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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와 우리의 대처
코로나와 우리의 대처
  • 정원우
  • 승인 2020.05.27 2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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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다르다(We are Different)

코로나로 계속 미뤄진 고3 등교를 시작한지 불과 일주일 만에 고3 유증상자 1천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보통 일은 아닌 듯 합니다. 이를 비롯해 한국의 현상황들을 바라보는 하버드 경제학자 로고프 교수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들이 지금까지는 코로나에 잘 대처했지만 앞으로가 더 중요합니다”했습니다. 코로나로 경제가 바닥을 치는 현재, 미연방준비제도에서는 3분기에 V자 급반등이 가능하다는 소견을 낸 반면 로고프 교수는 절대로 가능하지 않고 단지 희망 사항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설사 V반등이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거품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미 50%이상 폭락했는데 25% 반등해도 의미가 없다고 했습니다. 현재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한국실 뉴딜정책’과 ‘그린 뉴딜’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제 “앞으로 다가올 더 큰 위기에 잘 대처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했습니다.

코로나로 수많은 회사들이 붕괴되고 해체 현실과 한국교회의 현실을 보며 예루살렘 교회를 떠올립니다. 예루살렘교회는 핍박으로 뿔뿔이 흩어 졌지만 불과 얼마전에 성령의 강림과 함께 큰 부흥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곧 큰 핍박으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 누구도 도망갔다는 내용을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가는 곳마다 전도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도 사람을 대규모로 끌어들여서 교회를 성장시키고 이것 ‘기준’인 것처럼 제시되는  현실을 다시 바라보아야 할때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도 당시 예루살렘 교회처럼 이미 해답을 받았습니다. 바로 일제강점기입니다. 일제강점기는 한국 교회를 짓밟았습니다. 예배마다 순사들이 감시를 했습니다. 그때 유행어가 ”개나리꽃이 피었습니다“였습니다. 그런데 광복 후 불과 5년 만에 또다시 전쟁으로 부산까지 밀려 내려가는 고난에 처합니다. 그런데 이런 고난들이 결국 한국교회에는 복으로 변했던 것입니다.

1095년 원산,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당시 큰 회개운동이 펼쳐졌습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점심시간마다 모이고, 부모는 빨래터나 직장에 모여서 자연스런 회개운동이 날마다 일어났습니다. 그 힘이 일제강점기로 교회가 흩어지지만 결국 그것이 전국으로 퍼지면서 온 나라가 이길 힘을 제공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 전쟁때는 부산에서 시작된 주일학교 운동이 전국으로 퍼져가고 이것이 한국교회와 한국을 살리는 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로고프 교수가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앞으로 당할 고난을 잘 견뎌내는 것이 중요하다”라고했는데 우리가 지금당하는 고난을 잘 이겨내기 위해 지난 세기에 한국교회와 초대교회 예루살렘교회가 큰 핍박을 이겼던 비결을 배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행4: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이제 대규모 집회가 아니리 ’교제‘의 소규모 집회가 대세가 되었습니다. 아니 그래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시대가 말하는 단순한 ’교제모임‘이 아니라 소규모 ’예배‘를 말하는 것입니다. 한교회라고 할지라도 구역별로 ’소규 모 예배’(저는 가정교회를 말하지 않습니다. 초대교회에는 ‘가정교회’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초대교회가 ‘가정’에서 모였다고 그것을 ‘가정교회’라고 말하는 것은 순전히 오늘날의 입장에서 성경을 뜯어고치는 것이라고 봅니다.)가 활성화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 원동력은 ‘사도의 가르침’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사도들이 전한 것을 신약성경에서 정리하면 ‘구원의 도리,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가르침, 더 확실한 예언’ 구약과 신약의 예언과 성취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도리를 분명하게 배우는 것이며,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지금도 역사하시는 성령의 은혜가 임하도록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결국 지식이 없으면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초대교회도 그랬고, 한국교회도 당시에 교리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지금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교리공부라 믿습니다.(교리라는 이름이 싫다면 누군가 진리에 맞게 구원의 도리를 잘 설명해주면 됩니다.) 그러나 이런 지식에서 머무르면 안됩니다.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이 명령이 모여서 기도하라는 것이었고, 사도들이 처음 한 것도, 마가요한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했고, 또 날마다 성전에 가서 기도했고, 산헤드린에서 풀려나서 성도들과 모여서 한 일도 유대인들의 핍박을 나누며 새로운 전도 전략을 세운 것이 아니라 기도였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인간적인 전략이 아니라 ‘전성도의 리더화’를 목표로 말씀(교리가 말씀을 통해서 먼저 선포되고 그것을 나눔)와 기도에 힘써야 한다고 봅니다. 리더 중심의 목회는 대규모 교회를 지향하는 것이고 ‘전성도 리더화‘는 대규모 교회를 지양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대규모 집회가 아니라 각자 처소에서 전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나누는 소모임으로 굳게 세워가며 온 나라에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선포되고 기도하며 능력있는 하나님나라 백성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코로나의 여파를 극복하고 우리 모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되어야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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