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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사의 조명Ⅶ] 해방 공간의 우익 3영수(이승만, 김구, 김규식)와 기독교 세력
[한국 근대사의 조명Ⅶ] 해방 공간의 우익 3영수(이승만, 김구, 김규식)와 기독교 세력
  • 교회협동신문
  • 승인 2021.06.01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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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영 목사
윤대영 목사
윤대영 목사

1945년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후, 우리나라를 어떤 나라로 건설할 것인가? 라는 큰 과제가 남아 있었다. 민주공화국으로 건설할 것인지 혹은 인민공화국으로 건설할 것인지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었다. 두 가지 선택지 중 민주공화국을 만들고자 하는 3개의 중요한 세력이 있었다. 첫 번째는 미국, 두 번째는 우익 지도자들(이승만, 김구, 김규식) 그리고 이들을 지지한 기독교 세력이다.
해방 직후, 국내에는 여운형이 세운 ‘건국준비위원회’를 통해 좌익이 이끌어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한 달쯤 지나 미군이 우리나라에 들어올 무렵에는 흐름이 바뀌었다. 미군정의 베닝호프 정치고문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반도는 다수의 친미 기독교 세력과 소수의 잘 조직된 공산주의 세력으로 나눌 수 있었다. 다수의 친미 기독교 세력은 이승만과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지하였고 미군정은 이들을 자신의 파트너로 삼고자 하였다.

소련이 38선을 통해 남북 간의 왕래를 막게 되므로 38선 이북으로의 이동할 수 없자, 남한에 있는 신자들만이라도 이러한 어려운 정국을 헤쳐나갈 방안을 모색하려고 11월 27일 정동제일교회에서 ‘기독교조선남부대회’를 개최하였다. 이 모임을 통해 기독교인들은 임시정부를 지지하고, 우익지도자인 이승만과 김구를 지지하며, 민주주의를 선택하겠노라 결의하였다. 아울러 소련이 마음대로 왕래를 막아버린 38선 철폐를 건의하였다. 또한 이튿날(11월 28일) 임시정부 영수 환영대회를 열어 3영수를 모시고 환영회를 하였다. 김구는 나라를 세우는 것뿐만 아니라 교회의 중요성도 함께 말하였고, 이승만은 새로 세워질 나라는 기독교 위에 새로운 나라를 건설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이들은 기독교와 더불어 나라를 세우려고 했다. 교회도 이 뜻에 호응하여 ‘독립촉성기독교중앙협의회’(11월 28일)를 세웠다.


이승만은 ‘독립촉성중앙협의회’를 통하여 우파가 주도하지만 소수의 좌파도 회의에 참석하는 이상적인 단체로 운영하고자 하였으나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에 친구 구펠로의 충고를 듣고 ‘독립촉성중앙협의회’와 김구의 단체를 합하여 ‘비상국민회의’ 창립하였다. 최고정무위원회를 설치하였고 이를 민주의원으로 개칭하여 의장 이승만, 부의장 김규식, 총리 김구를 세워 우익 3영수 형성하였다.

김구는 우리나라의 실질적 주권을 주장하였다. 김구는 한반도에 신탁통치가 진행될 것을 전해 듣자 이를 반대하는 반탁운동을 진행하였다. 반탁운동은 근본적으로 소련에 대한 반대였다. 왜냐하면 소련은 계속해서 신탁통치를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소련이 신탁통치를 주장했던 이유는 신탁통치를 통해 소련의 뜻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제거할 수 있었다. 이것을 알았던 김구는 소련의 신탁통치를 반대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발 더 나아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의 실질적 정부이니 미군정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제부터는 미군정의 말이 아닌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뜻을 따르도록 지시함으로 이 때부터 미군정의 미움을 받기 시작하였다.

김규식은 영어에 능통하였을 뿐만 아니라 탁월한 지식인이었던 까닭에 미군정으로부터 많은 지지를 얻고 있었다. 모스크바 삼국외상회의를 통해 한반도를 미국과 소련이 협의하여 결정하기로 하였기 때문에 미국은 자신들의 계획대로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소련이 싫어하는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소련은 이승만과 김구를 싫어했기 때문에 이승만과 김구를 내세우면 무조건 반대할 것을 알고 온건한 김규식을 전면으로 내세웠다. 김규식에게는 그를 지지하는 기반이 약했기에 그를 지지할 단체가 필요하였다. 그래서 ‘조선기독교청년연합회’를 11월 26일 창립하여 민주공화국으로 세우고자 하였다. ‘조선기독교청년연합회’의 청년들은 어떤 경우라도 소련과는 타협할 수 없다는 뜻을 가지고 있었으나 김규식은 미국처럼 어느 정도 소련과 타협하여 정치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문제로 ‘조선기독교청년연합회’ 내에서 논쟁이 벌어졌고, 결국 정통적인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인원이 많게 됨으로써 ‘조선기독교청년연합회’는 김규식에 대한 공식적인 지지를 철회하였다. 이 세력은 이승만을 지지하는 쪽으로 이동하였다.

미국이 유엔에 남북한 총선거 결의하고자 하였을 때, 이승만과 김구는 유엔의 총선결의안 찬성(11월 30일)하였다. 하지만 이들의 의견은 서로 달랐다. 이승만은 “남한만이라도 정부를 수립해야 한다. 우리의 온몸에 병들었을 때는 살아있는 부분이라도 살려야 나머지를 살릴 수 있다.”라고 주장하였고 김구는 “우리는 원래 한 몸이니 죽어도 함께 죽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엇갈린 주장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우선 살아있는 남한만이라도 살아야 한다는 의견을 지지함으로써 김구를 지지했던 많은 사람이 이승만을 지지하는 쪽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출처 : 부천신문(http://www.bucheon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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