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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의달을 맞이하여] “6.25 용서하자, 그리고 잊지는 말자”
[호국보훈의달을 맞이하여] “6.25 용서하자, 그리고 잊지는 말자”
  • 강영철 기자
  • 승인 2019.06.13 18: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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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수 목사
6.25참전,무공수훈,국가유공자
(전)온누리수련원장

 

이인수 목사6.25참전,무공수훈,국가유공자(전)온누리수련원장
이인수 목사
6.25참전,무공수훈,국가유공자
(전)온누리수련원장

 

“6.25전쟁의 전세를 역선시킨 결정적 계기의 전공에 참전한 필자가 소속된 학도병의 용맹과 희생”

‘상기하자, 무찌르자 공산당’ 이는 전에 많이 불러졌던 구호였다. 상기하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못하게 하는 환경문제인지 6.25전쟁일이 잊혀진 전쟁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그러나, 6.25를 잊어서는 안된다. 인류역사는 전쟁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인류역사는 전쟁의 역사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가 지혜이고 미래이기 때문이다. 아픈 역사를 기억할 때 위대한 미래를 열어갈 수 있는 것이다.

전에, 이스라엘과 아랍사이에서 일어났던 6일간의 전쟁이 있었던 일이다. 미국공항에는 중동행 비행기를 타기위해 청년학생들이 몰려들었다. 이청년들은 미국에서 공부하는 유대인학생들로서 그들은 조국이 사느냐, 망하느냐의 흥망성쇄의 기로에 처해있는데 공부는 해서 무엇하느냐면서 우리조국을 구출하고나서 조국의 영광을 위해 공부해야지 한다는 소명의 의지를 가지고 책을 덮어놓고 전쟁터로 자원해서 가는 학생들이었다.

그러나, 이와 반대적으로 미국공항에는 비행기에서 내리는 청년학생들이 있었다. 이들은 아랍공화국의 고관직 자식들과 부잣집 자식들로서 전쟁터를 피해 안전지대인 미국으로 도망쳐온것이다. 이들은 조국이야 망하던 말던 혼자만 살면된다고 하는 이기주의자로 소명의식이란 전혀 없는 표본 인물들이었다. 소명의식이 투철했던 이스라엘은 결국 6일만에 크게 승리하고 말았다.

6.25사변은 세계제2차대전의 마지막 내리는 전쟁이었다. 1903년 레닌, 스타린, 김일성등 3인이 레닌의 공산당 비밀조직으로 불쇄비키당을 세워 소련 중국 북한등이 공산사상으로 연대하여 강한 조직으로 기반을 잡았다. 그후 레닌이 사망하자 스탈린이 불쇄비키당을 장악하고 혁명을 일으켯으며 제2차 세계대전을 스탈린이 조정하면서 스탈린은 김일성, 모택동등과 함께 공산진영을 좌지우지하게 된다. 그리고 일본이 패망하자 김일성이 공산주의 종국인 중공및 소련과의 야합또는 사주받아 6.25의 불법남침을 감행함으로써 평화스럽던 우리 대한민국의 운명이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했을때 피난민의 행렬이 도로를 꽉메워 남으로 남으로 향해 내려가는 그 속에 끼었던 필자는 피난민 행렬에서 뛰쳐나와 인근에 주둔하고 있던 772부대에 자원입대하였다.

그 당시에 그 부대는 필자가 포함된 학도병 722명으로 새로 편성된 육본 직활 독립 제1유격대 소속으로서 7일간의 군사기초훈련을 받고 군번도 계급도 없는 학생복장 그대로의 자기키만한 구구식 장총을 받아메고 50년 9월13일 출전으로 부산항에서 L,S.T 배에 승선하여 다음날 새벽 4시반 적진후방이었던 경북 영덕군 장사리 해변에 도착상륙전에 들어갔다. 이때 우리의 임무는 맥아더장군의 인천 상륙작전을 성공하기위한 양동작전으로 적군의 주력보급로인 포항전투와 영천방면 국도를 완전 차단시키고 적후방활동을 마비시키며 적2개연대와 전차4대를 영덕방면으로 유인하여 경주부산을 사수하고 서울을 수복하는 6.25전쟁의 전세를 역전시킨 결정적 계기를 마련함에 다대한 전과를 올림으로서 1953년 12월 27일자(육군고부제 138401호)로 우국청년(의사)라고 호칭, 이처럼 학도병들의 용맹과 희생한 전과를 올림에 대해 맥아더장군은 우리부대원들의 전공을 높이사서 최고 찬사의 친서를 보내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투에서 우리 학도병의 전사자가 300명 부상자92명 상륙작전에 승선했던 L,S.T 한척의 침몰등을 당했다. 이처럼 6.25는 한민족안에서 서로 싸우고 할퀴며 피흘렸던 전쟁으로 인민군이 낙동강까지 내려오기도 했고 우리 국군이 압록강까지 올라가기도 했지만 결국은 3년만에 휴전으로 그치고 말았다 그러니까 6.25는 누가 승리하고 누가 패했다고는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울정도로 어떻게보면 무승부의 전쟁이었던 같고 또, 결말을 맺지못한 전쟁이었다고 하겠다. 그후로 비록 휴전은 되었지만 지금껏 남북은 서로 대립과 긴장으로 적대감이 계속되어가는 비극의 전쟁은 끝나지 않고 있으며, 아직도 수많은 전우들이 적의 총탄에 쓰러진채 이고지 저능선 조국산천에 있는 영혼들이 가족의 품을 기다리다 잠들고 있는것이다.

현재 생존에 있는 6.25참전 노병들은 80나이를 훌쩍넘어 날로 쇠약해가고 질병에 시달리면서 남은 여생 길어야 4~5년이다. 해가갈수록 저세상으로 떠나는 노병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2014년 4월당시의 현재로 보훈처 자료에 의하면 참전유공자 등록현황에서 80세~84세가 116.310명, 85세~89세는 35,438명 90세~94세는 2,932명 95세~99세는 186명 100세이상 23명으로 나타났고 6.25전쟁당시 한국전을 지원한 국가수는 63개국으로 국방부가 발표했고, 그리고 6.25전란으로 입은 전체적 피해와 손실은 다음과 같다.

유엔군 전사자 36,772명, 한국군전사자 27만명, 유엔군 부상자 107.186명, 한국군부상자 70만명, 학살된 민간인 3,736,000명, 납치된자 123,000명, 행방불명자 300,000명, 전쟁과부 323,000명, 전쟁고아 530,000명 이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교회가 입은 피해는 공산당에게 학살당한 교역자가 535명 불탄교회가 267개 교회가 전소되었고 파괴된 교회당은 1955개 교회 등이다.

B.C 931년 솔로몬왕이 죽게되자 이스라엘 왕국은 권력투쟁으로 남과북으로 분리되고 말았다. 북은 이스라엘이고 남은 유대였다. 서로 대립과 서로다툼과 서로 이기기위해 주변의 강대국을 우방으로 삼다가 결코 그 우방에게 멸망 당하고 말았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앗수루에게 멸망당하고 남유다는 바벨론에게 멸망달하고 말았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은 2500년 남짓 나라없는 백성으로서 결국 상처투성이가 되고 멸망했다는 사실을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가르쳐주고있다. 김영삼 전대통령이 그의 취임식에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는 동족보다 더 나은 우방은 없다. 아마 그저 넘길수있는 예사로운 말같지만 그러면서도 둘다 나누어져 싸움에 이기기 위해 서로가 우방을 끌어들여 그리고는 우방하고는 짝지지만 동족끼리는 짝하지 못했다. 북은 북대로 남은 남대로 그랬다. 그러나 우방보다 그래도 같은 핏줄을 나눈 동족이 더 중요하다는것이 전 김대통령의 입으로 선언되었다는것 이는 남과 북 관계에 획기적인 정책의 변화를 마음속에 내다봤던것이라고 하겠다.

끝으로, 민주주의란 나라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하는 말이 있지만, 6.25 희생자의 죽음이 결코 헛되이 돌아가지 않도록 평화적 통일로 민주적 질서를 뿌리내리도록 국민이 함께 노력해야할 것이다.

옛 성인들은 아무리 나라가 어렵고 힘들어도 혼(魂)은 살아서 나라를 지키려고 목숨을 역경과 시련을 극복해 왔다. 남북 분단의 아픔 6.25란 동족상징이 멸시와 천대를 받아 이를 악물고 이겨냈다. 우리는 70여년간 오직 조국 근대화 산업화 선진국을 목표로의 결과만을 성취하기 위해 속도적으로 달려왔다. 그래서, 역경속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필요악정으로 치부해온 것은 아니겠는가,

성경 창33:1-13 절에서 보면 외서와 야곱형제간의 아름다운 평화의 모습이 나온다. 이같이 남과 북으로 갈라진 우리민족간에 싸인 증오와 갈등의 벽을 허물고 하나되는 통일의 문이 열리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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