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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 강해(인간의 고귀함과 비참함)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 강해(인간의 고귀함과 비참함)
  • 강영철 기자
  • 승인 2019.07.05 1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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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철목사
참된교회 담임
하이델베르크 시내
하이델베르크 시내

 

1. 타락 전 인간의 상태 (고귀함)


제 6문 :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그렇게 악하고, 잘못되게 창조하셨는가?  답 : 전혀 그렇지 않다. 단지 하나님은 인간을 선하게, 그리고 그의 형상을 따라서, 즉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 그의 창조자를 바르게 인식하고, 마음을 다해 그 분을 사랑하며, 그 분을 영광스럽게 하고, 찬양하기 위해서 영복 안에게 그 분과 함께 살 수 있었다.
가. 사람의 타락 전 상태는 6일째 창조(피조물의 왕. 창2:19)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선하게 창조되었습니다. 하등에서 고등으로, 또한 인격(몸, 영혼. 창2:7)적으로 창조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내 외적 기능과 행위들을 수행하도록 하였으며 하나님의 형상(완전한 선, 지혜, 거룩, 주인. 창1:27-28)으로 창조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인간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가를 알려 주는 것이며 교회에 그 내용이 심겨져야합니다. 
나. 사람을 만드신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과 그 분을 아는 것 (하나님을 알고 영화롭게 하는 것은 인간 고유의 사역)입니다.
인간의 만족과 행복(행복은 하나님의 기쁨과 천상적인 복으로 이루어지는 것), 인간은 하나님의 속성을 선포하고, 드러내기 위해서 창조 (택자는 구원을 통하여 긍휼을 드러내고 유기자는 징벌을 통하여  의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인류의 보존(계시를 드러낼 대상, 서로서로에게 의무, 친절을 베풀 의무) 성도는 이러한 인간의 목적을 가장 잘 드러내는 존재입니다.
다.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은 영이신 분으로서 육체를 가지고 계시지 않음)

① 인간의 영혼의 본질에 속한 것으로서 지, 정, 의와 이성, 영적이며, 불멸하는 영혼 ② 하나님의 의지와 사역, 그리고 그 분에 대한 우리의 모든 본성적인 지식과 생각 ③ 의롭고, 거룩한 행동, 그리고 의와 거룩을 향한 성향, 의지 ④ 하나님과 온전히 교제함으로 누리는 지복, 행복, 영광 ⑤ 물고기, 새, 짐승들을 향한 지배권.  인간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어느 하나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종합적이고, 전인적이며,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 누리는 모든 은총을 통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라. 하나님이 인간을 그 자신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서 창조했다(창 1:26-27)고 하는 명제의 의미에 관한 것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 관점
1. 중세기의 가톨릭 신학자들은 이레니우스가 제시한‘형상’과‘모양’의 구분에 근거하여 상세한 설명을 전개함으로써 독특한 인간론을 창안하였다. 그들은‘형상’을 이성과 자유의지라는 타고나는 능력이라고 보고,‘모양’은 그 위에 덧붙여지는義라는 부여물이라고 보았다.
2. 가톨릭 신학자들은 주장하기를 타락 이후에 원래부터 있던 자연적 기능[이성과 자유의지]은 흐려지지 않고 그대로 있으나, 그 위에 덧붙여졌던 초자연적 부여물인 의(義)는 파괴되어 사라졌다고 하였다. 죄인이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안에서 조성되었기 때문에 상당한 지적 능력을 보존하고 있으며, 자유롭게 선을 선택할 수 있으며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모양 안에서 조성되었기 때문에 육적인 욕망들을 억제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영생을 상으로 받을 수 있는 자질을 부여받았다는 것이다.
3. 영혼의 기원에 대하여 전통적 가톨릭은 창조설을 지지한다.


※ 루터교의 의와 거룩의 공리
1. 종교개혁자들은 일반적으로 로마 가톨릭 교회가 성경 이외의 의미를 부여하면서까지‘형상’과 ‘모양’을 구분하는 방식을 거부하였는데, 루터교파 사람들은 ‘형상’이라는 것은 그 핵심에 있어서 하나님을 도덕적으로 닮은 ‘모양’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2. 루터는 창세기 1장 26절, 형상이라는 것은‘기억, 지성, 의지’라는 삼중적 기능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어거스틴의 가설도 거부하고, 또한 자연적 기능과 초자연적 기능으로 구분하여 보는 중세기의 이분법적 구조도 거부했다.
3.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이 아담에게 주셨던 의와 거룩과 지혜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 세 가지는 아담의 타락 시에 상실되었다고 주장했다.“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나의 이해는 다음과 같다: 아담은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것을 알았으며 믿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는 전적으로 거룩한 삶을 살고 있었다. 즉, 그는 죽음이나 어떤 다른 위험을 두려워하는 것도 없었고, 하나님의 총애에 대하여 만족하였다.” 이러한 지혜, 도덕적 올바름, 의지의 자유, 영원한 삶에 합당함(이런 것이 모두 하나님의 형상의 내용이다)은 죄에 의하여 완전히 상실되었고, 이 지상의 삶에서는 오직 믿는 자들에게만 복음에 의하여 회복되었다(고전 15:48; 엡 4:21-24). 루터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하나님의 형상 정의 밑에 깔려 있는 반(半) 펠라기우스주의, 즉 인간은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자신의 타고난 능력으로써 기여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하여 문제를 느꼈기 때문이다.
4. 영혼의 기원에 관하여 루터와 그의 추종자들은 영혼전이설을 선호했다. 영혼전이설이란(유전설)원죄 개념과 가장 잘 일치하며, 또한 각 개인의 죄 된 영혼을 하나님이 그 때마다 창조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차단할 수 있다고 그들은 주장했다.


※ 어거스틴과 일부 개혁주의 및 복음주의 신학자들의 관점
1. 후대의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형상의 넓은 차원과 좁은 차원을 구분했다. 넓은 차원은 죄인들의 경우에도 남아 있고, 좁은 차원은 죄인들의 경우에는 상실되어 없다고 그들은 보았다. 예컨대 바빙크(Bavinck)는 넓은 의미의 하나님의 형상의 세 가지 측면을 다음과 같이 열거했다: (1) 인간은 짐승과는 달리 영적 본질 내지 불멸하는 영혼을 갖고 있다. 이 덕분에 인간은 땅을 초월한다. (2) 인간은 자의식을 가진 존재라는 특징을 갖는데, 이 자의식은 사고하는 것과 의지하는 것과 느끼는 것(감정)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3) 심지어 몸도 하나님의 형상을 표현하는 것들 가운데서 제외되지 않는다.“몸이 영(spirit)의 도구요 기관으로 사용되는 한도 내에서, 몸은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일하시는 방법을 어느 정도 닮은 무엇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 방법이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2. 하나님의 형상의 좁은 차원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 의, 거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것은 초월적으로 주어진 선물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하여 피조 된 인간에게 내재적인 것이라고 바빙크는 보았다. 바빙크는 이원론을 피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형상의 넓은 차원과 좁은 차원을 통전적으로 연결시키고자 했으며, 그는 이런 관점을 하나님 형상의 “유기적 관점”이라고 불렀다.
3. 영혼의 기원에 대하여는 대부분의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칼빈을 따라서 창조설을 지지한다. 칼빈은 영혼이 부모로부터 자녀에게로 넘겨진다고 하는 생각은 근거 없다고 본다.
결론 : 세상속의 신자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하나님의 다스리심)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 그것 인간됨입니다.  

강영철목사 참된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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