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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다문화 가정의 웃음소리
한 다문화 가정의 웃음소리
  • 교회협동신문
  • 승인 2019.10.06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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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애선교사
암미선교회 대표
김영애선교사
김영애선교사

 

한 다문화가정의 부부가 3개월 된 딸아이와 함께 주일예배에 출석했다. 아기 때문에 에어컨을 피해 뒷자리에 앉은 모습이 평화로워 보였다. 한국인 아빠는 아기가 그의 작은 눈을 닮지 않길 바랐는데 다행히 엄마를 닮아 눈이 크다며 좋아했다. 아기 엄마도 연실 행복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이 부부가 교회를 처음 나오기 시작한 것은 지난 해 이른 봄이었다. 남편은 신앙에 별 관심이 없었지만 아내의 바람으로 교회를 찾았노라고 했다. 남편의 성격은 소탈해 보였다. 결혼하려고 한국 여성들과 여러 차례 선을 봤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아 결국 비행기를 타고 필리핀 신부를 데려왔다며 웃었다. 또 심장 수술을 한 적이 있다는 그는 평생 약을 먹어야 하고, 사계절 내내 바깥에서 일하는 편이어서 힘들다고도 했다.
5형제 중에 막내라는 그는 작은 아파트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이혼 후 혼자가 된 형과 함께 살고 있었다. 연로하신 아버지가 치매에 걸려 똑같은 말만 반복하곤 했다. 어머니는 복음을 전할 때마다 관심을 기울이며 쫑긋이 듣는 모습에 반가웠다. 무엇보다 며느리와 말이 통하지 않는다며 답답해 하고 있었다. 한국말로 아무리 살갑게 말을 건네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심방 중에 예배드리는 자리에서 며느리는 이상한지 경계하는 눈빛으로 계속 시아버지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듯 심방을 다니면 다문화가정마다 갖가지 애환과 마주치게 된다. 대부분 안타까운 형편이었다. 이 가정에 시집 온 며느리는 스트레스가 심했는지 임신해도 유산이 되곤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어머니가 싫었던 며느리는 낮에도 아예 방문을 잠그는 시간이 늘어갔다. 그녀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고, 심방을 가도 반가워하지 않았다.
그런데 며느리의 얼굴에 점점 웃음꽃이 피기 시작했다. 남편의 극진한 사랑 덕분이었다.
    비록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해도 그의 적극적인 사랑 표현은 아내를 기쁘게 했고, 마침내 시어른들에게도 마음을 열더니 이제 시아버지 옆에 앉아 마치 딸처럼 웃고 떠들 만큼 편안해졌다. 심방하는 자리에서도 따뜻한 눈길로 아내의 사랑을 확인하려는 그였다.
“내가 좋지?”
어머니에게 짓궂게 우스갯소리를 할 줄도 안다.
“기껏 아들을 키워놓으니까 며느리에게 빼앗겨 마음 상하시죠?”
그러자 며느리를 향해 말씀하시는 시어머니의 표정이 인자하다.
“이런 남편을 어디서 만나, 안 그러냐?”
심방을 갈 때마다 화목한 가정으로 되살아나고 무엇보다 믿음이 자라서 기뻤다. 치매였던 시아버지도 거의 온전해지셔서 신기할 정도였다. 곧이어 며느리의 임신 소식이 들려서 기쁨이 배가 되었다.
   그 무렵 심방을 가자 이제 작은 체구에 만삭인 아내는 남편을 바라보며 다정하게 웃고 있었다. 귀여운 외모에는 우울했던 지난 날의 모습을 조금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굳이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라는 성경말씀을 몰라도 아내를 극진히 사랑한 결과, 결혼한 지 2년 밖에 되지 않았으나 한국말을 어느 정도 익힌 아내는 시부모까지 섬기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드디어 아기도 낳았으니 이제 결혼생활은 문제가 없을 듯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진리임을, 이처럼 가정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실을 일깨우고 있었다.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암미가 다문화센터를 열면서 그동안 여러 다문화가정을 만났지만 복된 가정이 된 첫 케이스였다. 화초밭에 처음 꽃 한 송이가 피어난 것만 같다.
   말은 안 통해도 선교는 통한다(김영애 지음, 샘솟는기쁨 발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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