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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말씀을 스스로 하시게 하는가?
왜 이런 말씀을 스스로 하시게 하는가?
  • 교회협동신문
  • 승인 2020.05.14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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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영 목사
▲ 윤대영 목사
▲ 윤대영 목사

해가 질 무렵 앞산 고개를 넘어오는 손님이 보였다. 누구네 집에 오시는 손님일까? 궁금했다. 그런데 그날 밤 손님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다음날 용소(龍沼)에서 한 여인의 시신이 떠올랐다. 그리고 하아얀 치마와 저고리를 입은 여인이었다. 용소 바위에 흰 고무신을 벗어 놓은 체 물속에 몸을 던진 것 같다. 검은 머리가 산발이 되어 물 위에 뜨고, 흰 저고리와 치마는 한의 깃발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그가 남긴 자그마한 보따리 안에서 편지 한 장이 발견되었다. ‘부모님 전상서’란 인사말로 시작된 사연은 이러하였다. 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일본 순사에게 잡혀간 후 오늘이 있기까지의 이야기는 도저히 전할 수 없다고 했다. 다만 가문의 불명예를 안고 온 여식이 결코 집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서 고향집 싸리문에서 초롱불 켜진 안방과 사랑방과 부엌문만 쳐다보다가 생각을 고쳐먹고 여기 명(命)을 끊는다 라고 쓰였다. 그리고 부모님께 간절히 용서를 비는 글이 담겨 있었다. 열여덟 집정도 되는 집성촌에 대대로 양반의 도리를 지켜오며 살던 집안의 딸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이별의 인사도 없이 사라졌다. 짐작하기는 정신대에 끌려갔으리라 생각은 했지만, 집안은 가문의 명예를 위해 속 앓이만 하고 있었고, 이웃이 알지 못하는 제삿날이 있었다. 딸 생일날을 정해 십년을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딸을 위해서 제사를 드렸던 것이다. 한 사람의 목숨과 일생은 어느 때나 동일하다. 언제부터인가 여성 인권이 신장되어 심지어는 아들 가진 부모님들은 아예 여성은 보지도 말고, 말도 받아 주지도 받고, 가까이 가지도 말라는 당부를 할 정도가 되었다. 성범죄가 어디서 어디까지인지 모르는 체 온 매스컴이 함께 하나가 되어 성범죄에 대한 매도가 시작되면 그의 직업이 무엇이든지 나이, 신분이 어떠하든지 이 사회에서 퇴출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양가집 딸로 태어나 곱게 자라다가 왜놈의 순사에게 끌려간 후 소식이 끊겨지는 그 날 밤부터 앞마당 싸리문을 닫지 못하고 집 떠난 딸을 가슴에 안고 부모들은 처참한 삶을 살았고, 나랏님 제대로 못 만나 나라가 빼앗긴 비참함을 당했던 우리 조상님들의 아픔을 생각하면 갑자기 자신까지 열이 오르고 만다. 해방 후 고국으로 돌아온 그 당시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끌려갔던 딸들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부모님의 명예를 위해서 타향에서 숨어 살다가 자신의 억울한 과거를 업보로 쓸어안고 평생을 숨죽이고 산 할머니들이 부지기수이다.

그런데 어느 때 부턴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앞세워서 일본을 규탄하는 집회와 보상을 요구하는 단체가 생겨났다. 수요일마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모임을 하고, 평화 여성상을 조각하여 세계 도처까지 세운다고 했다. 모두가 느낀 느낌은 아니지만 주관적으로는 하필 왜 저 할머니들을 배일과 보상의 자리에 세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은 모두가 공통된 자존심이 있다. 자기의 초상을 내세워 정치적 그리고 국제적 분쟁에 이용된다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신은 잘못함이 전혀 없이 강압적인 피해자이지만, 곱지 않은 자신의 과거를 들추어내어 항변과 보상을 요구한다는 것을 흔쾌히 허락할 리가 없다. 그런데 용기 있고, 담대하신 할머니 여러분이 이 일에 참여하는 것을 보고 짐짓 놀랐다. 그리고 내심 다른 대일청구권도 무수히 많고, 일본에 대한 보상받을 것도 많을텐데 한국 여성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감추어 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할머니들이 제2의 희생을 감수하는 것을 보고 자발적 항거는 누구도 막을 수도 없었다. 대일청구권이 고(故) 김종필 국무총리가 앞세워 박정히 군사 정권 때 끝났다는 생각만하고 있었던 보통의 국민들은 이웃나라와 원수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우리가 이웃나라보다 더 잘 살고 인류 역사에 더욱 기여하는 나라가 되는 것이 악을 선으로 갚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한국 산업의 가마우치식 경제 체제를 55년간 겪으면서 우리에겐 부러웠던 일본의 유수한 기업을 누르고 세계 시장에서 각광을 받게 된 기업이 생겨나면서 일본보다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이 부푼 즈음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원치 않는 사안이 다시 회자되고 보니 오히려 우리 자신이 초라해지는 것 같다. 누가 당신들에게 위안부 할머니란 이름을 지으라 했는가? 그 이름조차도 기억하기 싫은 이름이다. 그리고 누가 당신에게 할머니들을 이용하여 소위 NGO활동을 하라고 했는가? 스스로 한 일이다. 처음엔 착하기만 해보였다. 그러나 한 할머니의 불편한 심경을 기자회견까지 하게 되었다. 사정은 어떠했든지 할머니들의 보상이 어디까지 이루어졌는지 알고 싶지 않다. 다만 숫한 민주라는 이름, 인권을 빙자, 노동이라는 깃발 아래서의 집단 이기주의가 물리적 행위와 정치적 행동으로 자신들의 집권을 위한 집단행위로 밝혀졌다. 벌써 여당과 정치권은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태처럼 진영이 나누어지고 친일파까지 거론한다.

할머니들을 더는 욕되게 하지 말라. 제2의 정신적 정신대로 몰지 말라. 할머니가 스스로 보상 말씀을 하시게 해서는 안된다. 국제사회 앞에 우리 조상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어떤 눈으로 보고 있을까? 수치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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