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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사의 조명Ⅴ] 해방 직후 우익 민족주의자들의 38선 철폐운동
[한국 근대사의 조명Ⅴ] 해방 직후 우익 민족주의자들의 38선 철폐운동
  • 교회협동신문
  • 승인 2021.05.11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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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영 목사
윤대영 목사
윤대영 목사

1945년 8월 15일은 해방의 날이자 분단의 날이다. 해방의 기쁨은 잠시였고, 이내 38선이 왜 나누어졌으며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 라는 큰 질문이 남겨져 있었다. 누가 분단의 주역이며 누가 갈라놓았는가?

38선은 미군이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하여 제안하였고 이를 소련이 수용한 것이다. 즉, 38선은 일본군 무장해제를 위한 군사 작전선이다. 하지만, 소련은 38선을 일본군 무장해제의 목적뿐만 아니라 남한 사람이 북한으로 왕래하지 못하도록 정치적 경계선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미국 국무성은 한반도는 하나의 정치, 문화, 언어공동체이므로 하나의 중앙집권화된 정부로 세워야 함을 문서로 작성하여 중앙 미군사령관 하지 장군에게 전달하였다. 하지 장군은 남한과 북한의 문제를 미국과 소련이 함께 해결하여 하나의 중앙집권적 행정부를 만들 것을 소련 측에 제안하였다. 하지만 소련 측에서는 무응답으로 일관하였다. 왜냐하면 소련은 북한에 공산정부를 세우도록 9월 20일 지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한국인에게는 한순간에 38선을 기점으로 남북한을 오가던 길이 막히게 되었다. 그러자 한국인들은 ‘소련 때문에 38선을 왕래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합리적인 추측을 하기 시작하였다. 왜냐하면 소련은 이전부터 줄곧 한국을 갖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청일전쟁을 할 당시 일본은 ‘소련이 한반도를 장악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고민이 있었다. 그래서 일본은 소련 측에 38선 이북은 소련이, 38선 이남은 일본이 가질 것을 제안하였으나 소련이 이를 반대하였다. 청일전쟁이 일어난 1894년 당시 소련은 세계적인 강대국이었고 마음만 먹으면 한반도 전체를 자신들이 가질 수 있다는 계산이 있었다. 이후 1904년 소련이 일본을 상대로 전쟁을 하면서 일본이 자신들의 생각보다 강하다는 깨닫게 되었다. 청일전쟁 당시에 일본이 제안한 것처럼 38선의 남쪽은 일본이 차지하고 38선의 북쪽은 소련이 가지도록 제안을 하였으나 이미 전쟁에서 승리하고 있던 일본은 이 제안을 거부하였다. 이러한 일들을 겪으면서 한국 사람들에게는 ‘소련이 한반도를 차지하려고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각인되어 있었다. 결국, 38선이 소련 때문에 생긴 것으로 이해하게 된 것이다.
소련이 38선을 중심으로 남한과 북한의 왕래를 막자 어려움이 속출하였다. 북한의 석탄이 남한으로 내려와야 남한 사람들이 겨울을 날 수 있었는데 왕래가 끊기자 석탄공급에 문제가 생겼다. 또한,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큰 수풍발전소가 북한에 있어 전기를 한반도에 공급했었는데 전력 역시 끊기게 되었다. 남한 사람들이 북한에 가서 많이 살았는데, 기차를 막자 내려오지 못하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들이 생겨나자 정통주의 민족주의자 송진우는 “남북한의 분단은 유감이며 빨리 38선을 철폐하여 통일된 정부를 빨리 만들어야 한다.”라고 주장하였다. 온건 우익의 안재홍은 38선 철폐건의안을 맥아더 사령부에 9월에 제출하여 통일 군정을 만들어 하나의 국가를 건설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안재홍은 10월 8일 주한 미군 사령관인 하지 장군을 만나 자신들의 청원서를 미국 대통령에게 제출하여 특별한 조처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미국 역시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였다. 하지 장군은 북한의 소련군 사령부에 연락하여 서둘러 통일 군정을 만들고자 노력하였으나 소련은 계속 묵묵부답하였다. 또한, 10월 15일 정치고문을 워싱턴으로 보내 38선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였다.
이승만 박사가 10월 16일 한국에 도착하여 귀국 기자회견에서 “미국에서는 38도 분할점령은 미소 연합군이 합작했을까 하고 의심하고 있다”라는 깜짝 놀랄만한 말을 통해 미국의 적극적인 대응을 끌어내고자 하였다. 이어 10월 22일 기자회견에서는 “미국 대통령 트루먼 대통령 역시 이 분할정책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완화하여 말하였으나 현실적으로 한반도는 분단되었으며 이것은 미국과 소련의 공동결정이기 때문에 미국의 책임을 묻을 수밖에 없음을 밝히며 미국이 대응을 계속하여 끌어냈다. 결국, 10월 25일 미국 국무성은 “조선의 북위 38도 선에 의한 양분은 종전 후 부적당하게 되었음으로 관계제국에서는 이 해결에 관하여 교섭이 진행되고 있다”라고 언급하면서 미국이 한반도의 해방 이후 최우선 과제를 통일로 두고 있음을 밝혔다.
이처럼 우익 민족주의자들은 38선 철폐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었고 이를 통하여 민족공동체 회복에 관심을 두고 있었으며 미국 역시 한반도를 하나의 통일된 정부로 만들고자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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