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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로이드존스 로마서나눔 10-25 롬10:14-17 설교자, 보내심 받은 전령
마틴로이드존스 로마서나눔 10-25 롬10:14-17 설교자, 보내심 받은 전령
  • 정원우
  • 승인 2021.11.19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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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16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 들어가는 말

우리는 설교(전도, 선포)’라는 단어에 담긴 두 의미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는 선포라는 의미로 특별한 전파자로 소명을 받은 사람을 말하며 여기에 사도, 선지자, 장로, 복음 전도자가 있었습니다. 장로는 가르치는 장로와 다스리는 장로로 구별되었고 설교는 가르치는 장로가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설교(선포)할 소명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성도는 복음의 좋은 소식을 전하고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소망을 전할 의무를 가졌습니다. 첫 번째 의미는, ’전하다‘, 두 번째 의미는 선포하다 두 의미를 배웠습니다. 오늘은 두 의미에 대한 또 다른 요점을 배우겠습니다.

. 본론

첫째, 부르심을 받은 설교자

4:18-19절은 주님께서 나사렛에서 설교하신 내용입니다. 주님께서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설교하시고, 포로된 자들에게 설교하시고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설교하시는 분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이 말씀에 두 어휘가 쓰입니다.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8:4에도 같은 어휘가 사용되었습니다.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그 일을 한 것입니다. 누가는 전도라는 방식으로 좋은 소식이 전해진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4:19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예수님은 여기서 사61장의 대목을 읽고 계신 것입니다. 구원의 좋은 소식을 전할 때는 첫 번째 어휘 전하다를 사용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는 곳에서는 선포하다는 말에는 두 번째 어휘를 사용합니다. 본문 ”14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여기서도 전파하다라는 두 번째 어휘가 사용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할 일입니다. 그러나 전파(설교)’는 것은 특별한 사명을 받은 사람들에게만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설교자들(전도자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전령자들로 특별하게 지명된 사람들입니다. 세례요한에 대해서도 같은 말이 쓰였습니다. 3:2 ”...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다음에 3 ...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요한에 대한 예언이 먼저 있었습니다. 11:10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네 앞에 준비하리라”, 10: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세례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할 특별한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 9 나를 보내사주님도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설교자로 보내심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10: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사도들도 선포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고 파송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선 것입니다. 스스로 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부터 자칭 사도라고 부르는 자들이 계속 있어왔습니다. 오늘날에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이점을 분명히 합니다. 고후3:1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오직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만 사도입니다.

사도적 권위의 문제는 사도바울에게도 큰 관심거리였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예수님 생전에 곁에서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교회의 대적자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전도자가 되었지만, 처음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1: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6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주님께서 바울을 직접 부르셨습니다. 26:15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16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그래서 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부활하신 주님께서 자신을 보내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들도 모두 설교자들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신약성경에서 만나는 모든 설교자들이 다 주님께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둘째, 소명이 일어나는 방법

설교자가 어떻게 보냄 받게 됩니까? 대답에는 두 가지 요소가 포함됩니다. 첫 번째는 개인적인 요소입니다. 주님께서 어떤 사람을 부르시면 그는 자신의 내적 소명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 방식은 다양하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개인적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교회에서의 부름입니다. 신약성경에는 두 번째 부름의 증거들이 많습니다. 초대교회 초기에는 어떤 조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조직의 필요를 느끼고 처음에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사람 일곱 사람이 선택되었습니다. 그리고 장로들도 선출되었습니다. 13에는 특별한 직분이 등장합니다.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 이렇게 선출된 사람들이 교회의 장로들이었습니다. 성령께서 이들을 통해서 바나바와 사울을 복음을 전파하는 설교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선교여행도 그렇게 시작된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야겠다고 결심한 것이 아니라 교회를 통해서 부름받고 보냄받은 것입니다.

다음은 1차 전도 여행을 마친 다음에 사도들이 장로를 세우는 장면입니다. 14: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 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했습니다. 장로들도 안디옥교회로부터 보냄받은 두 명의 사자들에 의해 세움 받은 것입니다. 딤전1:18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여기서 ‘~을 따라라는 말도 디모데가 복음전도자의 사역을 위해 파송될 때, 들었던 메시지를 말합니다. 딤전4:14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디모데도 안수를 받고 설교자로 파송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딤후1: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11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디도 또한 디모데처럼 복음전도자였습니다. 4:11에서 보듯이 복음전도자는 사도와 선지자 다음에 해당하는 직책이었습니다. 사도들을 대리하는 위치입니다. 따라서 복음전도자는 사도를 대신해서 설교하는 권위와 사명을 부여받은 사람들이며 교회를 세우고 교회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할 권위를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초대교회 이후 사도의 직책과 선지자의 직책이 종료되었듯이 복음전도자의 직책도 종료되었습니다. 오늘날 복음전도자는 설교할 수 있는 은사를 받은 목회적 선생입니다. 모든 설교자는 교회에 의해 보냄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교회 모든 지체가 특별한 사역을 위해 구별된 전령자들은 아닙니다. 하지만 모든 지체들은 소망에 관한 이유를 제시할 수 있었고 예루살렘 교회의 지체들이 멀리 흩어져서 그 일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신약에서 설교는(선포) 사도, 선지자, 복음전도자, 그리고 장로에게만 제한된 직무였습니다. 집사들은 물질적인 것을 돌보는 일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장로가 다 설교한 것이 아니라 설교하고 가르치는 장로와 다스리는 장로가 따로 세워졌습니다. 교회의 지체들은 말씀을 가르치는 장로를 배나 존경하도록 부탁을 받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설교자가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가정교회 개념은 보냄 받은이라고 규정한 성경 말씀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원리는 설교자들은 교회에 의해 세움을 받고 보냄받았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통상적으로는 개인이 자신의 소명을 인식하고 교회도 그 소명을 확인하는 순서로 진행 됩니다. 6장에 교회는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을 선출하여 (목사 장로에 의해)안수하고 세운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개인적인 소명을 받고 교회가 확인하고 세우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위해 주어진 것이 디모데 전후서와 디도서 같은 목회 서신인데, 여기에는 교회는 장로가 되어 설교하고 가르칠 사람을 선택하기 위해서 그 자격을 살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장로는 어떤 성품이어야 하고, 다투지 않아야 하고, 술에 인박히지 말아야 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거기에 더하여 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적으로 훌륭한 인물이며, 위대한 사상가라고 할지라도 설교하고 가르칠 수 없다면 장로가 될 수 없습니다. 사도의 말대로 교회는 딤전3:15 진리의 기둥과 터입니다. 설교자의 말은 진리의 표지판입니다. 교회가 설교자를 세워서 교회를 대신해서 진리를 전하는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이러한 부름이 주로 교회를 통해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개인적인 소명을 느끼지 못했던 사람들 중에 유명한 설교자가 된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가 먼저 그들에게 소명이 있음을 보았고 교회의 장로들이 그를 만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모든 면에서 이 사역에 눈에 띄게 적합해 보인다고 느끼며 당신히 설교사역을 감당해 주시기를 원한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그를 설득하는데 큰 어려움이 있기도 했지만 결국 그가 스스로도 소명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주도적인 출발은 교회가 한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경우를 보면 그는 개별적인 소명을 받았지만 처음에 교회가 의심했다가 나중에 설득당했습니다. 교회는 주저했지만 그는 자기 소명에 확신이 있었습니다. 교회가 진리에서 어긋나서 참된 설교자를 몰라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200년 전 하웰 해리스를 비롯하여 우리는 교회가 설교하지 못하도록 핍박한 경우들을 많이 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예외적인 것입니다. 일반적인 것은 사람이 먼저 자신의 소명을 느끼고 교회가 불러서 그 소명을 확인하고 세움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네 번째 요점으로 이어집니다.

네 번째, 거짓 선지자를 세우는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23:21 이 선지자들은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달음질하며 내가 그들에게 이르지 아니하였어도 예언하였은즉바로 세우지 않으면 거짓 선지자들이 백성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도 산상설교에서 이점을 지적하셨습니다. 7:22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그들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설교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주님께 인정받을 일만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하셨습니다. 참으로 비극적인 위험입니다.

다섯 번째, 설교자의 마음 자세입니다. 우리는 바울같은 위대한 설교자들이 항상 고전2:3처럼 두려움과 떨림으로 설교를 행하는 것을 봅니다. 고후2:16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수 많은 설교자들이 이런 두려움을 고백했습니다. 교회가 설교자들에게 설교를 요청했지만, 그들은 나는 적합하지 않아요. 자격이 없습니다. 제가 어떻게 감히 설교합니까?” 그들은 자신들의 무가치함을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겸손보다 큰 소명의 확인은 없는 것입니다. 13장에서 안디옥교회가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할 때, 자신은 자신의 모든 재능과 경험을 다 내려놓고 교회의 종이 되었습니다. 신약의 모든 사도들이 자신을 교회에 복종시켰습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소명을 깨닫고 의사직을 버리고 교회에 속하게 되었을때, 교회가 정한 규율과 그 부름에 자신을 복종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은 그럴 자신이 없었다고 고백합니다. 담임이 된 지 9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목사안수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세례를 베풀거나 성찬을 집례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는데 성도들도 그 점을 힘들어 했지만 모두가 순종함으로 그것이 성화에 도움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여섯 번째, 절대적으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 좋은 소식을 선포하는 자가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바른 교리를 설교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거짓 교리를 설교하고 사람들을 방황하게 하는 것은 너무나 쉽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설교할 내용을 이해하고 있는지, 설교할 능력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또한 훈련의 중요성도 살펴야 합니다. 바른 진리로 출발했다가 잘못 되어가면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파송하여 맡은 직분을 감당하여 바르게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래서 보냄을 받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스스로를 설교자로 세우는 것은 비성경적입니다. 성경에 그런 예가 없습니다. 그들은 거짓 선지자들이요 거짓 선생들입니다.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성경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혼돈의 시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설교를 들으면서 차라리 자신이 설교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설교는 오직 보냄을 받은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후2:16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이런 겸손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 확신으로 강단에 뛰어들어서는 안됩니다.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교회가 바로 서는 것은 인간적인 능력이 아니라 겸손과 하나님의 부르심과 설교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 결론

“14 ...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보내고 싶으시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에도 말씀하심으로 확인시켜 주실 것입니다.

설교자, 보내심 받은 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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