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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로이드존스 로마서나눔 11-10 롬11:13-15 바울의 직분 - 이방인의 사도
마틴로이드존스 로마서나눔 11-10 롬11:13-15 바울의 직분 - 이방인의 사도
  • 정원우
  • 승인 2021.12.15 0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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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14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15 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 들어가는 말

우리는 롬11장의 두 번째 소단락 11~ 32절을 살필때 우리는 전후 관계가 어떻게 되는가?” 물어야 합니다. 이런 질문은 항상 유익하며, 그렇게 할 때 본문은 두 가지 방향에 빛을 던져줍니다.

. 본론

첫째, 복음 사역자 바울

사도는 주로 이방인이 있었던 로마에 있는 교회에 답을 주는데 유대인의 사례에 그토록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에 대한 유대인과 하나님의 관계에 대해, 그리고 교회와 관련해서 말하려는 것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그는 우리 주 구세주 예수의 복음의 사역자로서 삶에 대해 개인적인 진술을 합니다. 이 소단락은 다루는 범위는 적지만 본문이 넓은 아주 재미있는 단락입니다. 그러나 학식있는 주석가들도 13-14절에 포함된 사실을 다루는데 굉장히 어려워합니다. 사도가 사용하는 다소 특이한 구조때문입니다. 우리가 이전에 본 것처럼, 사도는 글을 쓰는데 현학적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완료되지 않고 진술을 마무리하는 파격구문을 사용하여 독자 스스로가 유추하도록 여지를 담겨 둡니다. 사도는 참으로(indeed)’그러므로(therefore)’로 라는 두 단어를 함께 사용합니다. 그런데 의미 차이가 분명하지 않게 사용됩니다. 흠정역과 다른 번역본들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사도는 신약 어디서든지 이 단어들 다음에 '그러나(but)‘라는 단어를 함께 사용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데 바로 그것이 어려움을 일으킵니다. 사람들이 '그러나라는 단어의 사용 여부에 일치하지 않습니다. 세 가지 관점이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순전히 문자적으로 번역해서 이 문제를 피해가고, 어떤 사람들은 '그러나넣으면 안 된다어떤 사람들은 넣어야 한다주장합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방법은 이런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가 이 진술에서 말하는 무엇을 확신할 수 있는가?

첫 번째, 사도는 우리에게 특별히 지금 이방인에게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3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이 번역보다 그러나 내가 말하노라가 낫다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그러나라는 단에는 새로운 요소가 논의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가 전에 이방인들에게 하지 못했던 것을 직접 말하려 합니다. 저의 견해로는 로마에 있는 교회 대다수가 이방인이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중요한 요점입니다. 앞의 두 장과 본 장의 절반에서 사도는 유대인들을 언급할 때 3인칭으로 말했지만 여기서부터는 이방인들을 항상 2인칭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만일 로마 교회가 유대인들이 다수였다면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도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요? 먼저 그는 이방인들에게 자기가 유대인의 문제에 그렇게 많은 관심을 계속 가지는 이유를 설명하고, 그것이 그들과 아주 큰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사도가 이 문제를 특별히 다루는 이유는 그가 바로 이방인의 사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에 개인적인 진술이 나옵니다.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그래서 우리는 그의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혹은 그의 사역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에 대한 진술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사도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모든 주석가들이 사도가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그가 그것을 알리고 싶어 한다는데 동의합니다. 그러나 이 말에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사도는 로마의 이방인 그리스도인들 중에 아무도 바울 자신이 유대인들에게 많은 관심을 두면서 이방인들을 소홀히 여기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를 간절히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잘못된 결론을 유도해 내지 말아라. 나는 특별히 이방인의 사도로 나의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긴다. 내가 유대인들에 대해 말하는 것과 그들에 대한 나의 관심까지도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정확히 그의 직분을 어떻게 영광스럽게 여겼을까요?

둘째, 사도가 영광스러워 하는 것

이 질문은 이 문제의 핵심이며 불일치로 인해 다양한 문장으로 번역되는 부분입니다. 먼저, 저는 사도가 말하고 있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설명하겠습니다. 달리 말하면 어떤 영어성경들(RSV, NEB )이 빠진 '그러나(but)‘을 집어넣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겠습니다. NEB 성경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나는 이방인들의 선교사이다. 그리고 내가 사역 자체에 모든 영광을 돌리는 그때가 나의 종족 사람들에게 시기를 일으키려고 노력할 그때이다.” 이 번역은 유대인을 구원하기 위한 이방인들의 사도로서의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주석가 렌스키가 이 주장을 가장 분명하게 지지했는데 그도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전도하면서도 오직 유대인의 영광만 바라보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방인들을 위해 인내하고 힘써 노력한 모든 것이 사실은 유대인을 구원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번역을 거절합니다. 문맥상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14절에서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사도의 소원은 일부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사도가 그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사도는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야 한다는 사명을 주님께 받았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엄청나게 자랑스러워 하는 것입니다. 그는 과거에 바리새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부르신 놀라운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특권을 놀라워하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유대인의 구원과 마찬가지로 이방인의 구원을 귀히 여기신다는 것을 압니다. 또 다른 해석은 이방인의 구원이 유대인의 구원에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11장에서 계속해서 보듯이 사도는 하나님이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원에 대한 사도의 위대한 입장을 봅니다. 그는 이방인을 위한 특별한 사도로 위임을 받은 것 때문에 그의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라고 말할 때, 그는 전심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드리며, 스스로를 큰 희생으로 드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신의 특권임을 보여줍니다. 세 번째, 그는 자신은 복음을 전하는 일뿐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에 대한 위대한 진리를 그들에게 온전하게 설명해주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백성으로서의 유대인들의 미래도 포함됩니다. 네 번째, 사도는 유대인들에게 일어나는 일이 궁극적으로는 이방인들에게 가장 큰 축복의 원인이 될 것이라고 말하며 이 사실을 이방인들이 알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15 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또한 그는 그들에게 잘못을 경고하는 것도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는 한 부분입니다. 이방인 신자들의 위험이 바로 유대인들에 대한 그릇된 생각이었습니다. 16-24절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18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는 엄숙한 경고의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들도 꺾이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도 자만하다가 꺾인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끝에서 바울은 이 문제를 포함하는 모든 것을 요약합니다. “25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이것이 바울이 자신의 직분을 자랑하는 방법입니다. 제가 이것을 상세하게 논한 것은 이것이 사역자요 설교자인 저에게 매우 특별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의 직분을 종합 사역이라고 부를 수 없다면 우리의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지 맙시다. 복음의 사역자로 부름받은 사람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복음 전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고, 경고하고, 견책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사도는 이 모든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가 자기의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는 이유입니다. 사실상 그는 이방인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내가 여러분 앞에서 유대인들의 전반적인 문제를 설명하지 않았다면, 나는 나의 일을 적절히 행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나의 사역과 나의 부르심의 관점을 소홀히 하는 것이다. 나는 단순히 여러분을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려고 보냄받은 것이 아니다. 나는 여기서 여러분을 세우려 한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을 여러분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유대인들에 대한 잘못된 개념들을 경고해주는 것이다. 나는 이 모든 일이 여러분과 관련된 것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바르게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또 사도는 말합니다. “ 나는 여러분에게 유대인에 대해 말하면서 여러분을 소홀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임무의 바로 중심에 있는 것이다. 나는 이방인의 사도이다. 그리고 나는 여러분 이방인들이 하나님 앞에 완전하고 온전하게 드리는 나의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고 있다.“

. 결론

우리도 사도처럼 영혼을 구원하는 놀라운 복음을 전하는데 그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설 수 있도록 말씀으로 기도로 교제로 세워가는 이 역할을 영광스럽게 여기고 열심을 다하는 모든 사역자와 성도가 됩시다.

 
 
바울의 직분 - 이방인의 사도
바울의 직분 - 이방인의 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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