설명한다. 실제 단어의 뜻과는 전혀 다른 제사행위를 하는 것이다. 본래 신라시대에 충당이란 승려가 매월 설이나 추석엔 미륵부처에게 공양을 했다고 해서 차례라고 했다고 하는데, 그 시대를 신라 765년으로 잡는 것은 삼국유사 표훈대덕조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음료의 차가 아닌 음식을 차려 놓고 조상님께 예의를 표한다. 다시 말해서 차례는 차 마시는 것이 아니라 제사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적 의미에서는 신령(神靈) 또는 죽은 넋에게 음식을 차려 놓고 정성을 표하는 예절의 뜻으로 천신(天神)께 드시는 제사가 인간의 넋에게 드리는 제사로 되어있다고 한다. 제사란 신령께 또는 인간 죽은 자의 넋에게 위로로 음식을 차려 놓고 정성을 표하는 예절이라는 뜻이다.

성경 창세기 8장 20절에 보면, ‘노아가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라는 구절에서 제단의 제사도 제(祭)자를 사용했다. 번제의 제사나 제단의 제사나 인간제사나 모두 같은 제(祭)자를 사용한다. 창세기 4장 3절에서 가인도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다고 한다. 그 후 몇 백 세대가 지난 후인 야곱의 세대에 와서 제사란 말이 등장한다. 천신제(天神祭)의 권위와 진리를 지켜 인간제사와는 완벽하고 정확하게 차별화 하면서도 ‘제사 제’자를 같은 ‘제’자로 그대로 쓰는 것은 인간의 제사는 하나님께로 드리는 제사로부터 있다는 사실과 시원(始元)을 제사라는 단어에 남기기 위한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와 인간 제사가 글자도 똑같다 보니 하나님의 권위와 존귀함이 점점 떨어지게 되자 제사라는 말을 예배란 새로운 형태의 말로 사용하면서부터 제사라는 용어는 성경속에서만 존재하고 머물게 되었다. 현대인이나 신세대인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의식행위를 본 적도 없고 구경마저 못했으니 세월이 갈수록 인간제사만이 풍성해지고 천신 제사는 없어지게 된 것이다.

예로부터 동양의 유교사상에서는 영혼은 인간으로 태어난 일생과 영계의 영혼으로 다시 태어나 제사날을 제일 기쁜 날로 생각하고 제사날이 되면 자손의 집에 꼭 찾아온다고 믿기 때문에 조상제사를 중요시 여겨 예부터 깊이 뿌리 박힌 선조들의 풍속으로 물려받은 사상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떤 서적에서 보면, 죽은 부모는 인격체가 아니니 제사를 지내는 것은 이단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부모란 본래부터 생사를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본다. 성경은 분명히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지 죽은 부모는 부모가 아니라고 한 성경구절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상가집에서 제사를 지낼 때에 자신의 태도를 어떻게 하는 것이 교인으로서 가장 성서적이냐가 문제일 것이다. 그런데, 부모님 시신을 놓고 인격체니 비인격체니 하는 것은 같은 기독교인으로서도 참으로 듣기 거북한 느낌마저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이제 여기에서 우리는 매년 돌아오는 제사날이 되거나 또는 명절 때가 돌아오면 의례히 먼 객지에 나가 있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조상에 대한 예를 지내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때마다 가족 중에도 신자와 비신자 간의 제사의식에 대한 문제를 놓고 제사를 지내야 한다, 지내서는 안된다 등의 엇갈린 의견충돌로 인해 그야말로 오래간만에 한자리에 모인 식구들의 명절 기분을 말할 수 없이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어쩔 줄 몰라 하는 경우가 우리들의 주변에서 듣고 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제 이토록까지 모처럼 좋은 가족 분위기를 제사의식 문제로 인해 굳이 마음 상하도록까지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일까?

필자는 여기에서 생각건대, 하나님은 온 인류의 하나님이시니 각나라와 인종과 언어와 문화가 각기 다른 풍습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우리 기독교도 우리에게 알맞은 한국적 기독교가 절실하게 요구된다고 생각된다.

조상 제사의 유래

제사의 역사는 고대 중국의 당나라때에 뛰어난 황제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 그 후 송나라 때에 유교학자(주희)가 성리학을 주창하면서 더욱 강조되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때 까지만 해도 불교의 성행으로 제사가 없었으나 그 후 조선이 유교국가로 되면서부터 제사가 장려되었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2백년 전, 가톨릭 교회가 이 땅에 전파되었을 때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충과 효를 중심으로 한 유교가 윤리적으로, 사회적으로 종교적 등의 기초를 이루고 있었는지라 이 땅에서는 제사가 하늘의 뜻에 있는 것으로 여겨져 정성된 제사는 하늘의 복을 얻어온다고 믿고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때에 이러한 적용주의적 선교방식을 취하던 이것은 기독교만의 입장에서 별 문제가 없었으나 그 중에서도 무엇인가 자기의 추모의 정을 다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느끼고 있을 뿐이다. 불신가족이나 불신친척∙친지들은 고려하지 않는 일방적인 행사이기에 가족 간의 불화나 오해와 갈등, 소외 등을 당하는 일이 많이 있어왔고 오늘날에도 이 문제로 고민을 호소하는 교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조상숭배만을 숭상하는 유교

공자는 다른 샤머니즘을 부정하면서도 조상숭배만은 숭상하며 유교가 ‘한무제’ 때 국교가 되자 명당사상을 도입하며 그 종교적 제례의식화에 까다로운 규법을 만들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상의 영혼은 신과는 전혀 다른 순수한 인간의 혼백설에 근거를 두고 있다.

불교에서는 ‘만물에 부처가 깃든다’라는 식으로 혼백의 위패를 만들어 기일을 정해놓고 제사를 지낸다. 이러한 조상신앙은 신단이나 신상은 물론 없고 가벼운 제상을 차려 사자에게도 음식을 권하는 등의 습관이 남아있다. 이것은 단순히 사자를 추모하는 인간의 자기위안에 불과하므로 우상숭배와는 다른 것이라 생각한다. ,

조상 제사, 교인 자율에 맡기는 것일까?

1981년 11월 2일자 동아일보에서 예수 믿는 남편이 예수 안 믿는 아내 권씨에게 자기 어머니 사후에 제사를 금함으로 인해 권씨 부인이 목 매어 자살한 사건이다. 당시 동아일보는 이러한 사실을 3차례에 걸쳐 게재하였다. 그러자 당시 YMCA 총무였던 이상재 선생은 조상숭배는 우상숭배가 아니라는 글을 실었다. 그러나 계속해서 제사문제에 대해 많은 문제가 일어나자 다시 이상재 선생의 의견을 정리해서 ‘제사를 지내든 안지내든 그 문제에 대하여는 각 가정사이므로 교회에서 관여할 필요가 없다’라고 했다.

그 후 각 신문에서 제사문제에 대해 언급한 부분들을 보면, 1981년 12월 4일자 한국일보에서 제사논쟁이란 제사에서 기독교에 제사논쟁이 심상치 않게 일고 있다고 전제하고 제사무방론과 제사반대론이 있는데, 제사무방론에서는 제사의식에서 사진을 놓고 절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공경심의 발로일 뿐이며 문제를 향해 절한다 해서 그것이 구원을 바라는 행위가 아닌 이상, 우상숭배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1983년 1월 1일자 중앙일보에서는 한국교계의 원로인 한경직 목사와의 대담에서 조상제사문제에서 조상을 존경하는 경의를 표하는데 까지는 아무런 교리적인 문제가 없다고 한다. 1983년 3월 6일자 조선일보에서는 천주교의 노기남 대주교와의 대담에서 조상을 추모하고 숭배하는 것이 우상숭배라 할 수 없다며 중국을 통해 가톨릭이 들어오면서 잘못 해석되고 오해한 탓이요, 돌아가신 후에도 부모를 사모하고 추모하는 좋은 풍습이니까 계속되어야 한다 했다.

또한 당시 YMCA 명예총무인 전택부는 기독교신자들이 만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다른 곳에서 선교사들은 한국인들이 무엇이나 엎드려 절하면 우상숭배라 했으며 이 마른 땅에 대고 절하는 것은 하나님 외에는 절하지 말라 가르쳤다면서 부모를 잊지 말고 뜻있게 보내는 모범의식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끝으로,, 설문지를 통해 나타난 조상제사에 대한 견해로 한 설문조사 범위는 서울에서 한 노회와 한 교회를, 경북에서 한 노회와 한 교회 등을 선택하여 교역자들과 교인들에게 조상 제사는 절대로 지내면 안된다고 주장하는 교역자가 30%를 차지했고 형편대로 하라는 교역자가 61%로서 그 중 서울 교역자가 59%이고, 경상도 교역자가 53%를 훨씬 상회하고 있는데, 이것은 강력한 반대도 아니고 하라는 권면도 아닌 어떤 면에서 교인 자율에 맡기고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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