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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수목사 칼럼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이인수목사 칼럼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 교회협동신문
  • 승인 2021.05.13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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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장수했던 인간의 수명이 세월이 지나면서 급격히 단축된 원인이 무엇일까?
이인수목사  (전)온누리수련원장 국가유공자 6‧25 참전,무공수훈
이인수목사 (전)온누리수련원장 국가유공자 6‧25 참전,무공수훈

 

전에 어느 은퇴 장로님의 8순잔치가 있었다. 그 때 필자가 생신 예배를 인도하면서 구약성격에 나오는 모세를 예를 들어 2가지 면에서 축복의 말씀을 드렸다.

하나는, 모세가 8순이 되었을 때,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애굽땅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는 위대한 일을 담당했던 것처럼 올해 8순되신 장로님께서도 이제부터 더 큰 하나님의 일을 하시길 바랍니다 라고 하고는, 두 번째로는 모세가 8순을 넘기고 건강하게 살다가 120수가 되어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이 세상을 떠난 것처럼 장로님께서도 백수를 훨씬 넘기셔서 120수까지 건강하게 잘 사시기를 바랍니다라고 장수의 축복을 드렸던 것이다.

그리고 예배를 마친 후 장로님께서 인사의 말씀을 하실 때에 저를 바라보시면서 “목사님, 대단히 섭섭합니다.”하고는 “저는 최소한 150수 쯤 살 거라고 믿고 있는데 목사님께서 120수를 살라고 하시니 제 기대에 미치지 못해 섭섭합니다.”라고 하시는 말씀이시다.

사실 제 딴에는 120수도 굉장히 오래 사는 것으로 생각하고 말했던 것인데 장로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150수쯤 살아야겠다는 말씀이시다. 그래서 인사를 마치고 내려오셨기에 제가 옆에서 “장로님 기왕이면 므두셀라처럼 969년을 사시지요” 라고 하고는 서로 웃음을 나눴던 적이 생각난다.

비록 농담 가운데 오고 간 이야기이긴 하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기를 원하고 있다. 우리 모든 사람들이 천국 가기를 동경하지만 누구나 먼저 가는 것을 꺼려한다. 이왕이면 좀 뒤에 갔으면 하는 그런 생각들을 다들 하고 있다.

최근 들어 의학수준이 향상되고 위생개념이 높아지며 생활수준이 점점 나아짐에 따라서 인간의 평균수명도 상당히 높아지고 있다. 지난 한 통계에 의하면 1919년대에 우리나라 평균 수명이 40세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90년대에 들어와서는 남자는 72세, 여자는 76세나 되고,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70,80,90 개중에는 100수를 누리는 분도 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백수가 무색할 정도로 천년 가까이 산 사람들이 수없이 나타나고 있다. 아무리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납득이 되지 않는 수수께끼와 같은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사실이다. 창세기 5장에서 보면 최초의 인간 아담은 930년을 살았고 셋은 912년, 에노스는 905년, 계난은 910년, 므두셀라는 969년, 노아는 950년을 살았다고 했다. 그렇게 9백년 이상씩 살던 인류가 노아 홍수 이후에 들어서는 수명이 급격히 줄어든다.

아르박삿은 438년, 벨렉은 329년, 스룩은 230년, 아브라함은 175년, 모세는 120년, 요셉은 110년, 거의 우리와 비슷한 수준으로 내려왔다. 이렇게 태초의 인간에 비해서 세월이 가면서부터 수명이 급격이 줄어든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를 성경에서 찾아보면 반대로 어떻게 하면 우리 인류가 건강하고 행복을 누리며 장수할 수 있는가를 찾아볼 수 있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첫 번째로, 죄악이 인간의 수명을 단축시켰다.

에덴동산이 만들어진 후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하와는 처음에는 죽음이란 그 자체도 몰랐다. 어떤 면에서는 에덴동산은 죽음이 없는 세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타락하면서부터 죽음이 생겼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경고하시기를 내가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먹는 날에는 네가 정녕 죽으리라 하셨다. 죄가 죽음을 초래케 했던 것이다 . 죄의 결과로 인간에게 죽음이 왔다. 그렇지만 아담부터 시작해서 10대까지는 인간이 죽는 것은 필연적인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이 땅에서 사는 기간이 길었다. 아담부터 노아 때까지는 대개 8백년 이상을 살았다. 그런데 노아시대에 이르면서 이 세상에 죄악이 관명하고 세상이 악해지니까 그 때부터 인간의 수명이 급격이 줄어든 것이다. 노아시대의 상황에 대하여 창세기 6장 5-7절에서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 생각의 모든 기획이 항상 악할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에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리라. 세상에 죄악이 관영하고 모든 사람들이 범죄하고 사니까 하나님께서 내가 이 세상에 인간 지음이 오히려 한탄스럽다, 원망스럽다할 정도로 말씀하시고, 하나님의 근심거리가 된 인간을 땅에서 오래 살게 둘 까닭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의 수명을 짧게 만든 것이다. 옛 우리 선조들도 마음이 악하면 제 명대로 못산다는 말을 믿어왔다. 그처럼 마음이 악하고 행실이 악하면 제명대로 다 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선한 마음을 가지고, 선한 생활을 하면 건강장수한다는 말이 되겠다.

두 번째로, 인간이 육식을 하면서부터 생명이 급격히 단축되었다.

창세기 1장 29절에서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이 때부터 인간은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할 것인가를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셨던 것이다. 이처럼 채식만이 허용하신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채식을 하고 살 때에는 천년 가까이 장수했었다. 창세기 1장 28절에서 모든 것을 다스리라했지 먹으라 하진 않았다. 그런데 노아 홍수 이후에 식량이 부족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육식을 허용하셨다. 창세기 9장 3절에서 무릇 산 동물을 너의 식물이 될지니라. 채소와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되는 피채로는 먹지 말 것이니라고 경고하신다.

육식을 허용하시되 피채로는 먹지 말라는 것이다. 너무 잔인하니까 피는 먹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전에 연세대학교 교수가 쓴 『식품과 건강』이란 글에서 동물이 충격에 의해 또는 맞아서나 칼에 찔려 죽게 되면 자기 방어의 본능에서 독성을 발하여, 그 독성이 혈관에 얽혀져 있다는 것이다. 그런 피를 사람이 마시면 건강에 유익하기보다는 오히려 독극물을 마시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건강에 결코 좋지 않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한국 사람들은 동물의 피를 좋아한다. 중국 연변에 가면 한국인 관광객들을 위한 사슴목장들이 많다. 관광안내원이 그곳에 안내해서 사슴 피를 마시도록 한다. 하나님께서 이런 잔인한 짓을 하지말라고 하신다.

세 번째로,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5월 8일 어버이날을 맞이해 이 날이 되면 전에 애들 때엔 철이 없어 그냥 무심코 학교에서 따라 불렀던 어버이 노래가 생각난다.

“나실 때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때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셨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머님의 희생을 가이 없어라.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을 위해 살과 뼈를 깎아바치는 마음, 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하리오. 어머님의 사랑은 그지 없어라.”

또한 교회에서는 그 날이 되면 찬송가 304장에 나실 때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때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이 찬송을 불렀다. 그래서 성경에서 자녀들이 부모를 어떻게 공경할 것인가를 가르치고 있다.

에베소서 6반 1-2에서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했다. 부모공경이란 히브리어 단어에서 ‘카멜’이라는 어휘를 쓴다. 이 말은 3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존경한다, 또 하나는 기쁘시게 한다, 세 번째는 순종한다 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성경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장수의 비결 중 하나임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효도하는 것은 단순히 윤리나 도덕적 이륜의 차원에서 설명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성경에서 10계명 중 제 5계명에서도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생명이 길리라 하셨다. 이처럼 효도는 단순한 도덕율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칙이시다. 그래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느 지도자도 효도를 강조하지 않는 경우가 없다.

효지행지본(孝之行之本)

효도는 성경과 불경 그리고 코란, 기타 종교에서도 공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공자의 효경에서도 제 부모를 사랑하는 자는 감히 남을 미뤄하지 못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감히 남을 업신여기지 못하나니, 사랑하고 공경하는 마을을 부모에게 다하면 덕스러운 가르침이 백성에게 미쳐서 천하가 본받게 될 것이니, 이것을 대개 천자로서의 효도이다라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일생동안 희생하고 세월이 지나면서 자식들이 독립하고 자립했을 땐 부모는 거의 백발이 되고 노인 4고(苦)인 병고(病苦), 빈고(貧苦), 고독(孤獨), 무력의 역할상실 등으로 인해 쓸모없이 되어진 노부모를 자식들은 제 살기에 바쁘다면서 쉽게 잊고 지내기가 일수이다.

옛 성인들께서도 이를 절실하게 느꼈던 것이기에 예로부터 전해오는 글에서 나무가 고요해지려해도 바람이 그치지 아니하고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고자 해도 어버이가 기다려주질 아니한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

부모는 항상 내 곁에 계시는 것이 아니다. 혹시라도 부모님 생존해 계신다면 처자식에게 쏟는 애정과 사람을 부모에게 반이라도 나누어 드리라고 권고하고 싶다. 부모 돌아가시고 나서 후회해도 소용없다. 나이가 늙어갈수록 부모님께 잘해드린 것을 생각이 안하고 못해드린 것만이 생각나 더욱 가슴 아프게 한다. 그래서 돌아가신 부모님 다시 한 번 모셔봤으면 하는 생각이 더욱 간절해진다. 그런데도 1년 중 특별한 날 때나 되면 마지못해 한두 번 효도랍시고 생색내는 것은 참효도가 아니다. 올바른 효도를 하여 성경 말씀대로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할지니라(요1서 3:18). 성경에서 인간에게 효도를 명하시면서 그에 대한 보상을 약속한 것은 그만큼 효도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명심보감에서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는 효자가 나오고, 엄격한 어머니 밑에서는 효녀가 나온다했다. 이처럼 나의 행동이 그 집의 가품이 되고 나의 마음이 자녀 교육의 지침이 된다는 것이다. 머지않아 내 집 가품 속에서 나의 교육을 받은 자녀가 부모 품을 떠나 자기네 생활을 하게 된다. 효자는 효도하는 자식을 두어 효도를 받게 될 것이며, 불효자는 불효자식을 두어 불효를 받게 된다는 옛 성현들의 말씀이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끝으로,

인도의 사도 바울이라 칭하는 썬다싱은 어머니의 품 안은 나의 신학교였다 했다. 인간 세상에 생겨나서 만나는 최초의 스승은 어머니시다. 어머니는 최대의 교과서이며 최대의 하나님 모습이며, 최대로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그런 사람이라 했고, 또 나폴레옹은 어머니는 스승 중의 스승이라 칭했으며 자식의 운명은 그 어머니가 만든다고 갈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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