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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공기업 신규 채용 반 토막, ‘정규직 강제 전환’의 역설이 시작됐다
[사설] 공기업 신규 채용 반 토막, ‘정규직 강제 전환’의 역설이 시작됐다
  • 교회협동신문
  • 승인 2021.09.10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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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이틀 뒤인 2017년 5월 12일 첫 외부 일정으로 인천공항공사를 찾아갔다. 이 자리에서 문대통령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을 발표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앞장선 대형 공기업들이 청년 신규 채용을 대폭 감축한 사실이 드러났다. 한국전력을 비롯, 정규직 전환 상위 10대 공기업의 올해 신규 채용 규모는 3960명에 그쳤다. 지난 3년간 연평균 7100명을 뽑았던 것에 비하면 44%가 줄어들었다. 매년 1700명씩 뽑던 한전의 올해 신규 채용은 1100명으로 3분의 1 이상 줄었다. 한국공항공사는 57%, 철도공사는 46%가 감소했다. 코로나와 무관한 건강보험공단이나 기업은행도 20~40%씩 채용 규모를 줄였다. ‘신(神)의 직장’으로 불리던 공기업 취업 문이 좁아지자 청년들 사이엔 “신도 들어가기 힘들어졌다”는 자조가 나올 정도가 됐다.

이런 일이 벌어진 데는 문재인 대통령의 ‘1호 지시’로 추진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의 영향이 크다.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 취임 이틀 뒤 첫 외부 일정으로 인천공항공사를 찾아 ’공공 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임기 안에 열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앞장선 정부의 압박에 공기업들은 속속 비정규직 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나섰다. 10대 공기업에서만 4만9000여 명이 정규직으로 바뀌었다. 고용부는 전환 대상 20만5000명 중 90% 이상의 정규직 전환을 달성했다며 정권 실적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공짜가 아니었다. 노동 약자를 위한다는 정책이 또 다른 약자인 청년들의 좋은 일자리를 빼앗는 역설을 빚은 것이다.

공기업들은 노동 규제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한다. 한국의 노동 관련 법은 세계에서 가장 경직적인 것으로 악명 높다. 정규직으로 채용하면 해고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번 뽑으면 일을 잘하든 못하든 무조건 정년까지 보장해야 하는 구조다. 정부 압박으로 정규직을 대거 늘린 공기업으로선 인건비가 늘어난 만큼 신입 채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 민간 기업들도 청년 신규 채용을 꺼리는 추세다. 한 조사에 따르면 매출 상위 500대 기업의 68%가 올 하반기 신규 채용 계획을 못 세웠거나 한 명도 안 뽑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기존 근로자들을 과도하게 보호하는 노동 규제가 고용 시장에 새로 진입하는 청년들을 불리하게 만들고 있다. 노동의 ‘세대 착취’와 다름없다.

문 정부는 청년 일자리를 줄인 역대 최초의 정권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문 정부 출범 때인 2017년 393만명이던 15~29세 취업자 수가 올해는 381만명으로, 12만명 줄어들었다. 인구구조 변화도 있겠지만 고용 현장에선 경직적 노동 규제 탓이 크다고 말한다. 기업들이 쉽게 고용하고 유연하게 구조 조정을 할 수 있도록 법 제도를 고치지 않으면 청년 취업난은 해결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문 정부는 노동시장 유연화 문제엔 손조차 대지 않고 있다. 노동 개혁은커녕 앞 정부가 어렵게 이뤄낸 ‘공공부문 성과급 도입’과 ‘저성과자 해고 요건 완화’라는 최소한의 조치도 백지화했다. 그래놓고 아르바이트 용돈 수준의 ‘가짜 일자리’를 만드는 데 세금 수백조 원을 쏟아붓고 있다.

출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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