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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과 믿음
신념과 믿음
  • 교회협동신문
  • 승인 2019.10.06 17: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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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진 장로
생명샘교회 원로
김호진 장로
김호진 장로

 

신념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일 뿐.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요 앞으로 이루어질 것을 희망하는 마음 다짐이며 각오이다.
믿음은 확신하며 행함으로 이루져서 열매가 열리는 것이 산 믿음이며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그 믿음대로 행하여 열매가 있을 때 바로 이것이 참 믿음입니다.
로마서 1:16~17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부부간이라도 사소한 말싸움 때문에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합니다. 성도들이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교회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를 배려해야 하고, 서로를 높여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이것이 도리입니다. 남을 높여주는 것도 습관화 되어야 합니다.
언제든지 남을 깍아 내리는 사람이 있어요. 그것도 버릇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겸손을 보이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본체시나 사람의 몸이 되었고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순종했습니다.
우리가 무엇이관대 하나님의 아들도 이렇게 순종하시거든 교만하고 순종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말끝마다 “ 당신이 뭘 알아요?” 라고 하며 시도 때도 없이 남편을 구박하는 부인이 있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에서 그 부인에게 아주 급한 전화가 왔습니다.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해 중환자실에 있으니까 빨리 오라는 전화 였어요! 부인은 전화를 받고서 정신이 아찔해지는 겁니다. 그래서 택시를 잡아타고는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부인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남편이 죽어서 하얀 천을 뒤집어 쓰고 있는 겁니다.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멀쩡하던 남편이 하루 아침에송장이 되어서 누워있으니 말이 안 나올 지경이지요! 허구 한 날 남편을 구박했던 부인이었지만 막상 죽은 남편을 보니까 그렇게 서러을 수가 없더래요!
그래서 부인은 죽은 남편을 부여잡고서 대성 통곡을 하면서 한없이 울었답니다. 부인이 한참동안을 그렇게 울고 있는데 남편이 슬그머니 하얀 천을 내리면서 숨을 헐떡 거리면서 말을 하더랍니다.
“여보! 나 아직 안 죽었어!”
그러자 깜짝 놀란 부인이 울음을 뚝 그치면서 뭐라고 그랬는지 아세요? “당신이 뭘 알아요!? 의사가 죽었다는데 !”
뭐든지 한번 사람을 무시하기 시작하면 언제나 그렇게 사람이 만만해 보이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정말 교양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하겠지요!
특별히 믿음에 있어서는 진리의 기둥이 되는 성경 말씀을 붙들고서 이 진리에 굳게 서시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기록하면서 그 첫머리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택정하셨는지,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사도가 되었는지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장 8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주님께 받은 사명, 즉 복음을
전하는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로마로 가려고 무척 애를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스스로 말합니다. ‘나는 복음에 빚을 진 사람이다, 그러므로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이 복음을 로마에 가서 전 해야겠다‘ 는 것이 였습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전하고자 하는 그 복음 내용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불과 100년, 200년 전에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기독교가 들어왔을 때에는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목슴을 내 놓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였습니다. 일본 강점기에도 그랬고, 6.25전쟁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다는 것이 자랑스럽지 못한 것처럼 여겨졌고, 숨어서 예수를 믿어야 했기 때문에 떳떳하지 못한 것처럼 여겨졌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복음의 핵심을 알고 나면 복음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이 복음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것인지를 알게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울신학은 ‘이신칭의’ (以信稱義)입니다.
사람들은 모든 종교는 다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겸손인줄 알지만 목마르다고 아무 물이나 마실 수는 없지 안습니까?
기독교를 십자가 걸친다고 다 같은 교회나 교인이 아니올시다.
우리는 주 예수그리스도의 위대하심을 믿는 자들로 영광스럽게 여기고 자존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참 진리를 알기 때문에 이것을 모르고 타 종교를 따르는 자들을 불쌍
히 여길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결코 다른 잡종의 종교와 사이비 종파들과 화합할 나약한 종교인이 아닙니다.
일반 종교가 드라마라면 기독교는 다큐멘터러입니다.
우리는 사실을 믿고 불교는 가상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상이요 허구이며 거짓말이인 사단의 말입니다.
이 차이점을 알고 주님께 감사하면서 힘을 내어 전도하고 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협력하는 성도가 되었으면 합니다.
“다른 이로써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아멘!!! (행 4:12)
할렐루야!
               

                               김호진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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