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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품꾼이다
나는 품꾼이다
  • 교회협동신문
  • 승인 2019.10.30 2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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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윤목사
별사랑교회 담임
신동윤목사
신동윤목사

1,000만 관객을 훌쩍 뛰어넘은 영화(광해, 왕이 된 남자)를 본 적이 있습니다. 광해군 8년 역사에서 사라진 15일간의 행적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누군가 자신의 목숨을 노린다는 두려움으로 점점 난폭해져 가던 광해, 그는 도승지 허균에게 자신을 대신할 대타를 찾게 합니다. 허균은 왕과 똑같은 외모에 광대 짓으로 왕의 흉내도 완벽하게 내는 하선을 찾아냅니다.
하선이 왕을 대신하게 되면서 예전의 난폭했던 왕의 모습은 사라지고 잘 웃고, 인간미 넘치는 모습을 보여 주기 시작합니다. 법도를 모르기에 그냥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말하고 시행하게 됩니다.
중간중간에 빵 터지는 장면들 때문에 많이 웃었던 것 같습니다. 비록 가짜 왕이었지만 왕의 권위를 벗겨 내고 왕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모습에서 참된 리더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둘째 아들은 육신의 본능이 이끄는 대로 살다가 탕자가 됩니다. 사람대접도 받지 못한 채 돼지가 먹는 음식으로 배를 채웁니다. 마침내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의 환영을 받습니다.


그런데 탕자는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면서 아들의 신분이 아닌 품꾼의 하나로 받아달라고 요청합니다(눅15:19-20). 아들과 품꾼은 하늘과 땅만큼 이나 차이가 있습니다.
아들은 부모가 누리는 혜택과 도움을 받습니다. 좋은 환경, 좋은 교육, 좋은 음식과 더불어 삶의 풍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종은 그와는 반대입니다.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며 누리고 싶은 것을 누리지 못합니다. 주인에 얽매여 살아야 하는 비참한 신세입니다. 더욱이 품꾼은 모든 종들 중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종입니다. 오늘 식으로 하면 정규직이 아니라 비정규직이요, 계약직이 아닌 일용직입니다. 언제라도 주인이 내보낼 수 있는 파리 목숨입니다.
이 사실을 잘 알면서도 탕자는 굳이 품꾼으로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그가 아들의 위치에서 살아갈 때 얼마나 오만하고 얼마나 더럽게 살았습니까? 아버지의 유산으로 창녀와 놀아났습니다. 돈에 눈이 멀어서 아버지의 품을 답답하게 여겼습니다. 부모의 은혜로 살아온 줄 모르고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된 줄로 착각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을 잃고 보니 비로소 자기가 누구인지 제대로 봅니다. 돼지들과 더럽게 살다 보니 아버지의 아들이었음이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요? 후회가 막심합니다. 아들에서 품꾼으로 내려오니 자기가 얼마나 하찮고 보잘것없는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아무도 자기를 돌보지 않습니다.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다 보니 아버지 외에 소망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품꾼의 자세로 돌아갈 때 아버지는 그를 불쌍히 여깁니다. 멀리서 아들을 바라보며 달려가 끌어안고 입을 맞춥니다. 지금이 너의 인생에서 가장 깨끗하다고 인정합니다.

치유란 자기가 누구인지 아는 데서 옵니다. 내가 누구인가? 내가 아들이 아닌 품꾼인 것을 발견할 때 힐링은 찾아옵니다.
아들이었을 때 자괴감에 빠져 자신이 더러워서 미칠 지경입니다. 그러나 품꾼임을 고백할 때 더럽지만 아버지의 은혜로 깨끗해질 수 있다는 자존감으로 바뀝니다.
품꾼임을 고백할 때 아버지께 돌아갈 용기와 희망이 솟아오릅니다. 품꾼임을 고백할 때 삶이 곧 행복이요, 감사입니다.

일본 최대 카레 전문점 프랜차이즈인 ‘코코이찌방야’(‘이곳이 최고야’의 뜻)가 있습니다. 나고야 인근에 본사를 두고 있습니다.
일본과 해외 6개국 점포까지 합치면 매장이 1,333개에 이르고 연간 8,000만 명분의 카레를 판매합니다. 성공 비결은 창업자 무네쓰구 도쿠지 씨의 독특한 경영 방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가맹점을 내려면 우선 본사 직원으로 입사해 일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1981년 도입 이래 32년째 시행하고 있는 원칙입니다.
사원으로 입사하면 제일 아래 단계인 9등급이 되고, 그 후에 점점 급수가 올라갑니다. 처음엔 적정한 양으로 밥 푸기, 설거지부터 배웁니다. 4등급이 되면 점장 준비생이 되고, 3등급이 되면 자기 가게를 열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이런 시스템을 거쳐 창업하기까지는 5년 정도가 걸립니다.
보통 가맹점을 내려면 6개월 정도면 충분한데 5년이라니. 이처럼 고된 훈련과 경험을 쌓은 뒤에야 어려움이 닥쳐도 극복할 힘을가질 수 있다고 합니다. 카레의 독특한 맛을 내는 것뿐 아니라 고객을 최고의 선생으로 모시며 가게 전반의 모든 것을 잘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품꾼 정신이 아닐까요?
자신을 하늘 아버지 앞에서 아들로 여기지 마십시오. 자만과 높음을 자랑하지 마십시오. 부족한 자요, 미완성이요, 아무것도 아닌 품꾼으로 고백하십시오. 그때 비로소 치유가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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