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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축하의 문화적 의미
성탄 축하의 문화적 의미
  • 교회협동신문
  • 승인 2019.12.20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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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수목사
전)온누리수련원장

 

이인수목사 전)온누리수련원장
이인수목사 전)온누리수련원장

메리 크리스마스란 용어의 뜻 merry(즐겁게) Christ(그리스도) mass(미사,예배,경배) 이 세 단어가 합성해 구성된 용어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 적막감에 잠긴 베들레헴 지경은 군인들의 말굽소리가 요란했다. 헤롯왕이 내린 두 살 아래 사나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어린 아이를 빼앗기고 통곡해야만 했다. 요셉은 꿈에 주의 사자로부터 일어나 아기와 아기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라는 지시를 받고 급히 애굽으로 피난길에 오른다(마2:13-16). 피난길에 오른 아기 예수님 일행은 한 동굴 안에서 밤을 지내게 되는데 그 동굴 안에는 큰 거미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그 거미는 아기 예수님을 보호해드리는 일이 거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봉사임을 아는 듯, 동굴 입구에다 거미줄을 잔뜩 쳐놨다. 곧이어 헤롯의 추격대가 뒤쫓아왔고 그 동굴 입구에까지 오게 되었다. 그리고는 그 동굴 안을 살펴보려하자 동굴 입구에는 거미줄이 총총히 쳐져 있었고 거미줄 위에는 간밤에 내린 하얀 서리가 내려 쌓여있었다. 이것을 본 추격대는 이 동굴 안에는 사람이 출입한 흔적이 없다고 여기고는 그 동굴 앞에서 떠났다. 그래서 아기 예수님은 무사히 밤을 지내고 어려운 고비를 넘길 수가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크고 작은 트리들이 세워진다. 트리마다 예쁜 장식과 크고 작은 선물, 하얀 눈을 상징하는 흰 솜 그리고 금줄, 은줄이 달린다. 반짝반짝 빛나는 금, 은줄들은 줄에 서리가 쌓인 거미줄에서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수 년 전 미국 보스턴의 가까운 어느 도시에서 성탄을 축하하기 위해 시청 앞에다가 예수 탄생 장면을 모형으로 만들어 놓았다가 뜻하지 않은 곤욕을 치른 일이 있었다한다. 어떤 장난꾼이 아기 예수를 훔쳐간 것이다. 예수님 아버지, 어머니,  동방박사 세 사람 다 그 자리에 있었고 그리고 아기 예수를 쌌던 포대기와 마구유도 그대로 있었다. 그런데 예수만이 없어진 것이다. 모든 것이 다 있다 해도 있어야 할 아기 예수가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래서 당황한 시 당국은 라디오를 통해서 매일같이 아기 예수를 가져오라고 호소했다 한다.

  그러면 우리들의 상태는 어떠한가? 아기 예수가 우리 마음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노는데 열중하다가 예수를 도둑맞지는 않았는가? 화려한 파티나 훌륭한 음악회도, 값비싼 선물도. 요란한 장식도 모두가 다 예수 없는 크리스마스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다.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나심과 함께 그 족보와 탄생장소 등은 명시되어 있으나 탄생년도나 날짜나 요일에 관해서는 기록이 전혀 없다.

12월 25일 예수탄생일로 정한 제일 오래된 고대의 기록이라는 안디옥 교주인 페오필드로스의 기록(751-783)의 학자들 간에는 위장이라고 단정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구도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이 언제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물론 초대 교회의 문헌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만찬을 행하시면서 나를 기념하라고 하심으로써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고 명령하셨지(눅22:18-19) 자신의 태어난 날을 기념하는 것에 관해서는 어떤 언급도 한 적이 없다. 사도 바울도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주의 죽으심을 전하라고 명령했다. 따라서 12월 25일이 예수님의 탄생하신 날이라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며 초대 교회는 예수님의 탄생일보다 에수님의 죽음과 재림에 관심을 집중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이 4세기에 이르러 구원자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관습이 이미 서방교회에서 보편화되어있었다.

필로칼스루스력의 A.D 354년 복사본은 12월 25일 성탄절을 교회의 명절로 인정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최초의 기록이다. 이후 서방교회 즉, 로마 카톨릭 교회에는 성탄절을 당시 오래된 로마인들의 국가축제일인 태양신(sol)의 태양기념일로 동지제일(冬至祭日)인 12월 25일에 지킬 것을 명령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A.D 313년 기독교는 로사의 공인된 종교가 되었고 A.D 380년 데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었다. 따라서 무적(無敵)인 태양의 탄신일을 구원자 예수님의 생일로 바꿨다는 것은 서방교회가 로마의 문화를 기독교의 문화로 변혁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서방교회와 다르게 동방교회는 1월 6일을 주님의 육체적인 생일과 영적인 생일로 성수하는 것이 4세기 초엽의 379년부터 공식화된 것으로 보인다. 혹자는, 그리스도와 미사의 합성된 크리스마스라는 단어가 성경에 나오지 않고 12월 25일이 원래 로마의 태양신의 탄생을 축하하는 축제일이기 때문에 이교적인 크리스마스를 지키지 말아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탄절의 본고장인 이스라엘의 베들레헴에서는 교회에 따라서 12월 25일 이외에도 1월 6일과 1월 19일 등 년중 3번씩이나 성탄절 축하가 열린다고 한다.

(1) 예수의 이름은 헬라어이고 히브리어로는 메시아라는 말이다. 메시아란 한마디로 번역하면 구세주라는 뜻으로 ’우리 인류를 구해주신‘ 이라는 뜻이다. (2) 에수님의 가족관계는 육신의 아버지 요셉, 어머니 마리아와 그의 동생들인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그리고 누이들이라 했다. 이는 성경 상에 하나라 했으나 복수로 되어 있음을 보아서 하나가 아닌 둘 이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3) 이러한 예수님의 가족관계에 대한 세 가지 학설이 있다. 하나는 에피파이어스설이라 하여, 예수님의 형제란 요셉의 전처 소생으로서 예수와는 이복형제라는 설이 있고, 두 번째로는 피오로니어스설이라 하여 이는 성모마리아의 동생인 알페오의 아내인 마리아에서 난 자식들이라 하여 이러한 학설은 카톨릭 교회의 정설이기도 하다. 세 번째는 헤비디오스설이라 하여 예수님의 자연스러운 동생들로서 즉, 요셉과 마리아의 자식으로 예수 출생 후 계속 출산한 자식들이라고 한 이러한 학설은 중세기 때에 카톨릭의 영원 동정녀설에 대해 압도된 프로테스탄트의 정설이라고 한다.

(4) 아기 예수의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동쪽으로 약 2500km 떨어진 페르시아에서는 천문학과 점술을 연구하는 학자들인 동방박사에 관한 이야기는 성경에만 기록된 이야기로만 전해져 내려왔다. 어떤 역사의 기록이나 문헌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러던 것이 1250년대에 들어와서 마르코폴로가 페르시아의 싸비시라는 곳을 들렀을 때 그 곳에 무덤이 있었는데 세 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한다. 그 비석을 자세히 보자. 아기 예수 탄생했을 때에 베들레헴까지 찾아가서 아기 예수에게 경배했던 동방박사들의 무덤이었고 그들의 행적에 관한 비문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이 비문을 소개하면서부터 동방박사들의 이야기는 성경에만 나타난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더 확증하게 된 것이라 했다. (5) 그리스도와 미사(예배)가 합해서 구성된 용어인 크리스마스에 관한 성서적 근거로는 마태복음 1장과 누가복음 2장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마치 바늘과 실의 관계처럼 성탄의 널리 유행하는 크리스마스의 관습은 고대 에굽에서의 동지 제때에 나뭇가지 장식의 로마축제 행렬에서 촛불을 단 월계수 나뭇가지에 장식을 옛날 성목(聖木) 숭배에서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한다. (6) 크리스마스 트리에 전나무를 이용하는 것은 예기(禮記)에도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으나 그 중 가장 신빙성 있는 것이 마틴 루터가 크리스마스 전날 밤 하늘에 별이 비치고 그 밑에 상록수가 서있는 모습에 깊이 영감을 받아 그 나무를 자기 집에 자식한 것이 전해져 내려왔다는 이야기가 있고 또 다른 이야기로는 8세기경 독일에 파견된 오딘 선교사가 신성하다는 떡갈나무에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야만적 풍습을 중지시키기 위해 옆에 전나무를 가리키며 이 나무를 가지고 집에 돌아가 아기 예수 탄생을 축하하라고 설교한 데서부터 비롯되었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고도 한다.

(7) 또한 산타클로스의 유래는 지금으로부터 약 1729년쯤 아시아의 서쪽 끝에 러키아 라는 나라에 파타라스시라는 도시가 있었다. 그 곳에 세이트리콜라스라는 마음씨 착한 주교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남몰래 많은 선행을 베푸는 분이었다. 그가 가난한 이달의 집에 몰래 금화를 놓아두거나 양식을 놓아두고 가는 이름 모를 그를 사람들은 하나님의 보낸 천사라고들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가 바로 세이트리콜라스 주교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에 대한 이야기가 널리 퍼져나갔다.

(8)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그 곳으로 이주했던 네덜란드인들이 세이리콜라스인 그의 이름을 신태콜라스로 불렀는데 이 발음이 영어로 바꾸어서 산타클로스로 정착되었다 한다. 그래서 그 후 크리스마스가 전 세계에 알려져 착한 어린이들에게 몰래 선물을 놓고 가는 할아버지를 산타클로스라고 부르는 것이 유래가 되었다. 또한, 산타클로스의 붉은 복장은 1931년 미국의 헤던선드볼롬이 코카콜라에서 그린 그림에서 유래한 것이라며 그 모습은 흰 수염을 기르고 두건이 달린 붉은 옷을 입은 노인으로 상징된 것이라 한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자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요3:16).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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