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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백의천사 두 수녀님에 대하여”(2)
“소록도 백의천사 두 수녀님에 대하여”(2)
  • 강영철 기자
  • 승인 2019.02.21 2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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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우리 집, 우리 병원, 다 생각나요! 바다는 얼마나 푸르고 아름다운지 ... 하지만 괞찮아요 , 내 마음은 소록도에 두고 왔습니다“
김호진 장로(생명샘교회)
김호진 장로(생명샘교회)
 두 수녀님은 환자들과 소통하기 위하여, 우리말과 한글까지 깨우쳤습니다. 처음에는 우리말과 한글이 배우기가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었습니다.

두 수녀님이 쓰는 전라도 사투리는 아주 구수하고 정다웠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파란 눈의 두 수녀님이 쓰는 전라도 사투리를 들으면서 파안 대소 하며 즐거워하였습니다.

그러나 두 수녀님은 참으로 한 없이 겸손하였으며 하나님 이외에는 누구에게도 얼굴을 알리지 않은 선행이야 말로 성경말씀처럼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것을 실천해 왔습니다

그래서 오스트리아 본국에서 주는 훈장도 마다하고 거절하였습니다. 그후 오스트리아 주한대사가 소록도까지 찾아와 대사님의 설득후에야 정부에서 주는 훈장을 받게 되었습니다

두 수녀님은 환갑이 되었을 때에는 병원 측이 마련한 환갑 잔치 마저 거부하며 교회의 기도하려 간다고 하면서 피하다 싶이 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백의천사 곧 나이팅게일의 정신이 바로 이런 것이 였습니다.

두 수녀님은 녹동 항에서 서울행 버스에 올랐을 때에는 40여년 전 소록도에 처음 올 때 가져왔던 해진 가방 하나씩만 달랑 들려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알려질까 봐 송별식이라든지 당신들을 위하여 어떤 ‘예‘를 갖추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이른 새벽에 조용히 남몰래 편지 한 장 남겨 놓고 떠났습니다.

그 편지 내용은 이렀습니다 “ 사랑하는 친구 은인들에게 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고 우리들이 있는 곳이 부담을 주기 전에 떠나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이야기 해 왔는데 이제 그 말을 실천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많이 부족한 외국인으로서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아 왔기에 감사하며 저희들의 부족함으로 마음 아프게 해드렸던 일이 있었다면 이 편지로 용서를 빕니다."

작은 사슴처럼 슬프고 아름다운 소록도에는 지금은 늙고 오갈 데 없는 환자 600여명만 남아 있습니다. 그들은 환자들에게 온갖 사랑을 베푼 하늘의 천사 였으며 예수님의 사랑이 깃드려 있었다고 봅니다.

이렇게 두 수녀님이 소록도를 떠나간 후에 소록도 전체가 슬픔에 잠겨 모두 일손을 놓고 성당에 모여 그 두 수녀님을 위하여 열흘 동안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지금은 오스트리아 시골에 있는 낡은 집 서너 평 남짓한 방 한 칸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소록도에서 젊은 청춘을 불살랐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의 자기 나라에 살면서 낯선 땅처럼 느껴진다고 합니다.

방문 옆에는 우리말로 직접 쓴 글이 액자에 담겨 벽에 걸려 있는데 그 내용은 “지금도 우리 집, 우리 병원, 다 생각나요! 바다는 얼마나 푸르고 아름다운지 ... 하지만 괞찮아요 , 내 마음은 소록도에 두고 왔습니다“

꽃다운 20대 처녀의 몸으로 60년~70대 그때 나환자를 보기만 해도 피할 정도로 무서운 병으로 인식이 될 때 인데 두 수녀님은 하나님이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해 주신 것 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젊은 청춘을 불타는 심정으로 자원하여 이국땅 소록도에 몸담기로 결심하고 세상과 소외된 고도 죽음의 땅과 같은 소록도에서 40여년을 불평 없이 꾸준히 환자들을 돌보며 봉사하며 고귀한 나이팅게일의 정신을 발휘하여 몸받쳐 그 임무를 다 하고 본국으로 돌아가 여생을 보내고 있는 마리안누 수녀님과 마가렛트 수녀님은 하늘의 천사입니다.

테레사 수녀도 스코피 지금의 마케도니아 지역에서 태어나서 열 두 살 소녀시절에 가난한 자들를 위하여 도우며 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가 18살 때 자신의 소명을 실천하기 위하여 가족의 곁을 떠나 인도에서 가난한 불량자들을 돕기 위해 평생을 바친 테레사 수녀, 그리고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군의관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이탈리아 로마로 유학하였고 2001년에 서울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그해 11월 아프리카 수단 남부 톤즈 (Tonj)로 가서 생을 다하기까지 내전으로 고통당하는 주민 그리고 나병환자들을 치료하며 선교활동을 하신 위대한 이태식 신부님 우리들이 이해 할 수도 상상하기 어려운 고귀한 희생정신이야 말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깨닫지 못한 우리들로서는 이해가 안가는 위대하고 고귀한 희생으로 아카페 사랑을 실천하신 분이라고 봅니다.

늘 입버릇처럼 나이가 70이 넘었기 때문에 섬을 떠나야 되겠다고 말 하던 것과 같이 그 말대로 실천에 옴긴 것입니다.작은 사슴처럼 슬프고 아름다운 소록도에는 지금은 늙고 오 갈 때 없는 환자 600여명만 남아 있습니다. 그들은 환자들에게 온갖 사랑을 베풀고 정성을 다하며 외국 의료진을 초청해 장애교정 수술을 해 주고 한센인 자녀를 위한 영아원을 운영하는 등 보육과 자활정착 사업에 헌신했습니다.

나이팅게일의 은 영국의 풍부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그는 어릴적부터 가난한 이웃을 돕고저 하는 마음이 생겨 부모님의 극구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쟁으로 환자가 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저 하여 간호학교를 나오고 결혼도 포기 하고 크림전쟁터의 야전병원에서 환자들을 간호하는데 열정을 퍼부었습니다 이렇게 활동하고 봉사하는 바람에 백의의 천사라는 호칭을 받게된 것입니다.이와 같이 나이팅게일과 적십자 사업의 호국보훈의 코라보 “나이팅게일장" 생겼습니다

마라안누 수녀님과 마가렛 수녀님의 정신이 바로 나이팅게일 정신이였습니다. 두 수녀님이 소록도를 떠나간 후에 너무나 섭섭하여 섬 온 사람들이 성당에 모여 열흘을 넘게 두 수녀님을 위해 감사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두 수녀님은 지금은 오스트리아 시골에 있는 낡은 집 서녀 평 남짓한 방 한 칸에서 살고 있습니다 소록도에서 40여년을 젊은 청춘을 보낸 곳이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의 사는 곳이 낯선 땅에 와 있는 느낌이며 오히려 소록도가 고향 같이 향수에 젖을 때가 있다고 합니다.

살림살이는 별로 없지만 방을 온통 한국의 소품으로 장식해 놓고 매일 밤 소록도 꿈을 꾼다고 합니다. 방문 옆에는 우리 말로 직접 쓴 글이 액자에 담겨 걸려 있습니다. 액자에는 < 우리 집 우리 병원 소록도> 지금도 생각나요 하시면서 바다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 하지만 괜찮아요.라고 말 합니다.

꽃다운 20대 처녀의 몸으로 60년~70년대 그때는 나환자를 보기만 해도 피할 정도로 무서운 병으로 인식이 되고 있을 때인데 두 수녀님은 주님의 사랑에 감동되어 그 사랑을 이웃을 위하여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며 실천하기 위해 세상과 소외된 죽음땅 소록도에서 40여년을 한 마디 불평없이 꾸준이 환자들을 돌보며 봉사하다가 달려갈길 다 갔기에 조용히 본국으로 돌아 간 고귀한 희생정신을 발휘한 마리안누 수녀님과 마가렛 수녀님은 백의의 천사입니다.

글/사진 김호진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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