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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환 장로의 성경지리 탐방 이야기 '다섯'
김우환 장로의 성경지리 탐방 이야기 '다섯'
  • 교회협동신문
  • 승인 2019.02.19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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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눈, 하나님의 눈

유대인은 육신의 혈통을 우선시 한다.
스스로를 성골이라 하고 사마리아인에 대해서는 혼혈유대인이라 하여 마치 이방인 취급하며 그들의 땅도 밟지 않았다고 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우리에게는 썩어 없어질 육신의 혈통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

 

13. 사마리아성 투어

사마리아성은 헤롯대왕 때, 로마광장.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숭배제단. 원형 경기장 등을 만들었고 언덕에는 유적이 된 비잔틴시대 교회가 있다.
교회 바로 옆 지하는 세례요한의 무덤이라고 추정되는 곳이라고 한다.
아래쪽 원형경기장에는 그 날 따라 팔레스틴 신부가 저녁에 있을 결혼식을 앞두고 웨딩 촬영을 하고 있었다.

사마리아성은 B.C 875년 오므리 왕에 의해 건설 되었고 그 아들 아합왕에 의해 완성 되었다.
지명의 유래가 성경에 소개되고 있다.
“저가 은 두 달란트로 세멜에게서 사마리아 산을 사고 그 산 위에 성을 건축하고 그 건축한 성 이름을 그 산 주인이 되었던 세멜의 이름을 쫒아 사마리아라 일컬었더라”(왕상 16:24)

아합은 두로 왕의 딸과 결혼을 할 만큼 이방 문물을 받아들였는데, 사마리아 성읍은 페니키아(이세벨의 고국)의 숙련된 장인들에 의해 건축되어 상아궁 (왕상 22:39, 암 3:15)이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성이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 여로보암 2세(B.C 793~782)때에 사마리아성은 최대의 번영을 누렸으나, 선지자 아모스와 호세아의 사마리아성의 종말 예언처럼, 여로보암 2세 사후 얼마 되지 않아 B.C 722년에 앗수르의 살만에셀 5세에 의해 멸망하고, 살만에셀의 뒤를 이은 사르곤 2세가 B.C 721년에 사마리아 거민 27,290명을 사로잡아 갔다고 한다.

B.C 55~57년에 로마의 수리아 총독 가비니우스가 사마리아의 복원을 명령해서 재건축이 시작되었지만, 헤롯대왕이 B.C 30년부터 시작해서 무려 10년에 걸쳐 사마리아성 재건을 완성했다.
사마리아성은 사도행전 8:5,14절에 마술사 시몬의 본거지로 언급되었으며, 오늘날 남아 있는 대부분의 유적은 로마 통치 시기인 A.D 180~230년경에 만들어진 것들이라고 한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수가성 우물에 들린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어 아쉬움이 컷다.
예수님께서는 사랑하셨지만 유대인은 그들이 혼혈 짝퉁이라고 멸시한 곳, 유적의 위엄이 살아있는 사마리아 땅이여!

14. 벧엘

“내 고생하는 것 옛 야곱이/ 돌베개 베고 잠 같습니다/ 꿈에도 소원이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유대인 정착촌을 지나니 벧엘이라고 추정되는 곳이 있고, 옆에 고대인들의 기도처와 1,000년이 넘은 상수리나무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던지 부목으로 받들어져 있다.

야곱이 갈급하여 기도한 곳 벧엘은 하늘로 탁 터인 공간에 천사의 사닥다리가 펼쳐진 우주와 같다.
야곱은 천사와 겨룰 정도로 힘이 장사였다고 한다.
유대인의 장자권은 팥죽으로 얻지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암시일 뿐 아버지가 별미를 먹고 축복해 줘야 장자권이 주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벧엘은 야곱이 돌을 베고 잠자다가 꿈에 천국의 계단을 본 곳이다(창세기 28).

수 백년 뒤 이스라엘이 남왕국(유다)과 북왕국(이스라엘)으로 분열되자 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은 텔 단에서와 마찬가지로 벧엘에서도 신전을 세운다.
백성들이 유다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에 예배를 드리려 갔다가 마음이 변하여 자신을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을 섬길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였다.
여로보암은 벧엘에 금송아지 우상을 설치했기 때문에 선지자들은 벧엘 신전을 격렬히 비난한 바 있다.

15. 선지자 사무엘의 무덤(가묘)

예루살렘 북쪽 가장 높은 산에 선지자 사무엘의 무덤이 있다고 알려지면서 주변 발굴작업이 진행 중이다.
십자군시대에 성지를 순례하던 여행객들이 다녀간 곳으로 학자들 중에는 이곳이 미스바다 아니다 견해가 갈라지고 있다고 한다.
미스바에서 사무엘은 사사역할을(삼상 7장), 사울이 왕위에 오르고(삼상 10장),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요충지였다(왕상15장).

지금은 모스크 건물이 있고, 그 지하에 사무엘의 가묘가 있다고 해서 들어가 보고 싶었으나 공사 중이라 못 들어갔다.
'사무엘이 죽으매 온 이스라엘 무리가 모여 그를 두고 슬피 울며 라마 그의 집에서 그를 장사한지라. 다윗이 일어나 바란 광야로 내려가니라' (사무엘상 25:1).
사무엘이 '라마'의 집에 장사지냈다고 하는데, 이 곳은 라마와는 거리가 있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가묘라며 십자군 시대 때 사무엘의 유골을 이 곳으로 옮겼다는 설이 있다.
양쪽 좌우에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 자치구역의 불빛이 반짝인다.

“여리고 석류”

한 개 2달러! 다섯 개 10달러!
빨리빨리 사요
짝! 짝! 짝!

세 명의 팔레스틴 청년 한국말 재미있게 응원하고,
인심 좋아 보이는 늙은 할아버지 끔뻑끔뻑 석류 사 달라고 신호한다.

여리고 석류는 아이 머리만큼 크고,
영롱한 알갱이 먹을 생각에 행복의 향기 온 몸 가득하다.
자기 전 먹으려다 피곤에 골아 떨어지고,
7시간의 시차가 아직 적응되지 않았는지
새벽 4시에 일어나 볼구스럼한 석류 반 자른다.

알알이 예쁘게 박혀있는 벌집 같은 형상.
두 개는 낮에 먹으려 패트병 속에 알맹이 까 넣고,
한 개는 알맹이 한알 한알 입 속에 넣고 혀로 놀려 맛을 음미해 본다.

입 안에 들어가는 순간, 상큼한 맛!
터지는 알맹이 속에서 나오는, 청량한 천연탄산수!
온 몸에 흐르는, 치솟는 상쾌함!

마치, 에덴동산 생명나무 과일이 세상에 염탐 온 듯. 풍성함이 넉넉하다.
여리고 석류의 행복감과 내일 갈릴리지역 간다는 기대감에 잠시 새벽 눈을 붙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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