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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방해인 산파가 하나님의 도구
세상방해인 산파가 하나님의 도구
  • 교회협동신문
  • 승인 2019.05.04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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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출1:15-22
강영철목사 참된교회 담임
강영철목사
강영철목사

 

들어가면서

이 인구의 의미는 하나님이 약속을 시행하며 은혜로 인류와 세상을 통치하시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창조목표를 이루고자 세우신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은 하나님을 모르며 적대적입니다. 그러므로 애급과 구별이며 자기 백성이 아니기 때문에 차별, 학대(13절)입니다. 그래서 출애굽은 죄로부터의 구원이며 적극적으로 하나님 백성의 진정한 자리 진정한 영광을 위한 자리입니다. 그 내용으로 모든 것에서 하나님이 주인이며 (용서와 기다림) 세상, 시대적 상황이 성도에게 손해될 수 없습니다.(자기유익을 구치 않으며 무례히 행치 않습니다.)

1.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의 목적을 이루시는 것을 모든 것을 동원하여 적대적이며 끝까지 방해합니다.

세상은 방해하고 있습니다. 시대마다 장소마다 세상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나오지만 동일하게 ‘죄’ 의 문제입니다. 고된 노역으로 방해하지만 실패했습니다. 남자 아이 태어나면 죽이라하지만 산파 때문에 실패하였습니다. 남자 아기 태어나면 하수에 던져라 방해강도가 증가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창조역사를 완성하고자 구원역사를 시작하신 것이 창세기였습니다. 그 구원역사는 한 가문에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로 확장이 되고 신약시대에는 전 인류에게 복음으로 허락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성립과 확장과 내용은 하나님의 창조역사와 구속역사의 내용과 완성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가. 하나님 나라 완성을 위하여 애급 산파를 부르십니다.

세상은 그 대표 격으로 바로와 애급이지만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전혀 힘없는 세력인 산파들이 바로에 대항하여 하나님 나라의 설립과 완성을 지켜냅니다. 그래서 더 놀라운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사건으로 시작합니다. 방해하는 죄는 한풀 꺾였지만 여전히 미결수입니다. 형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는 무죄 추정의 원칙으로 세상은 여전히 창조 목적을 이루시는 것을 방해합니다. 구원사역은 아브라함처럼 동일하게 ‘애굽에 산파’ 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나. 우리는 본성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훨씬 세상적인 권세와 조건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지만 성경은 전혀 다릅니다.

신자의 소원은 세상을 이기기 위하여 세상 권세를 달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더 큰 힘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이 오해를 기록합니다. 세례요한의 오해로 시작된 본문으로서 마11:5절,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통치에 큰 세력으로 저들을 구해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봐도 모르느냐? 이게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복음서에서 기적의 수반 되는 기록은 세상의 통치 질서가 상실했다는 의미입니다. 세상의 권세는 다 사망과 죄의 권세입니다. 거기에는 살리는 생명과 의와 거룩 존재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만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우리 인간의 도움을 받거나 우리의 능력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작정하시고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입니다. 산파들이 동원되는 이유이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하여 일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을 드러나는 것으로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쓴다고 표현을 합니다.

2.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산파의 자리이며 하나님의 통치가 시행되는 것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세상의 가치와 평가에서 하찮은 지위에 있고 미미한 존재이고 세상적인 조건으로 아무리 보잘것없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통치에 속해 있으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우리 생애와 존재를 통하여 결실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산파입니다. 이스라엘을 구하며 하나님 나라를 만드는 하나님의 손길들인 것입니다.

눅10:21절, 이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 하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 이다.”하나님의 나라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채우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이유이시고 근거이시고 내용이시고 하나님의 경지인 나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만들려고 우리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어떠하심으로, 그의 백성들의 만족으로 그 아들을 보내셨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고 우리보고 무엇을 만들어 내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어떠하신 것을 받아 누리며 나누라고 부르신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내가 서 있는 자리는 호구입니다. 산파가 바로를 이기듯이 우리가 세상을 이겨 하나님 나라는 확장되는 것입니다. 세상을 하나님의 통치로 침입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통치에 순종하는 자가 필요한 것입니다.(구원사역)

순종, 경외란 다만 내 뜻을 접고 요구하는 대상에게 나를 복종시키는 정도가 아니라 나의 존재는 진정한 내용을 내가 채울 수 있는 것에서 하나님이 채워주심으로 넘기는 것입니다.

세상의 조건, 환경과 자격과 상관없습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통치 속에 있으면 하나님의 통치가 우리 존재를 통하여 열매를 맺습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는 자들입니다. 성도의 특권이며 영광이라는 표현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는 매일, 매시, 매분, 매초마다 들어야하는 자리입니다. 우리 본성역시 세상이며 환경역시 미결수로서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어색하며 낯선 것이 사실입니다. 이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모세 같고 엘리야 같고 다니엘 같아야 하는 일이 매 순간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거의 놓칩니다.

우리는 대통령 아니면 적어도 신앙담당보좌관은 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것 하다가 평생을 자기 할 일을 놓칩니다.

사소한 삶, 그 일상 속에서 사실은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이 세상 권세를 깨는 것입니다. 이 싸움을 우리가 안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조건과 지위를 줄때까지 핑계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안 해주셔서 내가 그렇게 못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세상 권세로 세상을 파멸하려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져서 사망 권세를 깨어 마치 호랑이 굴에 들어가 호랑이를 잡습니다. 죽음 안에 들어가 부활하심을 얻고 사망에 권세를 깹니다.

이 신앙의 싸움에서 지지 않고 외면하지 않은 신자 된 충성과 그래서 얻어지는 승리와 자랑이 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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