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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로이드존스 로마서나눔 10-34 롬10:18-21 하나님의 선택과 인간의 책임
마틴로이드존스 로마서나눔 10-34 롬10:18-21 하나님의 선택과 인간의 책임
  • 정원우
  • 승인 2021.11.29 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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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니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19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20 이사야는 매우 담대하여 내가 나를 찾지 아니한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묻지 아니한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말하였고 21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

 

 

. 들어가는 말

우리는 유대인들이 불신앙의 긍정적인 증거들을 이유들을 살피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구원의 방식에 대한 삼중적 오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두 번째는 참된 구원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첫 번째 오류에서 따라오는 것입니다.

. 본론

첫째, 참된 구원의 길을 믿지 못하는 유대인들

인용문에서 보듯이 구원의 방식은 이와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택의 결과이며, 이에 대한 삼중적 증거들이 인용문에서 제공됩니다. 첫 번째, ‘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19 내가 ... 너희를 시기하게 하며그리고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19 ...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 20 내가 나를 찾지 아니한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묻지 아니한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 21 ...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강조점이 하나님의 행동과 활동에 있습니다. 두번째, 구원이 우리의 어떤 활동의 결과가 아님을 분명하게 제시합니다. “20 내가 나를 찾지 아니한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그들은 그를 찾지 않았습니다. “내게 묻지 아니한 자들에게 나타났노라오래전 이사야를 통해서 구원은 찾고 구한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예언을 통해서 분명히 하셨습니다. “내게 묻지 아니한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 21 ...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강조점이 하나님의 행동과 활동에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그것이 교회의 입장이라고 말합니다. 절대로 찾지 않고 구하지 않은 사람들이 발견되고 묻지 않은 사람들이 해답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20 내가 ... 나타났노라이것은 내가 나 자신을 나타내었노라나타내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행동임을 나타냅니다. ‘내가’, 찾는 자가 아니라, 구하는 자가 아니라, 바로 내가’ ”내가 나타내었다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사도가 말해온 10장뿐 아니라 9장을 함께 요약합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9.10,11장은 자체로 하나의 대목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교회에 들어오는데 유대인들은 왜 다 교회밖에 있느냐는 중요한 문제를 다룹니다. 9장에서 구원이 은혜의 결과임을 상세하게 다루었습니다. 9: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여기서도 같은 요점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설명하며 10장을 완벽하게 결론짓고 있습니다. 요점은 동일합니다. 구원은 어느 누구라 할지라도 항상 하나님의 행동과 선택의 결과입니다. 우리의 공로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이 인용문에서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유대인들은 당연히 유리한 입장에 있었고 이방인들은 소망이 조금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이 역전되었습니다. 이방인들은 교회에 들어오고 유대인들은 여전히 밖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린 것이며 사람에게 있지 않은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권한에 달린 것입니다. 8장과 그 앞장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10:11-12에서는 보다 상세하게 지적합니다. “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여기서 누구든지에 누가 들어갈까요? 거기에는 민족이나 혈통이나 지식이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신약 전체에서 이점을 가르칩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동일한 요점을 가르치셨습니다. 11: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하나님께서는 지혜로운 자가 아니라 어린아이들, 미련한 족속들, 백성이 아닌 자들에게 계시하십니다. 구약성경 전체가 이점을 계시합니다. 9-10장 전체가 인용들을 통해서 이점을 보여줍니다. 22장에 주님께서 말씀하신 혼인잔치 비유에서 임금은 처음 초청받은 사람들을 멸하고 다른 사람들로 자리를 채웠습니다. 그리고 같은 요점을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 유대인들에게 복음이 제시되었지만 그들이 거절했고, 다음에 다른 사람을 강권하여 오라고 합니다. 22: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복음을 통한 부르심은 많지만 순종하는 사람만이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효과적인 부르심을 받는 사람들은 은혜의 선택의 결과입니다. 복음서와 서신서들이 이점을 명백히 증거합니다. 하나님이 유대인들의 모든 계산, 모든 기대를 다 엎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이 유대인들에게 거침돌이 되는 이유입니다. 고전1: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영광은 전적으로, 오직 주님께만 돌려져야 합니다.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 그것이 정확히 롬10장 마지막에서 듣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성경 전체의 교리입니다. 그들이 왜 여전히 걸림돌이 되는지, 하나님 나라 밖에 있는지, 복음에 불순종 하는지 이유가 됩니다. 그들은 구원이 은혜의 선택이라는 참길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방인이나, 무지한 자나 누구라도 구원받아 하나님 나라에 있다고 놀라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모두 하나님께 속한 자들입니다. 1:16 ”...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 이것이 유대인들이 구원의 참된 방식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 교회 밖에 있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둘째, 유대인들의 상태

그리고 세 번째 이유는 그들의 마음상태입니다. 이점은 마지막절에 지적된 것입니다. “21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여기서 문제가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행하시고 나타내신 구원을 이스라엘이 믿지 않았고 순종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의 마음상태때문입니다. 불순종과 거스름입니다. ‘불순종은 순종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단지 순종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전혀 설득당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목이 뻣뻣한자들입니다. 그들은 설득당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완강한 자세를 취했습니다. 뿐만아니라 진리에 의해 영향받지도 설득당하지도 않으려했습니다. 이 문제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을 다룰 때 거의 필연적으로 생각해야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제가 하는 이 구분을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영혼에 대해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하지만 들을 준비가 된 사람들을 만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조금도 설득당하지 않을 인상을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분명하게 제시해도 아무리 친절하게 제시해도 똑같습니다. 결코 설득당하지 않고 목이 뼛뼛합니다. 여러분도 사복음서의 바리새인들에게서 그런 인상을 받지 않습니까? 그들은 선입견을 가지고 미리 판단합니다. 결코 듣지 않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유대인들의 문제였습니다. 구약성경 전체에서 그 문제를 만납니다. 그들은 무슨말을 듣든지 설득당하지 않고 믿지 않겠다고 고집합니다. 그들의 그런 자세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단어 거스름입니다. 이것은 대적하여 말하는 것, 충돌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자신이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정직하게 말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선입견을 가지고 결코 설득당하지 않으려 했고 나아가서 대적하여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 복음을 전할때, 소망이 있는 사람은 잘 듣고, 질문도 잘합니다. 그러나 듣지 않으려고 말을 막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절대로 찬성하지 않습니다. 사도는 이런 사람들에게 소망이 없다고 지적합니다. 그들의 심령 전체가 그릇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그런 가르침을 원하지 않습니다. 사도가 인용하는 사65:2의 말씀이 바로 이것을 지적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에도 이것이 문제였습니다. 주님의 고발을 들어보십시오. 3: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왜 사람들이 믿지 않습니까?

복종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들은 그것이 지성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그들의 마음이었습니다. 궁극적으로 불신앙은 지성과 상관이 없습니다. 만약 지성의 문제라면 지적인 그리스도인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위대한 지성인이었던 불신자가 신자가 되었을 때, 그는 여전히 같은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 지성을 죽이지 않으면서 신자가 되었고 신자의 논리로 말합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이어령입니다. 또 우리는 지적 능력이나 학력에서 비슷한 두 사람이 어떤 사람은 믿지만 어떤 사람은 불신자로 머무는 것을 봅니다. 믿음은 지성과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3:19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우리 주님도 이점을 말씀하셨습니다. 3: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5: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들은 원하지도 않습니다. 오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은 순간부터 주님의 말씀을 누르려고 작정했습니다. 문제는 그들의 의지 속에 있습니다. 의지는 마음의 지배를 받습니다. 5:44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문제는 지성이 아니라 그들의 교만한 마음입니다. 주님께서 그들의 무능함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들은 주님을 미워하였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문제는 항상 마음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씨뿌리는 비유를 보십시오. 13:14 “...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14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왜입니까?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해졌기 때문입니다. 위클리프의 설명처럼 기름져서 제기능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도가 오늘 본문 10장 마지막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이러한 요점들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더 분명한 예를 하나 더 봅시다. 23: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그들은 전적으로 소망이 없음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들은 남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짓을 지금도 행하고 있습니다. 순교자 스데반도 같은 고발을 했습니다. 7: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52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53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히브리서도 똑같은 점을 말합니다. 3:12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조상들의 마음의 완악불신앙을 지적합니다. 그것을 3:15-19, 4:1-12에서 그렇게 되지 말 것을 경고합니다. 4: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셋째,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함.

이제 최종적인 증거가 있습니다. 이것은 현대 불신자들에게도 해당된다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최종적인 증거는 무엇입니까? “21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그 말이 무슨 뜻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거절하였으니 절대로 핑계 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불가능한 요구를하셔서 지키지 못하겠다고 거절한 것을 정죄하신다면 책임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제시된 것은 은혜의 복음입니다. 만약 우리가 십계명을 완전하게 지키고 모든 도덕법 전체를 지켜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한다면 모두 저주 받고 멸망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원한다는 것입니다. 행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것이 복음이라고 말해주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를 거부합니다. 구원이 전적인 선물이라는 사실을 거부합니다. “아니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묻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에게 손을 내민 어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간청하고 계십니다.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우리를 품에 안으시길 원하십니다. 이점은 성경전체에서 발견됩니다. 한 두가지 제안을 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거절하는 식이 아니라 하나님은 종일 그 일을 하고 계십니다.

구약성경에 이점이 반복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주시고 우상을 섬기면 복을 거두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실제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고난 가운데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회복시키시고 다시 복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잠시 후 다시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종일토록호소하셨습니다. 그것이 구약성경 전체 이야기입니다. 왜 하나님은 처음부터 그들을 지워버리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은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이요,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서 그 점을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진술하셨습니다. 7:13 “...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하였느니라하루 종일 부르셨습니다. 5:4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그만큼 많이 하셨습니다. 13:6-9 무화과 비유처럼 유대인들은 수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지치기 당했습니다. 21:33-45 악한 농부 비유도 같은 점을 가르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보다 더한 최종적인 진술이 있습니다. 13: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5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핑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부어주시고 호소하시며 모든 일을 다 하셨습니다. 그의 아들까지 보내셨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본문에서 보듯이 사도는 유대인들의 논지를 다시 한번 요약하며 최종적인 말로 마무리합니다. 사도가 롬9장과 10장에서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하나님의 선택과 인간의 책임입니다. 구원은 여러분의 공로에 속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의 결과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지옥에 간다면 당신 자신 외에 누구도 비난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설득당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목을 곧게 했고 아무도 설득당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복음으로 절대로 나아오지 않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선택하지 않으시면 단 한 사람도 구원받을 사람이 없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 그럴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본성적으로 강퍅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악하고 거슬러 말하고 불순종하는 백성이라고 주저하였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우리의 의지를 꺾어 설득시키시는 데는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 능력이 아니면 누구도 복음을 믿도록 설득할 수 없습니다. 복음을 거절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정죄받는 것입니다. 구원받는 사람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도바울처럼 고전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고백할 것입니다. 딤전1: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지금은 구원받았습니다. 왜 입니까? 오직 한가지 대답만 있을 뿐입니다. 나를 항상 살피시고 나를 부르시고 내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믿음의 선물을 주셔서 믿게하신 것입니다. 9장과 10장 전체가 이 두가지 요점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10장 마지막 세 인용구절에 이 두가지 요점이 요약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은 찾지 않은자, 묻지 않은자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입니다.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 결론

하나님은 지금도 여러분을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는 어린 아이와 같이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은혜를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6:37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나님의 선택과 인간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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