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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년 새해를 맞아’ “왜, 人 의 뜻이 사람이고 발음을 ‘인’이라 했는가?”
‘기해년 새해를 맞아’ “왜, 人 의 뜻이 사람이고 발음을 ‘인’이라 했는가?”
  • 교회협동신문
  • 승인 2019.02.01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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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짐승과 다른, 믿음과 신뢰, 섬김과 책임 행실이 어질고 거듭난 사람을 사람이라한다’
이인수목사
이인수목사

새해가 되면 만나는 사람마다 첫 인사말이 ‘새해복많이받으세요 라고들 한다. 이러한 인사말은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받게 할 수는 없을까, 하고 생각하게한다. 복을 말할 때 각 나라마다 그 개념의 차이가 있는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보편적으로 건강한것, 부귀영화를 누리는것, 하는 일이 잘되어 형통해지는것을 대표로 말한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들을 만드시고는 생물체들에게 복을 주셨고 안식일날을 복되게 하셨음을 알게된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복의 종류는 크게 세가지로 요약할수있는데 첫 번째는 '‘바라크’ 이다. 이 의미는 무릎을 꿇는다. 찬양한다 라는 뜻이 있고 두 번째는 ‘'토브’ 라는 말이 있다. 이 의미는 번영과 복지를 나타나게되며 세 번째는 ‘'예세르'’라는 복이다. 이 의미는 행복을 누리면서 사는 것을 말하게 되는데 일생의 삶을 통해서 나타내는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토브나 예세르는 언제든지 바라크의 복을 기초로 시작해서 얻게 되는데 성경에서 복을 많이 받으라는 말은 하나님께 찬양과 기도가 많아짐을 의미한다. 성경에는 복이란 말이 많이 있다. 즉, 복되도다 복이 있다. 복을 받으라 복을주소서, 복을 주었다. 복을 주시리라, 등등 복이란 말이 많이 있다. 그래서 성경을 복음이라 하는것이 매우 적절한 표현이라 생각된다.

올해는 기해년 황금돼지해로 재물이 넘치고 큰복이 온다는 속설이 전해진다. 모두가 즐거운 복과 땅에서 높은곳에 올라가는(존귀) 존귀의 복 그리고 물질과 건강 장수의 복을 받는 새해맞이하기를 소망하며, 주의 은혜로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하옵소서(사무엘하7:29)

왜, 人(사람인)의 뜻이 사람이고  발음을 ‘인’이라 했는가? 이에 대해 1527년 훈몽자회에서부터 그 뜻을 사람이라 하였고 발음을 ‘인’이라 하였다고 한다. 사람 人의 뜻은 한자에서 왔으며 그 뜻은 방자함을 스스로 다스릴줄 아는 사람을 사람이라했고, 발음을 어질인(仁)에서 취한것이라 했지만 사람은 성경에서 온 것같다. 행실이 어질고 선하게 사는 사람 즉, 거듭난 사람이 사람이다. 그 속깊이에는 짐승들 보다도 다른 믿음과 신뢰와 섬김과 책임이 어우러져 있는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사람이라 했는지 그 뜻을 잘 모르고 사는 사는 사람도 많다. 속담에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人,人,人,人)라는 말이 있다. 성경 로마서8:5-7에서 인간관계에 대해 명확하게 말씀하셨고, 에베소서2:11-13에서도 자세하게 그 뜻을 말씀했다. 영의 관계가 아닌 육체의 관계를 설명한것이다. 사람이란, 말의 뜻을 한번더 갈라디아서 5:24-35에서도 말씀했다.

어질인(仁)의 소리(音)에 대해서도 요한1서 4:15-16로 말씀했고 특히 요한복음 15:5에서는 분명하고도 명확하게 사람의 뜻과 사람의 향기를 말씀했다. 어쩌면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다. 야고보서 1:22 말씀에 너희는 도(道)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며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말라고 하셨다. 이 말씀을 읽거나 듣고 행하지 않으면 거울로 자기 얼굴보는 사람과 같다고 까지 했다.

이와 같이 人의 음(音)과 훈(訓)을 사람이라고 한것은 역사와 언어의 뜻은 변치 않는다는 사실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증명되니 성경을 생활로 풀어 일상에서 실천하라는 것이 틀림없는것 같다. 참으로, 사람이라는뜻은 오묘하기가 그지 없어 생각하면 할수록 그뜻이 너무도 깊고 훌륭해서 하나님의 작품은 확실히 다르심을 깨우치게 하며 은총을 느끼게 하신다. 신앙의 분별력이 사람이란 훈(訓)속에 살아있어 효와 도가 보이는 것이다.

어느 학자는 말하기를 세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면서 어느 사회던지 그 나라 국민의 15%는 생각하는 사람으로 자처하고 있으며 나머지 85%는 생각없이 죽어가는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15%의 인간에 속한 사람인지를 자문할 필요가 있다.

공자는 ‘나는 하루에 세 번씩 나자신을 반성해본다’고 했다. 즉, 남을 위해 충성을 다했는가, 지인, 친구와 사귀어 믿음을 지켰는가, 배운것을 남에게 제대로 전했는가, 공자는 군자가 되기 위해 반성하며 이렇게 살았다고 했다.

어느 저명 정치가는 그가 세가지점을 표준삼아 인격수양에 힘썻다고한다. 첫째는, 스스로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 둘째는 어떤사람에게도 손해를 줘서는 안된다. 가정을 해치거나 욕을 해서는 안된다. 즉, 남의 단점을 가능한 생각지 않는다. 셋째는, 어떤사람이던 동포이기에 인류애 정신으로 삼으라고 했고, 장자는 공자의 물음에 사람이 아침에 도를 깨우치면 저녁에 죽어도 좋으리라 했거니와, 불교의 석가도 그러한 길을 찿기위해 출가하여 10년동안 설산에서 헤메였다고 했다.

바울사도는 ‘전에 깨닫지 못할때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름에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노라’고 했다. 사람이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지 못했을때엔 산것 같았으나 참으로 깨닫고 보니 그 옛날은 죽은 생활이었고 헛된일만 했노라고 고백했다. 세상을 살다보면 천태만상의 사람들 중에는 유익한 자와 무익한자들이 살고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편에 속했는지 자신을 진단파악하여 진정 유익한 자로 임받는자의 삶이있기를 기대한다.

끝으로, 전도서 7:8에서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다’고 했다. 황충이를 보면 흉하고 징그럽지만 그것은 처음이고 나중은 황홀할 정도로 날개와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해져서 꽃밭으로 날아가며 꿀을 맛보는 행복한 나비가 된다. 이것이 끝이다. 인생도 창조주 안에서 그의 지으신 뜻을 이루어 갈때에 처음은 보잘것 없는 인생이지만 나중은 아름답게 변한다.

이제 2019년의 새해를 맞아 지난해에 있었던 일들을 발견하고는 자책감을 떨쳐버리기 어렵게한다. 그러나 지난해의 일중에 잊을것은 잊어야만이 새해에는 새로운 각오와 계획으로 새해를 새해답게활기찬 삶이 이루어질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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