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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로이드존스 로마서나눔 10-24 롬10:14-17 설교의 중요성
마틴로이드존스 로마서나눔 10-24 롬10:14-17 설교의 중요성
  • 정원우
  • 승인 2021.11.17 12: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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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16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 들어가는 말

우리는 본문에서 일반적인 전도현장이 아니라 미전도종족의 측면과 영아들의 경우를 예로 살폈습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결정이라면 전도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로마서 9장을 읽고 자주 제기되는 질문입니다. 이 난제를 살펴봅시다. 먼저 본문에서 설교는 전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 본론

첫째, 설교(전도)와 구원의 방편

설교(전도)란 하나님이 당신의 목적을 성취해 가시는 여러 가지 방식 중에 하나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먹을것이 땅에서 바로 튀어나오게 할 수 있으시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농부가 땅을 갈고 씨를 뿌리고 가꾸고 자라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복음 전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수단에 매이지 않으십니다. 영아도, 이교도들이나 다른 경우도 같습니다. 하나님은 즉각적으로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지 않으시고 설교라는 통상적인 방법에 따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생을 자연법칙에 따르게 하셨습니다. 이적은 예외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이적은 자연법칙을 어긴 것이 아니라 자연법칙과 상관없이 별도의 간섭하심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설교를 통해서 사람들이 복음을 알리고 그들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반적인 방식이 설교(전도)라는 것은 성경을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가능성도 있습니다. 누군가 성경을 읽을 때 어떤 구절을 통해서 갑자기 역사하십니다.

중국의 윈형제는 예수님을 들어 본적도 없고 주변에 예수를 아는 사람도 없을 때, 성경이 뭔지도 모를 때, 그는 갑자기 성경을 찾았고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하게 된 손바닥만한 신약성경을 잃어버릴까봐 아예 다 외워버렸고 지하교회에 초청을 받아서 성경을 줄줄 외웠더니 그 자체로 부흥회가 되었다고 합니다.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서 즉각적으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구원받을지 하나님께서 결정하셨다면 전도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묻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결과뿐 아니라 방법들도 주장하십니다.”라고 답합니다. 그리고 구원의 방법은 설교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고전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오늘날은 옛날처럼 설교가 인기있는 시대가 아닙니다. 예배시간에 많은 교회들이 전도행사를 하면 설교가 아니라 여러가지 즐길거리를 제공합니다. 또 성경을 읽는 것도 그냥 조용히 앉아서 여가를 즐기듯 읽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이 말은 단순히 성경을 읽는 것보다 설교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설교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입니다. 고전1:21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도들과 선지자들과 복음전도자들과 목회자들과 교사들을 부르셔서 설교하게 하신 것입니다. 왜 제가 읽는 것보다 설교가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까? 왜 우리는 주일에 성경이나 신앙서적을 읽지 않고 함께 모여 설교를 듣습니까? 그리스도인은 성령을 모셨고 그래서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혼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성경적 결론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하신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24: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이 말씀을 듣고 눈이 열렸습니다. ”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유대인들은 안식일마다 성경을 읽었지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요일2:20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지금 사도가 설교가 필요 없다는 점을 역설하는 것일까요? 예루살렘에서 고국으로 돌아가던 에디오피아 내시의 경우도 보십시오. 8: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31 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그는 진리를 대면하고 있었지만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말씀을 강해할 선생이 필요했습니다. 빌립이 그 일을 했습니다. ”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하나님은 설교를 사용하십니다. 필립스 브록스의 주장처럼 인격을 통해서 전해지는 것이 설교라는 것입니다. 진리는 항상 인격을 통해서 전해져야 합니다. 물론 진리는 설교자가 어떤 방식을 사용하던 하나님께서는 다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설교자 자신이 인위적으로 여러 가지 인간적인 방식을 사용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미국의 구도자 예배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한참 유행하다가 망해버린 방식을 지금 우리나라가 한참 따라하고 있습니다.

둘째, 설교를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은사를 주셔서 그를 통해서 크게 역사하시곤 하셨습니다. 조지 휫필드가 좋은 예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설교자로 세우셨고 그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회심하게 하셨습니다. 집에서 성경이나 신앙서적을 읽을때도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 방송을 통해서 회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나가지 않고 이런 인간적인 수단에 의지하려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딤전3:15에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했습니다. 교회가 함께 모일 때 설교가 보편적이고 가장 능력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자주 교회에 출석해서 예배드리는 것이 중요함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교회당에 예배드리러 오면 무엇을 가장 먼저 느낄까요? 규모를 중요하게 여길 것입니다. 사람이 너무 없으면 실망하고 돌아가고, 사람이 많이 있으면 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는 이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설교가 주는 진리의 느낌이 있습니다. 설교자의 설교를 듣는 성도들의 전반적인 반응이 그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적인 요소에 이끌리게 만드는 마귀의 꾐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교회에는 언제나 바른 진리가 능력있게 선포되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좋은 책을 추천합니다. 여러분도 책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그러나 독서가 마약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책은 읽다가 읽기 싫으면 쉽게 다른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회중은 쉽게 빠져나가지 못합니다. 항상 회중 속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진리의 능력이 설교자의 인격을 통해서 전달되는 것입니다. 설교는 성령의 능력이 임하고 회심하는 방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책을 읽는 것과 적용하는 것은 별개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적용이 필요합니다. 설교자의 설교를 통해서 적용되어야 합니다. 설교문을 읽는 것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설교를 통해서 회중의 문제점이 날카롭게 지적되고 도전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이 성경이며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나라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사람들이 갈수록 설교를 듣지 않습니다. 성경을 소유하고 있지만, 그저 재미있는 판타지 소설, 교양서적쯤으로 여깁니다. 내가 원하는 것만 읽고 그렇지 않으면 지나쳐버립니다. 성경은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으로 깨닫도록 제시되어야 합니다. 이전의 어느 시대보다 더 많은 성경책, 신앙서적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교회는 더 냉랭해집니다. 음악이나 인간적인 수단으로 인위적인 분위기 연출에만 힘쓰고 있습니다. 기독교 방송이 선교의 중추를 감당하며 여러 가지 인간적인 수단이 교회를 살린다고 홍보하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부흥의 역사는 설교를 통해서 일어났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셋째, 설교를 통해서만 일어나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을 쉽게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설교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칭의성화같은 용어는 이해할 수 없으니 현대인이 이해할 수 있는 용어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쉬운 번역본들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화목제물같은 용어를 빼버렸습니다. 우리나라 번역 성경에는 중요한 진리를 빼먹지 않았는데 영어권 번역의 일입니다. 그들은 화목제물을 빼버리고 단순히 구원이라고 써넣습니다. ‘구속이라는 말을 빼고, 해방 혹은 자유라는 보편적인 용어로 채워넣습니다. 사람들이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쉬운 용어를 사용하면 이해하게 될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심오한 내용들을 설교로 이해시킬 사람들이 설교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설교가 중요한 것입니다. 진리를 빼버린 용어로 설교자가 읽어주고 설교하는 것이 낫겠습니까? 비록 어렵지만 그대로 읽고 그것을 쉽게 설명하는 것이 났겠습니까? 당연히 이전 그대로 읽고 설교로 이해를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설교를 듣지 않는 차선책으로 여러 가지 보조자료를 읽게 되는 것은 재앙에 가까운 것입니다.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하나님은 지금도 설교를 통해서 그 일을 해오셨고 앞으로도 행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설교자의 소명입니다. 설교에 대한 두 용어가 8:4-5절에 있습니다. “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4절과 5절이 서로 다른 단어입니다. 4절에는 복음을 전하다라는 단어에서 나온 좋은 소식을 알리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반면에 5절은 선포하다복음의 전령자가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4절의 강조점은 좋은 소식이라는 내용에 있고 5절의 강조점은 내용보다 공공장소에서 선포하거나 알리는 것에 강조점을 둔 것입니다. 둘 다 설교(전도)‘로 번역될 수 있지만 의미에 차이가 있습니다. 8:12에서도 세례를 맏으면서 좋은 소식을 믿었다는 내용에 강조점을 둡니다. 그러나 8:5절에는 하나님께서 빌립을 설교자로 세우신 점을 강조하기 때문에 선포하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결론은 이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다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이 다 선포자로 부름 받은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구원의 길을 알아야 하며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벧전3: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으로 여러 곳에 흩어지게 되었을 때,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분에 대한 좋은 소식이라는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길을 말해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 결론

그렇습니다. 모든 전도자가 다 같지 않습니다. 빌립이나 사도들같이 공식적인 선포자에 대해서는 선포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설교자가 아닌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8:5절의 의미가 아니라 4절에 말하는 전도자로서 의무를 자신에게 적용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마땅한 복음 전도의 의무를 깨닫고 그 의무를 충실하게 행하시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 기도드립니다.

 

설교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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