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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믿음의 관계 출2:15-3:8
사랑과 믿음의 관계 출2:15-3:8
  • 교회협동신문
  • 승인 2019.05.29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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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철 목사
참된교회 담임
참된교회 강영철목사
참된교회 강영철목사

 

들어가면서

신약을 사는 성도는 대단히 많은 하나님의 구원에 관한 내용을 알려주는 복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구원에 관한 내용은 본문에서 눈에 보이는 현장은 차별과 학대입니다. 그러나 차별과 학대의 도구인 산파, 나일 강이 모세를 구하게 됩니다. 또한 최측근 공주에 의하여 바로의 정책은 실패되는 것입니다. 모세는 정상적이면 불가능한 교육을 오히려 가장 좋은 곳에서 교육을 받는 복을 기록합니다. 일종의 패러독스 역설입니다.

인과관계가 아닌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목적을 세우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시며 완성하실 것이며 우리는 그 과정 속에 있는 것으로 어떤 상황도 하나님은 실패 하지 않으며 성도는 어떤 상황도 손해 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고단하다고 하는 것은 성경 기록에 대한 풍성함을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은 모세를 이런 광경에서 부르십니까?

모세는 지금 80세입니다. 40년을 바로의 궁전에서 교육을 받고 자기의 민족의 위하여 열심을 냈다가 하나님도 자기 백성들에게도 전혀 지원도 신용도 잃어 미디안 광야로 도망 나와 40년을 보내서 모든 것을 체념한 상태에 있는 모세를 하나님은 떨기나무에 붙은 불 가운데서 부르십니다.

나무가 타면서 불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불은 혼자 타고 있습니다. 40년 전에 모세가 하나님 백성을 위한 열심 하루 만에 소진된 내용과 비교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을 소개합니다. 2:24-25절, 3:6절, 여태껏 모세를 방치했다가 하나님이 필요해서 찾아온 것이 아니라 이 땅이 생기기전부터 시작과 시작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써 당신을 소개합니다. 온 천하 만물과 역사의 주인으로써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모세와의 대면에서 맨 처음 꺼내놓는 하나님 당신에 대한 선언이요 설명입니다.

2. 광야 40년 동안 이게 뭔가?

하나님은 뭐하시는가? 하나님 앞에 그가 얼마나 많이 엎드려 기도했겠으며 답답해했겠으며 억울해하며 발작하며 애를 서겠습니까? 40년이라는 시간은 4년과 다릅니다. 그러다 결국은 절망하고 절망을 넘어 체념하고 이제는 아무것도 안 남았을 그 때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꺼지지 않는 떨기나무의 붙는 불은 하나님 마음속에 계속 타고 계셨고 모세가 이게 뭔가 하는 40년 광야생활 동안 하나님은 매 생각 매순간 현실 속에 간섭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모세를 왜 이런 광경으로 부르시어 오고 오는 교회 가운데 교훈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의 백성들의 생애와, 순간과 모든 삶의 정황 속에 그의 능력과 지혜와 열심을 다 동원한 무한한 능력과 은총과 신실하심으로 개입하고 계시다고 증언하는 것입니다.

3. 죄와 비참 가운데서 하나님은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40년 전 자신을 태웠던 불꽃과 대조합니다. 예를 들면 사6:1절, 이사야의 소명입니다. 이스라엘은 신정국가입니다. 하나님의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대행하는 왕인 웃시야가 교만하여 결국 문둥병에 걸려 죽습니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가 부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대행하는 왕이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가 마감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통치가 없는 즉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는 시대에 하나님은 이사야를 보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 아버지이 아버지 되심이며 은혜와 사랑입니다. 100% 하나님의 일이며 그 연장선상에서 이사야를 부르십니다.

4. 모세를 부르시는 과정과 그래서 만들어지는 모세의 정체성을 시90편 기록하여 교훈합니다.

1절,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하나님만 영원하십니다. 영원하다는 말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그는 신실하십니다. 그는 변덕을 부리시지 않습니다. 하다가 그만두는 적이 없고 방해를 받아 실패하는 일도 없으십니다.

3절,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10절, ” 인생은 짧다는 것은 하나님과 비교하여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신실할 수가 없습니다. 존재 자체가 영원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존재 속성 자체가 죄밖에 지을 수 없는 자입니다. 우리는 주의 진노 중에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비교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시며 우리가 누구인가를 비교합니다.

12절,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지혜의 마음은 하나님이 없으면 우리는 죽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게 지혜요, 믿음입니다. 생애 속에서 가졌던 억울한 것들 그 분노, 하나님은 왜 내 소원에 응답하시지 않는가? 하나님은 왜 나로 하여금 왜 무너지게 하고 체념하게 하고 이렇게 살게 내버려 두셨는가가 결국 자신을 포기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이 채운 저들이 하나님의 손에 잡혀, 그 일을 위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증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로 완성하는 것으로 목적으로 하고 있어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비교할 수 없는 사랑과 은혜와 돌보심과 인도하심 속에 있는 것입니다.

5. 예수 그리스도 죽음(성도와 연합), 성령하나님의 사역은 곧 성도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자기부인, 자기십자가) 이게 뭔가? 인생이 뭔가? 하나님은 뭐하시는가? 아무것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40년 동안 모세를 탈진시키고 소진시킵니다. 성도의 현실입니다. 그리스도의 지상사역입니다.

이제 우리는

모든 체념과 절망은 하나님이 간섭하셔서 가지게 된 복된 자리입니다. 누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그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고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습니까?

감사가 없는 것은 본성 속에 아직도 잘나고 싶어서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니라 사람과 세상 앞에서 이름을 내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이란-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되시고 하나님이 나를 당신의 자녀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과 믿음의 관계입니다. 그 모든 특권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근거로 하나님을 채우며 하나님이 목적을 이루어 가는 삶입니다. 상한심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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