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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The Column] ‘K방역’이 만든 기울어진 여론 마당
[朝鮮칼럼 The Column] ‘K방역’이 만든 기울어진 여론 마당
  • 교회협동신문
  • 승인 2021.09.10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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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집회 금지로 표현의 자유 크게 제한
대신 조작된 ‘가짜 여론’ 권력형 여론 몰이 창궐
내년 대선 공정하려면 여론 마당부터 바로잡아야
보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8일 또다시 2천명을 넘어서면서 추석연휴를 앞두고 비상이 걸렸다. 이날 서울 강남구 SRT 수서역에서 관계자가 도착 열차 객실에서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머지않아 추석이다. 우리나라에서 명절 귀향·귀성은 민심의 흐름을 가늠하는 소중한 기회로 여겨져 왔다. 대선이나 총선과 같은 전국적 선거를 앞두고는 특히 그랬다. 부모·형제를 찾고 이웃·친지를 만나는 ‘민족의 대이동’이 경향 각지에서 정치적 의견의 교류를 부추기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어깨띠를 두르고 주요 역이나 고속버스터미널에 총출동하는 것도 이 무렵이다. 고향 어귀마다 ‘현수막 정치’가 넘쳐나는 것도 이유는 같다.

하지만 올 추석은 사정이 다르다.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현행 사회적 거리 두기가 또다시 연장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작년에 비해 약간의 숨통은 틔웠다. 그러나 정부 대책에 담긴 ‘경우의 수’가 너무나 친절하게 복잡하여 보통 사람의 머리로는 가도 좋다는 건지, 가지 말라는 건지 판단하기 어렵다. 알아서 최소한만 움직이라는 게 정답일 듯한데, 결과적으로 예전 같은 대규모 명절 왕래는 올해도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긴 코로나 사태가 아니라 해도 지금은 옛날식 ‘밥상머리 여론’을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든 시대다. 싸움이 날까 봐 정치 이야기를 금기(禁忌)로 선포한 가정이 주변에 참으로 많다. 얼마 전에는 정치적 견해 차이에 격분한 아버지가 아들을 실제로 때린 일이 뉴스가 되기도 했다. 발단은 부산대의 조국씨 딸 입학 취소 결정이었다. 친지나 이웃, 동료나 친구 사이에서도 정치적 논쟁은 가급적 피하는 게 삶의 지혜가 되었다. 언제부턴가 정치 문화 전반이 죽기 살기 식으로 거칠어지고 사나워진 탓이다. 침묵이 미덕이고 자기 검열이 상책이 되어버린 현재 우리 모습은 스탈린 치하 소련의 ‘속삭이는 사회’를 떠올리게 한다.

독일의 사회철학자 하버마스에 따르면 이는 의사소통과 상호 이해를 지향하는 ‘생활 세계’의 붕괴를 의미한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은 코로나 시대의 전매특허, 사회적 거리 두기다. 기왕 위축된 생활 세계가 공공 영역까지 확대된 것이다. 마스크 착용의 의무화에다가 모임 장소의 한정, 모임 인원의 제한, 모임 시간의 통제는 집회와 표현, 결사의 자유를 크게 위협하고 있다. 뚜렷한 효과도 없고 사회적 합의도 약한 가운데 사실상 무한 연장 체제에 돌입한 ‘K방역’은 진정성에 대한 의심을 자초하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무능과 실정, 반칙과 위선으로 가득한 문재인 정부를 그나마 지탱하는 ‘인공호흡기’인지 모른다. 연이은 재난지원금 약효와 더불어 말이다.

유례없는 코로나 방역 정치 앞에서 우리는 여론 부재 혹은 여론 불임(不姙) 시대를 살고 있다. 무엇보다 식당이나 카페, 술집처럼 사람들이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일상적 시공간이 현저히 줄었다. 시위 및 집회 엄단 방침에 따라 광장이나 대로는 공론장으로서의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상태다. 집 바깥 대부분의 공간에서 동선(動線)은 시시각각 관리된다. 언필칭 비판적 지성의 상징이라는 대학 캠퍼스는 텅 빈 유령도시처럼 인적이 드물다. 사회의 공기(公器)라는 언론에도 재갈 물리기가 임박했다.

하버마스에 의하면 여론은 단순히 개인들이 드러낸 의견들의 총계가 아니다. 대신 그것은 다양한 이견(異見)이 이성적 대화와 합리적 토론을 통해 뒤섞이고 부딪치고 버무려진 소통과 이해의 결과다. 그런 만큼 결코 쉽게 존재할 수 없는 것이 여론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부르디외가 여론의 실체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가지며, 각기 주장들의 무게가 대등할 뿐 아니라, 질문 내용의 가치에 대해 모두 동의한다는 전제가 현실에서 거의 충족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생활 세계가 무너지고 공론장도 사라진 작금의 우리 현실 또한 진정한 여론 형성을 기대하기에 크게 역부족이다.

이와 같은 여론 빈사(瀕死) 상태를 대신하는 것이 바로 각종 ‘가짜 여론’의 창궐이다. 최근에는 상습적으로 여론을 왜곡하거나 조작한 여론조사 업체 몇 곳이 적발되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주로 친정부·범여권 성향이라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무대 위에서는 코로나 방역이, 그러나 막후에서는 정권 재창출을 위한 권력형 여론몰이가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이는 그동안 정부 정책에 묵묵히 동참해온 대다수 국민을 우롱하고 배신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내년 대선이 자유롭고 공정해지려면 구조적으로 기울어진 여론 마당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국민의 건강과 주권은 트레이드오프(trade off)의 관계가 아니다.

추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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