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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수목사칼럼] 만남의 축복(祝福)
[이인수목사칼럼] 만남의 축복(祝福)
  • 교회협동신문
  • 승인 2021.11.15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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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어떤 사람을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서 그의 삶의 방향이 좌우되고 판도가 달라진다.

 

이인수목사 

1993-1997년까지 주한 미국 대사로 와있던 학자요, 정치가이며, 목사인 ‘제임스 레이니(James T. Laney)’는 주한 대사의 임무를 마치고 본국으로 귀국해 ‘메모리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그는 건강을 위하여 매일같이 걸어서 출근하는데, 어느 날 학교로 출근하다가 쓸쓸하게 홀로 나와 앉아있는 나이 많은 노인 한 분을 만났다. 그는 노인에게 다가가 다정하게 인사를 나누고 말벗이 되었다. 그리고 그 후 시간이 날 때마다 그 노인을 찾아가 말벗도 하고, 노인의 집 마당에 잔디를 깎아 주거나 커피를 마시면서 2년여 동안 교제를 나누었다.

그런데 며칠동안 출근길에서 그 노인을 만나지 못한 그는 궁금해서 노인의 집 방문을 두드렸다. 그러고는 노인이 어제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고 곧바로 장례식장을 찾아가 조문을 하면서 돌아가신 노인이 바로 코카콜라 회사의 회장을 지낸 분임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그 때, 한 사람이 다가와 회장님께서 당신에게 남긴 유서가 있다면서 봉투를 전해준다.

유서 내용을 본 그는 너무도 놀랐다. 유서에는 ‘당신은 2년여 동안 내 집 앞을 지나다니면서 나의 벗이 되어준 친구였소. 우리집 뜰의 잔디도 깎아주고 커피도 마셨던 ‘레이니’에게 고마워요. 나는 당신에게 25억 달러와 주식 5%를 유산으로 남겨 드립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너무나 뜻밖의 유서를 받은 레이니 교수는 3가지 점에서 놀랐다. 첫째는, 전세계적인 부자가 그렇게 검소하게 시골에서 살았다는 사실이고, 둘째는, 자신이 코카콜라 회장직에 있었다는 신분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며, 셋째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사람, 지나가는 사람에게 이렇게 큰 돈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레이니 교수는 받은 유산을 메모리 대학의 발전 기금으로 내놓았다.

엄청난 돈을 학교의 제자들에게 내놓은 그의 사랑에 감동한 학교는 그를 총장으로 모시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그는 총장이 되었고, 몇 년 전까지도 명예 총장으로 있으면서 우리나라의 남북문제 해결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레이니 교수는 대가를 전혀 기대하지 않았지만 부와 명예가 그를 따랐다. 이처럼 사람을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서 삶의 방향이 좌우되고 판도가 달라진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가정에서 가족과의 만남부터 학교 생활을 통해 스승과 학우들과의 만남, 사회에서의 직장 상사와 동료들과의 만남, 그리고 이웃과의 만남과 배우자와의 만남 등 만남의 연속을 겪는다. 성경에 다윗도,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시33:1)’라고 노래했다. 논어(論語)에서는, 친구에도 여러 분류의 친구가 있다고 했다. 즉, 익자심우(益者三友)와 손자삼우(損者三友)가 있다. 익자삼우란 교제하여 유익한 친구를 말함이다. 즉, 정직한 친구, 거짓과 허위가 없는 친구, 전문지식이 많은 친구 등을 말한다. 손자삼우란 교제하면 해가 되는 친구를 말하는데 즉, 남에게 아부하며, 겉은 유하나 성의가 없고, 말만 많은 친구를 말함이다. 그리고 또 논어(論語)에는 익자삼락(益者三樂)과 손자삼락(損者三樂)이라는 말도 있다. 익자삼락이란 3가지 즐거움을 말함이다. 1. 유익한 것 2. 예의가 바른 것 3. 음악을 즐기는 것. 즉, 남을 착하게 말하는 것과 현명한 친구가 많은 것이다. 손자삼락이란 3가지 해로운 것이니, 1. 거만한 것 2. 놀고 먹는 것 3. 주색을 즐기는 것 등이다. 

속담에 ‘그 사람을 알려면 그와 사귀는 주변 친구를 보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들은 자기와 같고 자기 취미에 맞는 사람들끼리 끼리끼리 어울려 사귀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는 섭리의 역사 속 피할 수 없는 정해진 운명 안에서 행복과 불행이 정해지는 경우도 있고, 그 운명을 극복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도 한다. 잘 만나면 복이지만 잘못 만나면 평생 불행이다. 

다음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것도 그렇다. 삼사일언(三思一言)이라 했다. 한마디 말할 때에는 3번쯤은 생각해서 하라는 것이다. 말의 힘은 화평케 하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지만, 죽이기도 한다. 옛 당(唐)나라 말기에 태어나 진, 한나라에서 벼슬을 했던 풍도라는 사람이 설시(舌詩)를 남겼다. ‘입은 재앙의 문이요(口是禍之門), 혀는 곧 몸을 자르는 칼이다(舌是斬身刀).’ 입은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어디를 가든지 몸이 편하니, 말조심하라는 권면이다. 성경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려서 혀 쓰기를 좋아하는 자는 그의 열매를 먹으리라(잠18:21)’는 말씀이 있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니, 그 입술을 제하는 지혜가 있으리라 했다. 그러므로 말할 때에 심사숙고해서 할 경우, 합당한 말이 될 것이다.

작가미상이지만, ‘한마디’라는 시가 생각난다. 부주의한 말 한마디가 싸움의 불씨가 되고 잔인한 말 한마디가 삶을 파괴한다. 쓰디쓴 말 한마디가 증오의 씨를 뿌리고, 무례한 말 한마디가 사랑의 불을 끈다. 은혜로운 말 한마디가 길을 평탄케 하고, 즐거운 말 한마디가 하루를 빛나게 하며, 때에 맞는 말 한마디가 축복을 준다. 우리 주변에 보면 그가 말한대로 그의 인생이 만들어져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절망적인 말을 하는 사람이 소망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별로 없고, 더러운 말을 입에 담는 사람이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별로 없고, 말 버릇이 거친 사람이 부드러운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별로 없다.

누에는 자기 입에서 나오는 실을 가지고 자기 집을 만들어 자기가 그 속에서 산다. 어쩌면 우리 인간도 그렇다. 우리가 말한 것은 결국 우리집을 짓는다. 내 입의 말로 내 인생이 결정될 수 있다면, 한마디 말이라도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 덕이 있는 말이 아니면 아예 입을 다물어 버리는 것이 좋을 듯 싶다(우리 속담에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라는 말이 있다.). 성경에 ‘말할 때에는 은혜롭게, 소금으로 음식 맛을 냄과 같이 하라(골6:4-6)’ 했다. 

톨스토이가 길을 가다가 나병환자를 만났다. 남루한 옷차림의 나환자가 길을 막으면서 손을 내밀어 도와 달라고 한다. 그런데 톨스토이에게는 돈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면서 ‘형제여, 미안하오. 내가 가진 돈이 하나도 없소.’라고 했다. 그러자 나환자는 ‘돈을 못 받았지만 내 마음은 가장 행복합니다. 당신은 나를 형제라고 불렀습니다. 나는 매우 행복합니다.’라고 했다. 이 사건 후에 톨스토이의 삶에 큰 변화가 생겼다. ‘행복이 무엇인가? 행복은 함께 하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며 그는 나머지 삶을 가난한 사람과 함께 살면서 ‘부활’이라는 위대한 작품을 쓰게 된다.

끝으로, 이 세상에서 질병만 전염되는 것이 아니라 기분이나 감정도 전염된다는 것을 전하고 싶다. 만나면 기쁘고, 용기를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만나면 만날 때마다 불안하게 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만남이란 소중하다. 주변을 둘러보면 좋은 사람도 참 많다. 가진 것이 없어도 남에게 베풀 줄 아는 사람, 항상 미소를 잃지 않는 사람이 그들이다. 반면, 만날 때마다 늘 실망을 주는 사람도 있다. 보기만 해도 나를 부담스럽게 하는 사람, 차라리 연락 없이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이다. 

‘그러면 나는 어떤 사람일까?’하고 자신 돌아보게 된다. 내가 남에게 불편한 존재가 아니라 나를 봄으로써 기분이 좋아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많아졌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함께 있으면 잠시도 떨어져 있기가 아쉬운 사람, 보면 볼수록 진국으로 여겨지는 사람, 그래서 그 사람을 생각만해도 가슴이 뿌듯해 지거나 가슴이 촉촉하게 젖어지는 사람. 그런 사람을 알고 있다면 멀리 있어도 혹 가까이 있어도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다. 내가 그에게 그가 나에게 그런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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