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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를 시작하면서
출애굽기를 시작하면서
  • 교회협동신문
  • 승인 2019.04.26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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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출1:1-7
제목 : 출애굽기 서론
강영철목사참된교회 담임
강영철목사참된교회 담임

 

들어가면서

애급에서 종으로 살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세가 나타나서 애급에서 구출하시고 시내 산으로 인도하여 하나님께 경배케 하고 율법을 받게 됩니다. 그 시점에 글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기는 하나님 백성으로 부름 받은 자들 1차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서는 그때의 현실과 경험과 그들의 이해 속에서 읽어야 합니다.

저들을 애급에서 인도하시고 구해주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족장들에게 약속하시고 왜 이루어 주셨을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기에 우리를 구원하셨을 뿐 아니라 계명을 주시면서 거룩을 요구하시고 계시는가? 이스라엘 민족이 어떤 민족이기에 저 애급을 치고 우리를 구원하셨는가? 하나님이 누구신가? 하나님이 목적이 무엇인가?

하나님은 왜 나를 사랑하는가? 내 죄가 어떤 것이었기에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어서 십자가에 못 박아야만 했는가? 인간이 가치란 무엇인가? 인간이 도대체 하나님 앞에 무슨 죄를 지었으며 그러면 구원은 무엇이며 우리가 얻은 구원은 어디로 향해 가는 것이며 그 일에 하나님은 어떤 계획과 어떤 방법을 쓰시는가?

하나님만이 모든 존재와 내용과 가치에 유일한 주인이시다. 기독교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에 대한 피조물로서의 순종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기본입니다.

창세기 마지막 부분에서 애급에 팔려간 요셉이 총리가 되고 기근이 들어 그 가족들이 애급에 이주하여 살게 되는 것으로 끝났었습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시작이 그 가족들 70명으로부터 시작하여 많은 세월이 흘러 70명의 가족이 실제로 7절입니다.

1.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이 중다하고 번식하고 창성하고 심히 강대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를 보게 됩니다.

애급 40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실제 전쟁에 나갈 수 있는 남자의 수가 60만 명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20세 미만 60세 미만, 여자을 제외한 인원이며 전체 인원은 대략 곱하기 5를 합니다. 300만이상의 인구가 되는데 B .C. 15세기경인데 굉장합니다. 당시 300만 인구이면 지금으로부터 3500년 전 대단한 인구입니다.

이런 인구는 하나님이 약속을 시행한다는 증거입니다. 먼저 천지창조 때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 하라.” 또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된 축복, “내가 네 자손을 하늘의 별 같고 바다의 모래 같게 하리라” 축복의 연장입니다. 특별한 기적적인 간섭이 없지만 400년 가운데 70명이 300만 명의 이스라엘로 애급이 이렇게 크게 만듭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백성들인 애급이 이스라엘을 보호하고 키우는 복들의 근거를 제공한다는 사실에 놀랍니다.

또한 이 사건에서 하나님의 구속사역뿐만 아니라 창조사역의 중요성을 확인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복주시고 그 창조하신 모든 세계 세상과 인류를 하나님의 은혜로 통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창조사역이 구속사역의 기초를 제공하고 구속사역이 창조사역을 완성 창조사역이라는 것이 구속사역의 기초를 제공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되고 구속사역은 창조사역의 완성으로 된다는 의미는 다만 불신자를 심판하고 신자는 천국으로 가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으로 완성하는 것입니다. “이 백성은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

창조사역의 중요성을 구속사역과 함께 병행해서 이해하게 되면 가장 중요하게 세상과 인생을 보는 눈에 있어서 훨씬 깊고 분명한 믿음의 터를 만들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죄를 입고 태어납니다. 그것은 다 창조사역의 영역에서 일어난 일들이고 그렇게 출생하여 구속의 은혜를 입습니다. 그러므로 ① 인간의 존엄성이 나옵니다. 지금 우리를 핍박하는 자라 할지라도 그들 역시 구속사역의 대상이라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또한 세상의 풍조를 반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② 세상의 풍조나 정신을 반대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일 수도 없고 신앙생활도 아닙니다. 더 나가 세상을 보는 눈에 있어서 ③ 보다 깊고 높은 하나님의 지혜와 통치로 이해하여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2. 우리가 구원을 얻어 창조사역의 완성을 향하여 가고 있는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죄의 부작용과 타락한 본성은 구속사역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약속된 운명이지만 3절 이하, 신앙고백 이후의 우리의 인생이 형통하게 인도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구속사역의 완성의 과정은 환난이며 그것으로 창조사역의 완성을 만듭니다. 창조사역의 완성은 구속사역의 고난으로 만들어 진다.

우리의 생각은 형통한 길이 순 족한 환경이 우리에게 더 유익할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는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일에 성경에 고전적인 증인을 하나 알고 있는데 욥이라는 사람입니다. 욥은 ① 자식들이 죽고, ② 재산을 다 뺏기고, ③ 본인은 병이 들고, ④ 친구들을 잃고, ⑤ 말을 잃습니다. 그리고 눈으로 보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다만 죄 안 짓는 사람 정도가 아니라 정금같이 보배로 만들기 위하여 고난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세상의 환경들은 그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우리의 목적은 하나님께만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는데 하나님의 지혜와 방법에 의하여 쓸모가 있다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더 좋은 것이 꼭 유익도 아니고 이건 최악이라는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으로 모든 역사와 우주와 개인을 통치하시고 인도하시기에 각자의 지금 현실 위치 조건이 최고의 상급이라는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절) 그래서 우리는 세상 어떤 조건에서 불만이 없으며 물론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에 순응하는 소원과 기도와 충성을 해야 옳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를 대하든지 어떤 형편에서든지 불평을 하거나 절망을 하지 않습니다. 지금 나에게 최악으로 불고 예수 믿는 것에 방해를 하는 훼방꾼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에게 최종적인 저주를 품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출애굽 사건에서 보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사도바울이 놀라운 하나님 앞에 찬송과 고백은 성도의 고백입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롬11:33절)

신앙에 가장 무서운 것은 내 자신입니다. 타락한 본성과 죄의 부작용은 하루아침에 없어지지 않습니다. 매일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 같지만 뜻밖에 잘하고 있습니다. 반복 같지만 믿음에 서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사람으로 커가고 있고 이 일에 아무도 방치되어 있거나 헛된 쳇바퀴를 도는 하나님의 백성은 없다는 것입니다.

마치 나이가 먹는 것 같이 하나님의 백성은 커가고 완성의 자리로 가는 것을 출애굽기에서 애급에서 300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을 만들어낸 역사적 FACT를 기록하여 위로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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