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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선 박사와 대한신학 그리고 대신교단(2)
김치선 박사와 대한신학 그리고 대신교단(2)
  • 교회협동신문
  • 승인 2020.01.09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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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향주목사
대신대원대학교

 

김치선 목사
김치선 목사

  김치선 박사가 영생중학교를 다닐 때 1919년 3.1 운동일 일어났다. 그도 그 운동에 가담하여 일본경찰에 체포당했다. 그리고 1년간의 옥고를 치른 후 출옥했다. 아마 김치선 박사가 강한 민족주의 애국운동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평생을 12시 고동소리와 함께 기도하고 민족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수시로 눈물을 흘린 삶은 민족과 국가를 위한 그의 심정이 어떠했느냐를 대변해 주고 있다. 일본에서 목회할 때 내선일체에 맞도록 한국말로 설교하지 말고 일본어로 설교해야 한다는 정책에 반항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또 옥고를 치르게 되었다. 아마 2만 8천여 동네에 우물을 파라. 국민의 11조 300 만 성도를 달라고 기도한 신념이 여기서부터 나온 것으로 본다. 또한 그가 순교자 손양원 목사와 절친하게 지냈던 일도 미루어 보면 민족 사상이 깊이 깃들어 있었던 연고로 생각되어 진다. 손양원 목사와 300만 전도운동을 함께 한 일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김치선 박사가 한국에서 활동한 거점은 남대문 교회와 대한신학교이다. 당시 남대문 교회는 교통이 원활한 서울역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장로교가 합동과 통합으로 갈리기 전에 전국에서 영락교회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교회였다. 이승만 대통령과 김구선생이 자주 출석하기도 했다. 손양원 목사님이 오셔서 부흥회를 인도하시고 300만 구령운동을 남대문 교회를 중심으로 일으켰다.

다음에 계속 

김향주목사
김향주목사

김향주목사  - 안양대학교  졸업,    미국 Bible  Theological    Seminmary졸업(Th.  D),미국  Reformed  Theologica Seminmary졸업(Ed.D),  미국  Kernel University  조직신학교수  및  학장,  미국  Life  ChristionUniversity  조직신학교수 및 학장, 대신대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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