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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로이드존스 로마서나눔 11-4 롬11:7-10 그릇된 방법으로 의를 구한 이스라엘
마틴로이드존스 로마서나눔 11-4 롬11:7-10 그릇된 방법으로 의를 구한 이스라엘
  • 정원우
  • 승인 2021.12.08 1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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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그런즉 어떠하냐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 8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9 또 다윗이 이르되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옵고 10 그들의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 들어가는 말

엄숙한 이 구절은 사도가 바로 앞에서 말한 것을 요약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성경의 가르침 중에 가장 신비로운 말씀 중 하나를 접하기 때문에 모세처럼 신을 벗는 겸손과 주의를 요합니다. 11장 마지막 말씀을 명심합니다. ”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이것이 우리가 접근해야 할 영적인 방식입니다. 우리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반감을 가지는 사람은 우리가 숙고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비극에 자신을 밀어넣는 것입니다. 이점을 조심해야합니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우리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에 바쁘고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때, 우리가 뭔가 문제가 있어서 그렇다고 말합니다. 바로 이것이 유대인의 불행의 원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들이 겪었던 비참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 본론

첫째, 그릇된 방법으로 의를 구한 이스라엘

첫 번째, 우리의 마음을 사도의 기본주장에 분명하게 맞춥시다. 사도는 즉시 7 그런즉 어떠하냐사도의 말에 비추어서 어떤 결론을 말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의 대답은 이스라엘(민족)’입니다.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구하다라는 말은 아주 중요합니다. ‘열렬히 찾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강조를 위해서 전치사를 붙였습니다. 그래서 이 말은 쳐다보는 것이아니라 열렬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시제를 써서 여전히 구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그들이 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질문에는 없지만 이며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는 것입니다. 그들은 열렬히 지속적으로 구했지만 얻지 못했습니다. 반면 택하신 자들이 그것을 얻었습니다. 여기에 아주 흥미로운 표현이 있습니다. 사도는 ‘the elect' '자격있는 사람이 얻었다고 말하지 않고 ‘the election'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다고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만일 자격있는 사람이 얻었다고 한다면 그들은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그들이 자신들의 자질이나 자신들이 행한 어떤 것의 결과로 구원 받았다고 생각하는 오류에 빠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택하심을 입은 자라는 용어가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이 단어는 그들이 얻은 것은 다른 누군가가 행한 것 때문이었다는 중요한 요점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사람들에 의한 선택이 아니라 선택하는 그 사람을 강조하며, 그래서 모든 영광이 하나님 한 분에게만 돌려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용어는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집단으로 묘사하는데 그것이 전체 논증과 일치합니다. 이 논증은 계속 남은 자들‘. , 택하심을 입은 사람들과 구별되는 민족 전체가 우둔하여졌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단어를 주목해야 합니다. 모든 주석가들이 딱딱해졌다로 번역해야 한다고 지적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KJV 번역자들은 고후3:14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눈멀어졌다라고 번역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글에서는 완고하여졌다라고 번역했습니다. 가장 훌륭한 번역은 눈멀어졌다입니다. 고후3:14에서는 개역한글의 번역을 개역개정에서도 고수했지만 우리가 연구하는 롬11:7은 개역한글에서 완고하여졌다라고 했었지만 개역개정에서는 우둔하여졌다로 바꾸었으니 바른 의미에 근접해졌다고 보입니다. 저는 사도의 인용문에 눈에 대한 언급이 있음으로 정당화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8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사도는 이점은 상세하게 다룰 것입니다.

사도는 여기서 눈멀게 되었다수동태 동사를 사용했습니다. 이점은 나중에 다시 다룹니다. 8~10에서 사도는 자신의 기분적인 주장을 구체화한 후에 매우 특별한 주장을 합니다. 8절에서 성경에서 많은 인용들을 하고 거기서 참신한 진술을 만들어냅니다. 여기에 사도의 또 하나의 신적 영감의 예가 있습니다. 원래 진술을 하게 하셨던 바로 그 성령께서 여기서도 사도를 지배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는 세 구절로부터 하나의 복합적 진술의 형태로 동일한 의미를 제시합니다. 인용구절은 사29:10, 29:4, 6:9 입니다. 사도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보고 듣고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제 기능을 상실하게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사도의 말은 이스라엘이 전부터 이런 상태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엘리야 시대도, 모세 시대도, 그 이상도 올라갈 수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사도시대에도 여전한 상태입니다. 사도는 이런 일이 절대로 새로운 일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이 일은 지금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 민족 대다수, 은혜의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들을 제외한 모든 자들이 복음을 거부하고 있으며 교회밖에 있는 사실에 대한 설명이 됩니다. 사도는 시69:22~23을 인용하여 9~10을 기록하였습니다. “9 또 다윗이 이르되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옵고 10 그들의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여기에 중요하면서 어려운 진술이 나옵니다. 다윗은 식탁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식탁 위에 놓여 있는 것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음식과 음료가 차려진 식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생활에 자주 등장하는 용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이나 올무혹은 거치는 것이 아니라 보응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에 완고한 마음을 품고 끝까지 거절한 결과를 거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구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혜택들이 벌이되고 장애가 되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 축복의 상징을 저주로 바꾸어 달라는 것입니다. 구약에 똑같은 끔찍한 예들이 있습니다. 106:1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요구한 것을 그들에게 주셨을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쇠약하게 하셨도다이것은 이스라엘 역사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12 이에 그들이 그의 말씀을 믿고 그를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도다 13 그러나 그들은 그가 행하신 일을 곧 잊어버리며 그의 가르침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14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내며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도다이것은 이스라엘이 고기를 달라고 울부짖는 부분으로 하나님께서 메추라기를 주신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시편 기자는 이 사건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1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요구한 것을 그들에게 주셨을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쇠약하게 하셨도다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번영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몸은 살졌으나 영혼은 야위어졌습니다. 이 진술의 한 부분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옵고저는 이 말씀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으로 이끄시는 것과 같은 물질적인 혜택으로만 한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상에 차려진 것들이 저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영적인 축복들을 주셨습니다. 스데반이 말한 것처럼 생명의 도를 받았습니다. 9:4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을 받았습니다. 여기에는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윗의 간청은 그들이 남용하고 오용한 축복들이 올무와 덫이 되고 악으로 보답해 달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 간청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부분적으로는 과거에 이루어 졌지만 사도의 요점은 진짜 성취는 사도 시대에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다음의 묘사입니다. ”10 그들의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영적으로 어둡고 무기력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 묘사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축복들 자체가 우리에게 저주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원칙이 오늘날 이 나라, 아니 오늘날 전 세계의 상태와 교회의 상태를 부분적으로 설명해주지 않습니까? 50-60년 전만 해도 가난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한국교회가 이제는 특권층이 다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헌금이 없어서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물론 요한의 말대로 떠나는 사람은 그들이 구원받지 않았음을 스스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몰리고 부유해졌습니다. 저는 코로나로 피해를 입은 교회들에 미안하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분산시키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장로 대통령도 두 번이나 나왔고 정치인, 특권층, 세상 권력자들이 교회에 수두룩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오히려 교회에 저주가 되었고, 우리가 그 저주의 결과를 부분적으로 물려받고 있다고 믿습니다. 두려운 것은 만일 여러분들이 이 축복들을 잘못된 방법으로 남용하거나 오용한다면 그 축복들이 우리에게 다시 저주가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전통을 항상 주의 깊게 살펴야 하는 이유가 이때문입니다. 오랜 교회 역사를 보면, 한 때 특별한 축복을 누렸던 곳들이 지금은 가장 황량한 곳으로 변한 것을 쉽게 발견할 것입니다. 그 예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가 태어나고 자랐던 웨일즈 지방에서 300여 년 전에 다니엘 롤랜드라는 설교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존라일 감독이 사도시대 이후 가장 뛰어난 설교자라는 칭찬을 마다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는 그곳에서 50년 동안 매주 설교했고 그곳의 성도들은 그 기간 동안 천국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죽은 곳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전통에만 의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곳을 수 없이 언급할 수 있습니다. 예배당에서 하나님은 밥상을 차려주셨고 그들은 즐겼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저주가 되었습니다. 축복이 다름아닌 하나님의 말씀이요 복음이었는데도 말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밥상이 모든 것을 포함한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밥상은 물질적 은사나 축복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가장 부요한 축복이 바로 저주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이스라엘이 아무런 지식과 교훈도 가지지 못한 이방인들보다 더 완악해진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여기에서 가르치는 끔찍하고 무서운 진리입니다. 저는 이것이 오늘날 개혁주의 교회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다시 자신의 역사를 부흥하려고 하실 때, 개혁주의자들이 무시당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개혁주의자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누리며 살기보다 전통에 따라서 산다면, 성경지식을 자랑하지만 성결을 상실하고, 영적인 풍요뿐 아니라 물질적인 풍요도 탐하기 때문에 무시당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치는 일입니다. 오늘날 이 나라의 퇴폐와 타락은 주로 이러한 일 때문이 아닙니까? 우리의 풍요 자체가 가장 큰 저주가 될 수 있습니다. 풍요로운 사회의 위험은 항상 만족하고 게을러지는 것입니다. 반면에 가장 가난한 나라들은 열심히 일합니다. 우리는 게을러지는 반면에 그들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축복이 우리에게 저주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지나온 우리나라를 생각하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지난달(21.7.2)에는 우리나라가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세계무역개발회의 57년 역사상 최초입니다. 195개국 회원국 중에 10위권 세계경제규모로 상위 5%에 해당됩니다. 50여년 전만 해도 필리핀 처럼만 되기를소망했었는데 이제 선진국이 되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변의 나라들은 대부분 불교국가에 우상숭배국가입니다. 그리고 미국이나 영국도 자신의 풍요로움을 소비하기에 바빴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리스도인을 중심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소위 3D 직종에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리고 회사나 정치 지도자로도 끊임없이 진출했습니다. 그리고 사회를 변화시켜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오늘날 다시 역전되는 것을 봅니다. 각종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메스컴에 교회가 연일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를 틈타 각종 이단들이 들끓고 있습니다. 다시 반대 상황에 직면해 있고 그 축복이 저주로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물질적 축복뿐 아니라 진리의 소유와 말씀의 깨달음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성경통독, 성경낭독 열풍이 불었고 지금도 여전합니다. , 웨스트 민스터 표준문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도르트 신경, 기독교 강요, 로이드 존스 교리강해, 에베소서 강해, 지금 로마서 강해까지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지식도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런데 자기가 가진 지식이 전부인 줄 알고 게을러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이스라엘 자손에게 임했던 무서운 재앙을 우리가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잘 이해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이 사실을 가르치셨습니다. 21:42의 포도원 비유와 23:24 심판의 말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스데반도 공회앞에 섰을때,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7: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52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53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이스라엘 백성은 처음부터 이런 경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최후의 재앙이 그들에게 임했습니다. 그것들은 단지 예언된 것이 오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구약성경 전체를 깨닫는데 도움을 줍니다. 구약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아들이 왔을 때 일어날 대재앙의 예언입니다. 그날에 택함받는 백성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이제 이 모든 심판들이 그들에게 임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신탁과 예배와 성전과 모든 가르침들과 상징들을 받았습니다. 이것들은 전부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것들로 눈이 흐려져 그리스도의 진리를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여기서 네 가지 교훈을 제시하려 합니다.

둘째, 네 가지 교훈

첫 번째, 하나님의 축복을 잘못 구하는 것에 대한 교훈입니다. 두 번째는 심판에 의해 눈머는 것에 대한 교훈입니다. 세 번째와 네 번째는 각각 저주와 메시아의 시편을 이해하는 방법들에 대한 교훈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교훈은, 이스라엘이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라는 말씀이 사실인 이유입니다. 이에 대한 답변은 그들이 바르게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메시아가 오셨지만 메시아의 특징과 그의 사역을 완전히 오해했습니다. 사도는 롬9장 끝에서 이렇게 간절히 말했습니다. “30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31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32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33 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그들은 구했지만 바른 방법으로 구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두려운 교훈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바른 것을 구할 수 있으나 바른 방법으로 구하지 않기 때문에 완전히 놓쳐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깨닫고 있습니까? 바로 종교의 위험이 여기에 있습니다. 진심으로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알고 싶다. 그분의 축복을 받고 싶다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을 모릅니다. 만일 하나님을 계속 모르고 있다면 하나님을 알지도 복도 받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열심히 섬기고, 열심히 성경 읽고 열심히 기도하고 선행을 하고, 큰 희생을 드려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사도가 이 사람들에대해 한 말을 잊지 마십시오. 10: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분명히 그들은 열심이 특심이었지만, 누구보다 열정적이었고 끈질기게 온 힘을 다해서 구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나는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가난한 자에게 내가 가진 십분의 일을 준다라고 말로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비극의 원인이었습니다. 이것이 자기 종교요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을 구하는 사람들, 자기 나름대로의 선행에 의지하는 모든 사람들의 비극입니다.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길뿐입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이스라엘의 비극은 그들이 믿음으로 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성전을 소유했고 율법과 선행들이 있으니 의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스데반이 지적한 것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그들은 크고 웅장한 성전에 모든 것을 의지하고 메시아를 탁상공론하고 실제 왔을 때 모든 말씀들을 다 무시하고 십자가에 죽여버렸던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도 유대인들 말처럼 예루살렘에서 예배들 드려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염려하며 말했을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4:21 “..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여러분이 성경을 가지고 있다고, 교회 오래 다녔다고, 큰교회 다닌다고, 선행을 행한다고 자랑한다면 여러분은 유대인들과 똑같은 것입니다. 구원의 길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유일한 구원의 길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그것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유대인들처럼 어떤 것으로도 개인적인 만족을 추구하지 마십시오. 설교 시간은 단축되고 내용도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미국에서 망한 열린예배, 구도자 예배가 한국에서 성행중입니다. 설교가 길어지거나 죄와 심판을 설교하면 교회 떠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 설교를 못합니다. 만일 그러한 자리에 있다면 여러분은 결코 구원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을 이렇게 검사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설교에 어떤 반응을 합니까? 죄와 하나님의 심판의 설교를 들을 때 어떤 감정이 되십니까? 그러한 설교가 싫다면 여러분은 유대인들과 같은 사람입니다. 바로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비극이었습니다. 저는 오늘날 우리가 이와같은 일을 대면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오늘날 이 나라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과 구원을 얻는데 가장 큰 장애가 소위 교회라고 하는 말이 사실이 아닙니까!

. 결론

남은 자는 언제나 소수입니다. ’아직도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을 남겨 두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만일 우리가 남은 자라고 믿는다면 조심합시다. 자랑하지 맙시다. 우리 모두는 자신을 살피고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일하게 안전한 한 가지 입장은 우리가 정적하게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주님은 나의 전부이십니다.“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두려운 교훈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셔서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은혜의 신비를 바로 깨닫게 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그릇된 방법으로 의를 구한 이스라엘
그릇된 방법으로 의를 구한 이스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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