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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노동을 통한 행복, 심은대로 거두리라
칼럼 - 노동을 통한 행복, 심은대로 거두리라
  • 강영철 기자
  • 승인 2022.04.13 1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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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대로, 심은 종류대로, 심은 분량대로 거두고 심은 곡식은 때가 되어야 거둔다는 4가지
사실은 농사의 법칙이며 대자연의 원칙, 생태계의 존재방식.
우리 인간이 닮아야 할 삶의 “패턴”
이인수 목사
이인수목사 (전)온누리수련원장, 국가유공자, 6‧25 참전,무공수훈

봄의 계절이다. 꽃망울 터지는 봄 오는 소리에 깜짝 놀란 대자연의 겨울잠 자던 씨앗들이 모가지를 내밀고 기지게를 펴면서 세미한 소리로 속삭인다. 왜 의심하느냐. 생명의 예수는 무덤에 가둘 수 없다는 것을.. 그러기에 봄이 오는 것은 부활의 신앙과 함께 부활소식 전하라는 그의 명령이니라. (4월 17일 부활절 아침에)

사람은 누구나 다 일을 통해서 성취의 기쁨이 있고 성공이 있으며 삶의 보람이 있다. 괴테는 인간의 천성이 일을 하도록 되어있다고 한다. 따라서 천성을 제멋대로 변경하려고 하면 고된 복수를 당하게 된다. 휴식만 취하면 회의만이 있을 뿐, 폐인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성경에서,, 노동에 대해 대단히 소중한 것임을, 더 이상 강조할 수 없을 만큼 강조한다. 하나님이 첫 인간 아담을 창조하시고 두 가지의 명령을 주셨다.

하나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종교의 명령이고, 또 하나는 6일동안 힘써 일하라는 노동의 명령으로서,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사람은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온다 했고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며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함과 열심을 다할 것을 강조하셨다(창 2:6-20).

영국의 저술가 ‘사무엘 스마일즈’는 ‘창조론’이란 책에서 ‘‘노동으로 땀이 없는 사람에겐 행복도 없다’라는 책의 내용 중 한 구절을 뽑자면 ‘No sweat, no sweet’이 있다. ‘땀을 흘리지 않는 사람에겐 행복도 없다’라는 것으로, 그 당시 영국 빅토리 왕조시대에는 사람들이 가장 소중히 생각했던 것이 노동이었던지라, 이 책은 영국 사람들에게 ‘노동의 복음서’라는 칭호를 들었다 한다. 영국사상가 ‘카일라일’은 ‘자기의 할 일을 찾아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그로 하여금 다른 행복을 찾게 하지 말라. 그에겐 일이 있고 인생의 목적이 있다’고 했다. 사람은 언제나 좋은 일, 대가가 좋은 그런 일들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직업선택도 마찬가지다.

마음에 맞고 안 맞고 상관 없이 어떻게 해서 첫 발을 어떤 직업에 들여 놓았는데, 10년 20년 하며 살아가다 보니 이제는 다른 직업으로 옮기려 해도 옮길 수가 없다. 이미 그 일에 익숙해졌고, 가족들은 딸려 있으니 생계유지의 책임을 져야되기 때문에 함부로 전직할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30-40년이란 평생직업이 되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람이 한 생을 살면서 꼭 자기가 하고싶은 일만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하고싶지 않더라도 억지로라도 즐거운 마음가짐으로 최선을 다하는 그런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 하겠다. 성경에서 게으른자를 철저하게 징계하고있다. ‘게으른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네가 어느 때까지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눕자 하면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 했다(장 6:6-11).

괴테는,, 인생의 무서운 질병은 나태라면서 무위도식 하는 자에게는 절대로 기회란 없다는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 했고

막스마르크는,, ‘여러분에게 권고하고 싶은 말은 오직 3가지 뿐이다. 일하십시오, 더 일하십시오, 끝까지 일하십시오.’라고 했다.

불란서의 유명한 농민 화가 ‘밀레’가 그린 고가의 명화 ‘만종’이란 그림이 루브르 미술관에 걸려있다. 이 그림은 어느 젊은 부부가 하루종일 땀 흘려 일하다가 멀리서 예배당 종소리가 들려오자 괭이와 삽을 내려놓고 서서 두 손 모아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 명화속에는 3가지의 신성함이 표현되어 있다. 하나는, 가정의 신성함이고, 둘째는, 노동의 신성함이고, 셋째는 종교의 신성함이라는 것이다.

부부가 함께 하나님을 향해 머리 숙이고 기도하는 모습은 그 가정이 얼마나 행복한 가정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란 것이다.

지난 겨울이 추웠다 하여도 대자연의 봄기운은 어김없이 언 땅을 녹이며 대지를 약동케 만들고 농부들의 일손이 한참 바빠지는 계절이기도 하다. 이러한 봄을 모춘(暮春)이라 하여, 청명곡우절기(淸明穀雨節氣)보다 춘일(春日)이 재양(載陽)하며 만물이 화창하니 백화(白樺)가 난만(爛慢)하고 새소리 각색이다. 당전(堂前)의 쌍제비는 옛집을 찾아오고 화간(花間)의 범나비는 분주히 날고 가니 미물도 득시(得時)하며 자락(自樂)함이 사람흡다(조선시대의 우리나라 전통적인 농업 켈린더인 농가월령가)의 봄품경이었다).

한때 우리나라 농협에서 슬로건으로 쓰인 적이 있었던 ‘신토불이(身土不二)’란 말은 땅과 몸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뜻이다. 사람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는데 바꾸어 말하면 애당초 온 곳이 있다는 뜻이며 돌아가는 곳과 온 곳은 일치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흙으로 만드셨다(창2:7). 인간의 죽음에 대해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지니라(창3:19)’. 죽어서 돌아갈 곳이 흙이고 자연이라면 내 삶의 원천이 흙이요, 자연이란 뜻이다.

중국의 대농학자인 ‘사마온공’에게 그의 제자가 묻기를 5만자가 넘는 한문자 중에서 가장 훌륭한 글자 한자를 추천해달라 했다. 그러자 誠(정성 성)자를 소개해주었다. 제자가 다시 묻기를 ‘성(誠)은 무슨 뜻입니까요?’라고 하자 그는 불망어(不望語)라 했다. 이 말은 땅을 경작하는 농부들에게는 땅은 속이지 않는다 하는 진실을 배우라는 것이다.

땅도 정성껏 가꾸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땅이라 할지라도 토지를 갈아엎어 바꾸어 주지 않고 그대로 버려두면 그 땅은 산성화되어져 결국 못쓰게 된다. 이런 이치와도 같이 묵은 밭과 같은 사람의 마음의 밭도 새 봄을 맞는 것 같이 새롭게 만들어서 인생의 풍성한 열매를 거둘 것이라 했다. 이 말에는 대자연의 원칙인 동시에 인간 삶의 지표가 되는 4가지의 뜻이 담겨져 있다.

그것은 심어야 거두고, 심은 종류대로 거두며, 심은 분량대로 거두로, 심은 것은 때가 되어야 거둔다고 하는 사실이다(갈6:7).

첫째로, 심어야 거둔다. 성경에서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기를 소망하는 자에게 ‘이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도 않은 데에서 거두기를 원하는 줄 아느냐. 네가 네 손으로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니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시편 128편 2절).’ 이처럼 불로소득을 좋아하지 말고 자기 손으로 수고해서 열매를 거두어 가는 그런 사람을 성경에서는 칭찬하며 복이 있다 했다.

둘째로, 심은 종류대로 거두리라.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는 것은 심은 씨앗대로 열매를 거둔다는 말로, 속담에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말같이 선을 심으면 선을 거두고, 악을 심으면 불의의 열매를 맺고 사랑을 심는 자는 사랑을 거두지만, 미움을 심고 사는 자는 결국 자기가 미움의 대상이 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간다’ 했다(에스겔 18장).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3-4대까지 미친다 했고 반대로 계명을 지켜 행한 자는 그의 천대까지 복을 받는다 했다. 이처럼 내가 무엇을 심고 사느냐에 따라 내 자신이나 내 자손에게 그대로 열매 맺어진다는 사실을 두렵게 여기면서 한생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세번째로, 심은 분량대로 거둔다. 성경에서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두리라(고후9:6)’고 했다. 여기서 많이 심는다는 것은 단순히 수량을 말함이 아니라 최선의 열심을 다함을 말함이다.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면 자신의 열매를 맺는다는 뜻이다. 심은 분량대로 거둔다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며 인생의 법칙이기도 하다.

네번째로, 심은 곡식은 때가 되어야 거둔다. 성경에서 ‘선을 행하되 낙심치 말지니. 피곤치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했다(갈 6:9). 직장생활이나 사업이나 무슨 일을 하든 어떤 환경에서나 열심히 잘 하려고 노력했지만, 오히려 나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악하고 불의한 자가 더 득세를 하게 될 때 낙심하기 쉽다. 그러나 성경에 ‘때와 기한은 하나님의 권한에 두셨나니라’ 했다(행 1:7).

지금 내가 심은 것을 내가 거둘 때도 있지만 내가 거두지 못할 때도 있다. 다른 사람 또는 내 자손이나 후대의 자손들이 거둘 때도 있다. 그렇다 해서 낙심하지 말지니 심는 것으로 기뻐할 수 있고 만족할 수 있으며 심은 보람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무엇을 심을 때엔 낙심하지 말지니 언젠가는 그의 열매가 맺어진다는 사실을 믿고 기다려야 한다.

끝으로,, 뿌리 얕은 거목도 흔들리지 않는다.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리며’라는 용비어천가 중의 한 구절이 있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가뭄을 안탄다는 속담도 있다. 뿌리가 땅 속에 깊이 있어야 비가 오지 않고 가문다 해도 시들거나 말라 죽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풀한포기 없는 사막에 시틴 나무 뿌리는 땅속에 물줄기를 빨아들이기 위해 1km가 넘게도 뻗어 나간다 한다. 대부분의 우리들은 바로 이 깊다는 것에 매료되어 이를 자신들의 삶의 지표로 삼으려고 한다. 그래서 뿌리 깊은 나무를 바라보며 깊다는 것에서 무한 동경을 가지고 자신도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뿌리가 얕아도 가뭄을 타지 않으며, 흔들리지도 않을 뿐더러 세계에서 제일 크고 높음을 자랑하는 나무가 있다면 믿을 수 있는가?

그것도 한 점 구부러짐도 없이 똑바르게 자라고 모진 바람이 불어도 그리고 불이 난다 해도 쉽게 죽지 않는 나무가 있다면 믿겠는가? 게다가 죽고 잘려 나가더라도 곰팡이나 벌레나 부식에도 강하며 옥의 마루나 단장용으로도 요긴하게 쓰여 색깔도 아름답고 나무 결도 부드러워 가공품에도 귀하게 쓰인다고 한다니 말이다.

권위있는 산림환경과학자가 쓴 글에서 보면, 바로 이 나무가 미국 서부에서 세계최대의 부피와 크기를 자랑하는 ‘레드우드’란 나무가 있다 한다. 이 나무들은 보통 100m 이상씩 자라고, 밑동의 지름은 10m를 넘나드는 것이 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나무의 뿌리가 크기와 뿌리(높이?)에 비해 깊지가 않다는 것이다. 단지 2~3m로 짧게 땅 밑으로 뻗어 나갈 뿐인데 그런데도 100m 이상의 키와 엄청난 부피를 겨우 2~3m정도의 뿌리로 지탱할 수 있을까? 그것도 한 점의 구부러짐도 없이 말이다. 레드우드가 이렇게 자랄 수 있는 이유는 단 한가지, 가족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며 자란다는 것이다. 땅 밑으로 뻗지 못하는 대신 옆으로 25m이상 번지면서 한 뿌리에서 여러 그루의 즉, 한 뿌리에 연결되어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것이다.

보통 나무들은 큰 가지들이 땅 위의 줄기에서 갈라져 나오지만 레드우드는 줄기 자체가 땅 속에서부터 갈라져 나오므로 어떤 나무가 모계인지를 구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오히려 뒤늦게 자란 나무가 모계 역할을 하면서 죽어가는 가지를 대신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오래된 나무들은 하나같이 아래부분에서 불이 심하게 타다가 만 검은 자국을 쉽게 볼 수 있지만 자신에게서 새로운 생명을 받은 다른 줄기들에게 영양분과 수분을 나누어 주는 것이 거목의 특징이라고 한다.

이 나무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족과 공동체가 무엇인가를,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즉, 나무가 넘어져 쓰러진다 해도 모계의 뿌리계통을 이용하여 강한 생존력을 보여주고, 한 뿌리에서 나온 여러 나무들이 서로 힘을 주고 받으며, 또한 모계나무가 손상을 입고 쓰러져도 이 나무에서 또 다른 나무들이 자라 모계의 생명을 대신해주기도 한다는 것은 너의 죽음이 나의 삶이며 나의 생명이 너의 죽음이 되어 우리로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함께 한다는 것은 너의 고통과 나의 기쁨이, 그리고 너의 행복과 나의 설움이 모두 뒤범벅되어 생명을 키워가는 것이다. 이것이 가족정신이며 공동체의 명성이기도 하다. 생태계의 존재방식 안에는 우리 인간이 닮아야 할 위대한 삶의 패턴들이 들어있다.

그래서 오늘날 신과학 운동가들은 자연을 이해할 때 바로서 이 시대를 어떻게 관계 맺고 살아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다고 하면서 생태계를 모방하자고 주장한다. 즉, 함께 가야하고 함께하는 뿌리가 얕아도 가뭄을 타지 않고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네가 내가 되고 내가 네가 되는 공동체 안에서는 누가 강하고 약한지도 구분할 수 없는 것이다. (4.5 식목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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